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은 비싸고, 내 맘은 미어터지고

한국 소아과가 너무 그리웠던 그러면서도 얄미웠던 순간들

by 보통의지영

내가 꿈꾸던 해외생활은 따사로운 아침햇살에 눈뜨며 상쾌하게 모닝커피 한 잔과 가벼운 아침을 먹고 산책도 하고, 여유로운 그런 삶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침 7시 반까지 아이를 남편회사 직장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느라 새벽길을 가르며 운전을 했고, 데려다 주자 마자 출근해서 수 없이 쌓인 꽃들과 전화 그리고 학원 수강생들과 치였고, 눈치 보며 부랴부랴 저녁 7시 전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가고, 아무 생각 없이 씻기고 그냥 재우고 나도 그러다 자고 다시 눈 뜨면 여섯 시...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땐 지하철에 매달려 가야 했고, 그러다 보니 내게 테헤란로는 전쟁터였다.


그런데 해외생활이라 그래서 내가 그렇게 꿈꾸던 대로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정확하게는 이탈리아에서는 날씨와 모닝커피 빼고는 다른 게 없었다. 아이가 처음 이탈리아에 갔을 때 나이가 만 세돌 반이었기 때문에 기침 콧물만 나면 소아과가 앞에 있던 일상에 익숙했던 아이는 학교 입학한 지 정확히 한 달 만에 코감기와 기침을 시작했다. 이탈리아도 공공의료 시스템에 의해 주치의를 배정받는데, 아이의 주치의는 낼모레 은퇴를 앞둔 할아버지였다. 그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하고 어떻게든 약속을 잡으려고 나는 필사적으로 전화를 했고 30번의 전화통화 시도 끝에 겨우 연락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과 다르게 정말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그냥 어찌어찌 약속을 잡고 아이를 데리고 갔더니... 대충 청진하고는 덜덜덜 떠는 손으로 처방전을 써주더라.. 내가 기대한 건 한 3~4가지 약이었는데 고작 2가지... 그리고 안 되는 이태리어로

"Tutti mangiare?(입으로 먹나요?)"라고 질문했는데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해외생활 초짜인 엄마가 리플릿을 안 읽은 이 무지렁이 엄마의 실수가 여기서 발휘가 된다. 까면 뭔가 이상한 게 하나 나오는 약이 하나 있었는데 애가 먹기를 거부했고 급기야 구토를 했다. 한국보다 곱절 이상 비싼 의약품 가격을 지불했는데 넘기지 못하는 아이에게 무척 화가 났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이태리어를 잘하는 지인에게 약을 보여줬더니, 리플릿을 읽던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


"이거 좌약이에요"


충격이었다. 좌약을 내가 먹이려고 했다니, 게다가 21세기에 좌약이 있다니 너무 충격을 받아서 말이 안 나왔고,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름 이름 대면 알만한 4년제 대학씩이나 나온 내가 리플릿조차 읽을 생각도 안 하고 의사 말을 믿고 그냥 그대로 했다는 게 너무 아이에게 죄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 후로 처방받은 약들 리플릿을 번역기에 돌려보니, 항생제 성분은 없고 정말 자연 약초 성분의 그런 처방전이 없어도 구매가능한 약들이었다. 그 사이에 딸아이의 증상은 악화가 되었고 나는 어찌어찌 수소문을 해서 영어가 되는 Privato 의사를 불렀다.


한 번 방문에 120유로나 받던 그 의사는 영어가 되니 그나마 내가 증상을 설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아이의 상태도 잘 봐주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처방전을 쓰기 전에 내게 질문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생제를 몇 번 먹었나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3년 반 동안 그 자그마한 아이가 먹은 항생제의 복용 횟수를 어찌 손가락으로 꼽을 수가 있을까? 기억이 안 난다 횟수를 꼽을 수 없지만 자주 복용했다고 하니 그제야 항생제를 처방한 처방전이 내 손에 들렸고, 그 귀한 처방전을 들고 난 약국을 가서 항생제를 구했다. 페니실린계 항생제 하나 들고 와 열어보니 웬 병 안에 분말 가루만 있었다. 한국에서는 친절하게 약국에서 "어머니 이건 항생제고요, 냉장보관 하셔야 해요 써져 있는 용량만큼 짜서 먹이세요"라고 했는데 그냥 병 안에 분말가루... 리플릿을 꼼꼼히 번역기를 돌려보니 내가 정해진 만큼 물을 부어서 흔들어서 병째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약이었다.


한국은 편리하게 약통에 소분도 되었는데, 여기서는 약에 동봉된 플라스틱 숟가락에 눈금을 보고 맞춰서 입에 먹여야 한다니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약국에서 주던 그 약통을 다 버리고 온 나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힘들게 자그마치 열흘을 걸려서 120유로에 약 값 60유로를 치르고 처음 먹인 항생제는 처참했다.


내 딸은 미각이 초 예민한 아이였다.


아이는 먹자마자 바로 뱉고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한국의 항생제와 같은 성분이었는데도, 그냥 아주 생짜 그대로의 쓴 맛과 목을 타고 가는 그 싸한 느낌에 약 한 병을 거의 버리다시피 해야 했다. 의사는 복용 후 30분 안에 토하면 다시 먹여야 한다고 해서 나는 주스에도 타 먹이고 별 수를 다 써서 힘들게 먹여야 했고, 우리에겐 항생제 트라우마가 늘 아이의 감기가 오면, 시작되었다. 알약을 아이가 넘길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는 순간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30분 이상을 실랑이를 해야 했다. 진짜 나도 아이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때마다 나는 한국 소아과가 그립다가도 미워졌다. 왜 항생제를 자주 줘서 아이가 크는 동안 초등학교 1학년까지 매 달 그렇게 아파야 하는지... 진짜 면역력이 너무나도 약했다. 또래 친구들은 분기에 한 번 아플까 말까였는데, 가뜩이나 3학기 제에 하프텀 방학까지 있는 영국 국제학교 시스템을 다니는 딸은 1달 반 가량의 등교기간 중에 1주일은 꼭 빠져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 당장 고쳐야 할 것을 생각해야만 했다.


면역력을 위해서 아이가 평소보다 비타민류를 잘 챙겨 먹도록 하고, 취침시간도 9시에서 7시 반으로 당겨버렸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7시 반에 아이를 재우 고나니 아이의 수면시간이 10시간 이상이 되면서 면역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아빠랑 놀아야 하니까, 엄마랑 집에 오느라 매일 저녁 8시부터 밥 먹고 씻고 후다닥 재운다고 10시에 재웠던 한국의 일상에서 영국 국제학교 시스템상 Nursery부터도 낮잠 시간이 없어지니 낮잠을 못 잔 만큼 저녁도 일찍 먹이고 일찍 재우니 아이의 수면 시간이 양질로 채워지면서 면역력도 향상되었다.



많이 밖에서 뛰어놀아라

이탈리아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아이는 놀이 터만 가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였다.

그렇게 차츰차츰 면역력이 조금씩 늘더니, 초등학교 1학년 과정 시작할 무렵부터는 반기에 한 번 아파서 학교를 못 가는 정도가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은 2년에 한 번 아플까 말 까다. 그리고 이탈리아 때부터 우리 식구들은 독감접종도 맞아 본 기억이 없다. 이탈리아도 러시아도 독감 백신은 정말 면역에 취약한 항암치료 하는 환자나 고령의 노인들만 대상이 될 뿐, 일반인은 맞고 싶으면 약국에서 독감 백신을 사서 직접 맞아야 한다고 하거나, 힘들게 또 병원을 예약하고 가서 번역기 돌려가며 의사를 설득하고 하니 어쩌다 보니까 안 맞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영어가 가능한 병원을 가면 병원비가 이탈리아의 3배가 되었고, 그렇다고 해서 증상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도 않는 데다가, 장염에 걸린 거 같은데 초음파를 보고, 열감기가 낫지 않아서 항생제 처방을 해달라고 하려고 채혈도 아이에게서 두 번이나 하는 등 (염증 수치를 보기 위해 한 번, 바이러스 염증인지 세균성인지 보기 위해 또 한 번) 약 먹는 과정도 힘들고 아프면 환자가 더 이래저래 고생이다는 것을 몇 년 동안 체득하다 보니 그냥 알아서 잘 챙겨 먹고 햇빛이 있을 때 많이 놀리고, 밤 되면 일찍 재우게 되어 지금도 우리 아이는 9시면 곯아떨어져서 다음 날 6시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따로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생활을 하니 건강에 더 좋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설령 주재원이니까 의료 사보험 혜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른인 나도 아프면 고통스러워도 병원에 가는 게 힘이 들다 보니 주저하게 되고, 그러다가 병을 더 키우게 된다. '병을 키워서 사서 고생한다'라고 친정엄마가 우스갯으로 이야기하시던 대로 주재원은 내 선택보다는 회사의 선택이 컸고, 국가도 내가 고르지도 않았지만 결국 아프면 다 내 몫이었다.


이제는 주재원이 아닌 유학생의 신분으로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고, 언어의 장벽도 이탈리아나 러시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사레들려하는 기침 소리만 들어도 '왜 그래 목 아파?'라고 덜컥 심장이 나려앉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날이 선 투로 질문하는 내 자신을 보면, 그럼에도 내가 왜 이 생활을 하나 실소가 나올 때가 많다.


환절기,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우리 또 잘 가을을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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