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는 어느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13

by 노루

이제는 옛날 드라마가 되어버린 '미생'에서 아직까지 밈처럼 전해지는 부분이 있다. ''우리'라고 했다.' 팀장에게 '우리'라고 칭해진 장그래가 감동하며 팀과 팀장에게 엄청난 유대감과 결속력을 느껴버리는 장면이다. 매체에서 다루는 좋은 상사. 멋진 상사는 팀을 위해 싸우고 팀을 어루만지며 팀을 가족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묵묵히 말없이 팀과 팀원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그들의 성장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흐뭇해하곤 한다. 그 어떤 인정이나 대가도 필요 없다는 아주 기꺼운 모습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을 못 믿었다. 그 유창한 세치 혀라면 어떤 거짓말도 능수능란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나는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새 팀장은 말을 굉장히 잘했는데 그게 내가 그 사람을 싫어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약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고집이 세지 못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하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잘 넘어가고 설득당했다. 나는 또 넘어갔다. 내가 필요하다는 말에 넘어갔고 내 편의를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봐주겠다는 말에도 설득당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6월로 받았던 퇴사일이 12월로 미뤄졌다. 그 대신 새 팀장은 나를 CS에서 빼 줄 것과 회사 사람들이 나에게 업무 기획서를 통해 전산으로 업무를 의뢰할 것, 두 가지를 약속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꽤 덩치 큰 영업 거래처를 추가로 얻게 되었고(팀장님과 같이 업무를 진행하며 나는 팀장님의 서포트를 하는 역할이었다) 나는 CS를 그대로 진행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여전히 휴대폰으로 전화해 업무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정부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나는 팀장님이 애쓴 걸 알았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했다. 여기서 바뀌게 된다면 그들이 불편해지니까. 나는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신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한 내 무분별하게 넓어진 업무 범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넓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통 누구를 시켜야 할지 모르는 남는 일을 줘버려도 어떻게든 처리되는 업무 쓰레기통 같은. 그 앞에는 단 한마디만 붙이면 됐다. '마케팅을 하려면 전반적으로 다 알아야 하니까'라는.


나는 마케팅이 싫지 않았다. 사람을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끌어내는 업무가 좋았다.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데 알아버렸다. 여기서 내가 정말 마케팅을 위해 이 업무들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편의에 의해 이 업무들을 하고 있는가. 그게 뭐라고 사람을 그렇게 일하기 싫게 만들어버렸다. 나는 두 번째 퇴사를 마음먹었고 그 와중에도 일은 계속해서 쳐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도와달라던 새 팀장님은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 제안을 받았고 언제 있었냐는 듯 슥 사라져 버렸다.


드라마가 그랬듯, 영화가 그랬듯 집에 부모가 있으면 사회에도 부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사한 은사님이, 친구 같은 선배님이, 존경할 수 있는 상사가.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부모고 자식일 것이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 혹은 좋은 사람이라서 나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그들의 안위를 위해 살아갈 뿐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수많은 노력을 다해 나를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거대한 기존의 무리와 싸워 벼랑 끝의 나를 건져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누군가 그런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게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리라. 이유 없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힘을 쏟아주는 사람은 그저 유니콘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분노도 걱정도 억울함도 서운함도 허탈함도 좌절감도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퇴사를 했다. 이번에도 가장 큰 퇴사사유를 뽑아보자면, 결국 기대였다. 잘 해내면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리고 내가 참고 기다리면 무언가 바뀌고 달라질 거라는 기대. 기대는 나를 자꾸만 한계치까지 몰아붙였고 나는 매일 내가 한심하고 내일이 무서웠다. 기대는 다 상해버린 속을 꼭꼭 다져 아무리 힘들게 쌓아놔도 영락없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그때마다 세상에서 사라져 모든 게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게 벌써 언제 적 일인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나는 퇴사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집에서 청소기만 돌렸다. 아침에 남편이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미처 보지 못한 먼지가 있으면 또 청소기를 돌리고, 그렇게 움직이다 내 머리카락이 한 올 떨어지면 또 청소기를 돌렸다. 먼지는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리 청소기로 빨아들여도 또 나오고 또 나왔다. 하루에 청소기를 10번 가까이 돌리기도 했다. 퇴근한 남편은 나에게 집이 호텔 같다고 했다. 그러다 찾아온 내 퇴사 후 첫 외출의 목적지는 정신건강의학과였다. 아, 청소기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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