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17
퇴사하고 열 달쯤, 자격증에 매진했다. 9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는 아파트 독서실로 자리를 옮겨 저녁까지 공부했다. 그러는 동안 갑자기 목에 담이 걸리더니 며칠간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돌잔치에 다녀온 주말,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싶었는데 목이 너무 뻐근하고 불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목이 굳어버렸다. 앉아서 눈만 감고 졸다가 병원에 가서 난생 처음 수액과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도수치료를 받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하품을 하는 것도, 침을 삼키는 것도 뒷목이 찌릿하고 아파서 힘들었다. 도수 선생님은 피로가 아주 오래 누적되어 생긴 결과라고 했다. 회사에 다닐 때도 가끔 등이 아파 잠을 못 잘 때가 있었다.
사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곤 했지만 나는 12월 퇴사를 앞두고 9월에 미리 자격증 책을 사 두었다. 틈틈이 뒤적여보았던 것이다. 그냥 도망치기는 무서우니까 뭔가 아무거나 하나 만들어두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격증은 퇴사를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어떤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자격증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정말 아주 많이 겁쟁이다. 남편에게 앞으로 이 자격증을 목표로 공부해서 프리랜서가 되어 돈을 벌 거라고 말했지만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근데 그냥 퇴사하겠다고 하기는 내가 싫었던 거다. 남편은 이미 한참 전부터 퇴사하라고 했는데도 내가 그걸 못했다. 왜냐면 내가 너무 겁쟁이라서.
자격증 공부는 가을까지 했다. 책을 사고 딱 일 년 정도 공부했다. 그리고는 품이 많이 들고 소득은 형편없는, 협회에서 제공하는 부업을 시작했다. 사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경쟁자도 많았고 하루 온종일 품을 들여도 월에 30만 원 벌기가 힘들었다. 더 능숙해지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냥 계속하자고 생각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쳐가고 있었지만 나를 믿어준 남편 앞에서 그런 걸 티 낼 수가 없었다. 나 이거 괜히 했어, 그런 말을 못 했다. 나중에 오빠가 말하길, 그때의 나는 참 고생하고 애썼는데 수입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해서 너무 안쓰러웠다고 했다. 근데 그걸 내가 꾹 참고 하고 있어서 뭐라고 말도 못 했단다.
그러다 오빠의 일이 어려워졌다. 친구와 작게 온라인몰을 운영하던 남편은 마찬가지로 나한테 말도 못 하고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말도 못 한 채 많은 것들을 감내하고 있었다. 나는 퇴직금을 축내고, 오빠는 돈 되지 않는 사업을 그만두지 못하며. 그래도 우리는 아침 출근 전에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나 다시 취업할까? 먼저 내가 말했다. 그 자격증,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언제 다시 돈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게 제일 겁이 났다. 아기도 낳고 돈도 모으려면,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빠는 괜찮다고 했는데 내가 이때다 싶어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또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때부터 자격증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건 또 자격증 공부를 하지 않을 좋은 구실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직사이트를 보고 이력서를 여기저기 수정했다. 그리고 부업을 하지 않고 티비를 봤다. 일을 그만둔 지 일 년이 되어서야 나는 소파에 누워 몇 시간이고 생각 없이 티비를 봤다. 회사를 관둬도 쉬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티비 앞에서도 계속 불안해하며 구직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결국 목표는 다시 취직이었다. 다시 월급을 보태는 것이었다. 일하는 월화수목금이 끝나고, 다가오는 토일을 기대하는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되는 것이었다. 참 많이도 돌아온 길이었다. 쉬기는 쉬었는데, 마음은 못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