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 몇 년째하고 계신가요?

30년을 해도 내게 시련을 주는 영어

by 보통의지영

엄마가 그러셨다. 여느 팔불출 부모못지않게 엄마는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시면 이러셨다.


“당시에 형편이 넉넉하지가 않아서 너 영어 책 한 번 사준 적이 없었거든? 근데 네가 잡지에 꼬불거리는 필기체도 읽고, 티브이에 나오는 영어 단어도 읽는 거야 세 살 때”


MSG가 많이 첨가된 거 같은 이 에피소드는 늘 엄마에겐 자랑거리였다. 아마 전공자의 입장에서 반복적으로 보거나 들은 걸 외웠을 터인데 엄마는 제 살림 돌보랴 내 동생 돌보랴 어느 날 그냥 보고 듣고 외운 걸 읊는 딸아이가 신동 아닐까 생각하셨을 거다.


내가 영어 공부라는 걸 처음 한 나이는 8살이었고 엄마는 무슨 바람이 부셨는지 동생과 내게 젊은 영어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셨다. 그때 진도가 쑥쑥 나는 잘 나갔는데 영어가 재밌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 부른 팝송은 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이었다. Eric Clapton의 아들 Conor Clapton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비통한 위대한 싱어송 라이터도 그저 자식 잃은 한 아버지가 다름없었다는 걸 보여준 그 노래를 나는 지금도 가사 한 토시 틀리지 않고 외우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또래 친구들이 H.O.T., 지오디 이렇게 팬클럽 가입하고 열정적인 덕질을 할 때, 아웃사이더처럼 Backstreet Boys 음반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해서 CD에 구워서 CD Player에 듣던 아이였다. 지금도 나는 내 플레이리스트에 대부분이 Pop이고, 태교도 그리해서 그런지 내 딸도 Pop을 K-pop보다 더 잘 안다.



나는 듣기가 강점이었다. 토익, 토플을 봐도 늘 듣기 점수가 제일 높았다. 안 들리면 들릴 때까지 들었고 어학연수 때도 같은 드라마 시리즈를 5번을 돌려보며 Dictation을 하도 섀도잉 연습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자막이 없어도 뉴스가 들렸고 대학 때도 영어 강의는 내 학점 사냥터였을뿐더러 스피킹까지 되다 보니 ‘이제 나 좀 하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외국계 PR Agency를 입사하고 보니 달랐다.

나는 영어로 보도자료를 쓰면 사수가 빨간 팬을 집어서 내게 틀린 문법을 지적해 주는 걸 받아 적어야 하고 고쳐야 했으며 뉴스 클리핑도 사수가 검수한걸 꼭 공부를

해야 했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사수와 과장님 앞에서 나는 주름도 못 펴는 번데기였다. 영어를 잘해서 뽑혔다고 그래서 희망차게 시작했던 내 첫 직장생활은 견고한 유리천장이 있는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했고 회사도 다녀봤고 결혼도 했지, 직업도 플로리스트로 전향했는데 내게 영어는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내게 또 다른 기회를 줬다. 아무리 영어 잘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영어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에서 한국 꽃꽂이를 배우고 싶어 오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그 기회로 플로리스트 강사로서의 커리어도 쌓게 되었다.


그리고 주재원 와이프가 되어서는 아이 학교 상담, 숙제 관련된 건 다 내 몫이었고 내 전문이었다. 파닉스를 배웠었던 경험이 있어서 아이의 상담 때도 선생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아이의 부족함이나 프로그레스를 이해하는 게 쉬웠다.


다시 내 기를 좀 살려주나 싶었던 영어가 나를 배반하기 시작한 순간은 아이가 초등과정 시작하면서부터다.

누가 알았을까, 동물이름이, 의성어, 의태어가 나를 당황시킬 줄이야…


그래도 아이 때문에 평소에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콘텐츠를 읽거나 듣고 하다 보니 계속 영어는 안 놓고 있었는데 올 9월부터 학부에 편입해서 전공을 듣는 시점부터 다시 또 문제가 시작되었다.


들리긴 들리는데 다른 귀로 말이 사라진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는데 머릿속에 저장이 안 된다. 필기를 받아 적는 게 전 과는 다르게 분명 들었는데 정리가 안 되다 보니 놓치는 문구나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조별과제에서도 분명 나도 말하고 모두가 말했는데 들은 내용을 내가 문장으로 정리해서 써야 하는데 쓸 수가 없었다.


비슷한 유의어나 표현으로 바꿔서 한 구절로 정리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미칠 노릇이었고,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가 되었다. 이제 한 달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국제학생인 데다가 나이도 20대가 아니다 보니, 나이도 어린, 캐나다 학생들과 대등하다는 느낌이 안 든다. 심지어 나이대도 비슷한 다른 학생들과도 뭔가 내가 더 주눅이 든다.


하지만, 개강 첫 주보다는 둘째 주가 나았고, 지금은 처음 내가 허덕이던 거에 비하면 낫지만.. 30년을 공부해도 이렇게나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써먹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스스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잘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