홋카이도에서 강진을 맞이하고 탈출했던 과정을 뒤늦게나마 정리하려는 이유는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는 더 잘 대처하기 위함에 있다. 복기를 하다 보니 잘 한 부분도, 잘 못한 부분도 발견됐다. 그 모든 과정을 정리하고자 한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2018년 9월 6일 06:30
새벽부터 애써 전철역으로 달려왔지만 역은 폐쇄됐다. 전철뿐만 아니라 모든 대중교통이 마비됐다고 했다. 더불어 전 도시에 전기와 수도가 다운됐단다. '하필 내가 귀국하는 날에...'
이 지점에서 내가 내린 판단은 어찌 됐든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전철을 비롯한 다른 대중교통은 모두 멈췄을지언정 공항을 잇는 리무진 버스는 운행을 할 거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무진 버스의 기점인 나카지마 공원으로 일단은 향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현 위치에서 거리는 7km가량이다. 큰 배낭 하나에 작은 가방까지 들고 있는 상태였지만 군 시절 행군하는 기분으로 일단 걸음을 내디뎠다. 택시가 다니고 있었지만 모든 게 마비된 상태에서 현금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모든 도시가 정전이었지만 곳곳에서 편의점이 문을 연 것을 발견했다. 일단 보이는 편의점에 먼저 들어갔다. 이 선택은 아주 잘한 것이라 생각한다. 불과 30분 만에 다른 편의점에선 줄이 엄청나게 늘어선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미 신선코너 상품들의 90%는 다 팔린 상태다. 편의점이 이 모양인 상태는 앞으로 3일간 유지되게 된다. 나는 그나마 먹을만한 것을 골라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물 2L짜리를 하나 챙겼다. 다행히 초콜릿과 같은 가공식품들은 아직 재고가 많이 있어서 넉넉하게 챙겼다. 초콜릿은 부피가 작지만 열량이 높기 때문에 단기간 생존 식량으로 합격점이다. 우유도 하나 남아있는 게 보여서 챙겨봤다. 안 그래도 짐이 많아서 무거웠는데 각종 식량까지 더해지게 되니 가방이 매우 무거워졌다. 하지만 지금부터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실상 생존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실내에서 불안한 것은 현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실제로 사망자의 대부분은 산사태 등으로 집이 무너져서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삿포로 도심은 산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큰 것은 사실이다. 무언가 떨어질 우려가 없는 저런 공터에 자리를 잡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 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변 사람들을 믿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길을 걷는 동안 마주친 한 쇼핑몰에 줄이 늘어져 있다. 사실 저 정도 줄은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저렇게 줄을 서 있지만 실상은 가게 문이 열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지진 발생 당일(9/6)에 문을 열지 않았다. 편의점들도 일부 지점만 문을 열었을 뿐이다.
일본 사람들의 질서 정연함 자체는 본받을만하다. 하지만 재난 발생 시 사재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지진 발생 이후 3일간 아침마다 편의점을 방문했지만 늘 현지인들이 양손 가득 물건을 사재기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07:45
걸어서 나카지마 공원에 도착했다. 일단 공원에 앉아서 아침으로 우유를 마셨다. 어차피 지금부터 실온에 방치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우유를 먼저 마시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침부터 적잖은 거리를 걸으면서 체력을 소비한 것도 보충해야 했다. 나카지마 공원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꽤나 보였다. 이 무슨 스웩인가 싶었다. 한쪽에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선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참 신기하게도 통신망은 작동을 하고 있었다. 네일동 카페를 확인해보니 신치토세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아... 출국은 물 건너갔구나.' 호텔을 나서기 전에 공항이나 대중교통 운행 상황 등을 먼저 체크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도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던 호텔을 떠나 도심에 도착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이 당시에는 섣부르게 움직인 것을 후회했다.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인 네일동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오픈 카톡방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잘 한 선택 중 하나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경우에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판단해야만 한다.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나마 연결될 수 있다면 정보를 얻는데도 용이할뿐더러 멘탈 관리 측면에서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해당 여행지와 관련한 카페를 찾아 실시간 반응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