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結
結, 맺을 결. 나는 이 한자를 좋아한다. 복잡하고 어긋나 있던 실을 맺는 매듭. 하지만 우리는 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매듭을 지어도 꼬리는 남고, 그 어떤 인연을 끝내도 습관 속에 걸음 끝에 남는 기억들이 있다. 결국 그 매듭은 다른 실과 이어지는 연결이고, 그로 인해 또 다르게 뻗어나가는 실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 연재를 결심했을 때 제목을 두고 정말 많이 고민했다. 내가 문창과를 대표할 자격은 없지만, 문창과라는 나름 상징적인 학과를 나와 마주친 취업시장은 참 이상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 투성이였다. 근데 그 직장생활을 어쨌다는 건가. 나는 그 직장생활을 어쩌고 있는가. 그게 걸려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서 뭔가 완료도 아닌, 시작도 아닌, 그저 진행 중인 그 시간들을 '적응'이라는 단어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직장이 없는 상태였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할 때 직업군을 적어야 하는지 몰랐다. 주부도 취준생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왠지 직장인을 골랐고, 그건 내가 이 연재를 마치고 해명할 기회를 찾을 때까지 취업에 꼭 성공하라는 굳은 의지를 담고 있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뭔가 아주 많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적당히 애쓰고 적당히 고생하지만 또 적당히 풀리고 적당히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며 내 직장생활을 꽤 촘촘히 돌아볼 수 있었고, 어쩌면 내 그 적당함이 사람들을 곤란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렇게 돌아서서 다녔던 직장에 대해 감히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데, 사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직원과의 인연을 아름답게 맺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글을 쓰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회사에게 잘못한 걸 수도 있겠다고. 나는 노력했지만 결국 회사에서는 내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고, 그렇다면 회사에서도 영 아쉽고 부족한 직원이었을 거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더 잘 해낼 수 있었던 일을 나라서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참 죄송스럽다. 그래서 나는 세 번째 만나게 된 지금의 회사에서는 아쉽지 않도록 일하고 싶다. 고쳐야지 하는 게 자꾸만 생긴다.
취업을 하게 되면 '그렇지만 나는 세 번째 직장을 찾고, 여전히 적응 중이다'라는 말로 적당히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흔하고 무난한 마무리로.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옮긴 직장이 어떠냐는 질문이다. 항상 비슷하게 대답한다. 아직 잘 모르겠어. 그냥 회사가 다 비슷하지 뭐. 아직 더 다녀봐야 해. 내가 잘해야지 뭐. 이런 대답들. 환경과 사람을 고칠 수 없으면 내가 고치는 게 맞는 거다. 특히 아주 많은 관계가 얽힌 이 사회에서, 직장생활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제법 어른 같은 생각도 든다.
대학을 다니면서 내 미래가 궁금했다. 그런 비슷한 걸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참 애매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일을 하든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상품에 이야기를 붙이든,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전달해 주든. 그렇게 술은 술이고 물은 물이다 같은 얘기를 해서 이렇게 이것도 저것도 다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계속 직장에서 글을 쓰는 것도 인연이고, 그렇게 다닌 회사 이야기를 쓰는 것도 운명인가 보다. 한 학기에 두 편씩 단편소설을 잘도 뽑아내던 스무 살 남짓의 나에게 묻고 싶다. 너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었냐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라 눈을 반짝였던 나는. A4용지 열 장 남짓 되는 한 편의 단편소설을 대여섯 번씩 출력해 지하철에서 퇴고를 하며 보냈던 4년의 세월은. 그리고 지금 이렇게 제대로 퇴고도 한 번 하지 않고 그때그때 두드려 쓴 이 글은 초라하지만 또 기특하기도 하다. 요즘은 단편을 중반부까지 쓰는 것도 어렵다. 과내 소설 동아리 회장이었던 선배는 내 머리가 커져서 그렇단다.
어쩌면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그렇게 머리가 커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적응을 하면 달라질까? 풋풋하게 눈을 반짝이던 모든 사람들이 익숙해진다고 해서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세상은 정글이고 전쟁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생존해야 한다. 적응하기 전에도, 적응하는 중에도, 그리고 적응하고 나서도. 나이가 들수록 내 길지 않은 직장생활동안 나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 도와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노력을 알게 된다. 나는 아직 가방 안주머니에 든, 지난 회사의 차장님이 써주신 힘내라는 쪽지를 버리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놓지 않은 채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싶다. 읽어주신 모든 직장생활 선배님과 후배님들께, 알게 모르게 다른 동료를 배려해 주셨던 예쁘고 포근한 마음에 대해 서투른 내가 대신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모두 행복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