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15

by 노루

두 번째 퇴사를 겪고 난 후, 나는 내게 뭔가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다. 사실 두 경우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말 열심히, 기분 좋게 일하다가 점점 늘어나는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나중엔 정말 너무나도 간절히 회사를 나가고 싶어져서 결정된 이후에는 A4용지 10장 이상의 분량으로 정말 열심히 인수인계서를 만들어 놓고 아무 미련 없이 퇴사했다. 돈을 올려주는 것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무 소용없었다. 심지어는 두 경우 모두 뒷일은 생각도 않은 채였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좀 더 했으면,부터 시작되었다. 왜 나는 공부를 딱 좋은 만큼만 했을까. 나는 가능한 만큼만 했다. 힘들지 않고, 피곤은 하지만 견딜만할 때까지만. 그리고 왠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그것도 참 이상했다. 남들은 취업을 생각해서 일하고 싶은 분야로 대학에 진학하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문창과에 지원했지. 가까운 친구들만 보더라도 유아교육과에 가서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치위생학과에 가서 치위생사가 되었다. 간호학과를 가서 간호사가 되었고. 인문계에서 편입을 한 친구는 회계분야로 경력을 쌓는다. 그러니까 나는 뭘 믿고 이 치열한 취업시장에서 겁도 없이 낭만 찾아 문창과를 갔냐고. 이유는 딱 하나였다.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진짜 무식이 곧 용감이었다.


대학교에서 보낸 시간도 너무 짧았다. 휴학도 없었고 취준 기간도 없었다. 나는 닥친 문제를 빨리 쳐내고 적응하기를 택하는 사람이었다. 결정하면 버티고, 지쳐 나가떨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더 좋은 결정을 위해, 2보 전진하기 위해 1보 후퇴해 본 적이 없었다. 회사를 다녀보니 알겠다. 전략적으로 잘 준비해 치열하게 쌓아온 사람들과 나는 바닥이 달랐다. 길이 다른 게 아니라 바닥이 달랐다. 나는 잘 무너졌고, 나를 받쳐주는 건 아무도 없었다. 1에서 시작해 3으로 끝나면, 바닥이 단단한 사람들은 잘 신중하게 준비해서 그다음엔 5에서 10으로 가는 길을 택하는데, 나는 1에서 시작해 3으로 끝나면, 3.5에서 다시 시작해 4.5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첫 번째 회사에선 뭐 잘한 게 있겠는가.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야근도 기꺼이 하고 친목 모임도 가졌다. 그리고 결국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아닌 걸 알면서도 소용없는 기대로 현실에 안주했다. 평생 다닐 것도 아니면서 이직이 어려운 경력을 만들어버리고는 잘못된 줄도 몰랐다.


다 지나고 나서 잘못을 따지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내 과거를 탓하며 지내다, 어느 잠 안 오던 밤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내 회사 생활이 지금까지 이모양이었는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머리를 굴렸다. 그저 나는 글 쓰는 게 좋았을 뿐인데 이렇게 흘러와 버렸다. 대학교 때도, 첫 회사에서도, 두 번째 회사에서도 글은 잘 쓴다던데 그것만으로 벌어먹고 살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했다.


아니 근데, 요즘은 또 그런 세상이지 않는가. 누구나 내가 잘하는 걸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지 않는가. 설사 그렇게 잘하지 않더라도 표현해 볼 수 있는 세상인데 왜 나는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혼자 속만 썩이고 있을까 싶었다. 혼자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유튜브고 블로그고 못하는 게 없는 세상인데. 그저 잘하고자 했던 내 마음과 노력이 아까웠다. 노트북을 열어 1화와 2화를 순식간에 써내리고,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던 과정이 여기까지의 이야기인 것이다. 성격은 못 버린다더니, 이 과정마저 즉흥과 낭만과 기대와 희망이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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