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12
살다 보면 기회가 온다고 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건 기회일 수도, 기회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새 일이 자꾸만 쳐들어와도 어느 한 구석에는 이게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SNS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나는 그걸 따라가기가 조금은 버거워서 혹시 디자인을 하게 되면, 혹시 영업을 하게 되면 내 진로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항상 잘하고 싶었다. 디자인도, CS도, 홍보도, 매장관리도, 영업도. 하지만 희망 없이 길어진 그 생활은 내 모든 의지를 꺾었다.
영업 거래처까지 받게 되었을 때쯤 팀 개편이 있었다. 몸 담았던 팀에서 나는 혼자 빠지고 새로 온 이사님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이사님이 오자마자 나한테 한 말은 정말 이 일을 다 해요? 였다. 그걸 어떻게 다 해요? 그게 그다음이었다. 근데 그게 계속 있는 건 아니라서 어떻게 하다 보면 다 하게 돼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 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떤 기대도, 기회라는 생각도 모두 사라진 채였다. 그저 출근하면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하루 종일 혼이 나가도록 일을 하고서도 회의실에만 들어가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되어버리던, 사장님은 내게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욕심을 좀 내라고 매주 말하던.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을 다 알지 못하던. 육교를 걸어가다가 문득 아래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어떤 사고를 상상해 보곤 하던.
새 이사님은 자기가 정말 바꿔보고 싶다며, 같이 해보자고 했다. 나는 이미 그전에 본부장님과 퇴사 면담을 한 적이 있었고, 이력서를 넣어보다가 도저히 퇴근하고 이직을 준비할 의욕이나 에너지가 남지 않아 반쯤 포기하고 올해엔 꼭 퇴사를 해야지, 생각하던 참이었다. 자기가 아는 건 다 알려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필요하고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건 진짜 기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정말 아는 건 다 알려줄 작정인 것처럼 시간만 나면 붙잡고 회의를 했다. 뭘 자꾸 설명하고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줬다. 정말 이사님의 말처럼 회사가 바뀐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업무들과 이상한 고민들이 모두 해결될 것 같았다. 다 나아지고 나는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거나, 이곳에 남아 새로운 젊은 직원들과 활발히 이야기 나누며 일하고 싶었다.
이전에 우리 팀이었던 그 팀 사람들을 틈만 나면 새로 들어온 이사님을 욕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나에게도 그랬다. 나는 우리 팀장님이라 그 욕에 동조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나한테 대고 자리에 없는 사람 욕을 해댔다. 오히려 공장에서는 기존의 우리 팀을 욕했다. 그러니까 뭐 나는 어딜 가든 현 팀장님의 욕과 구 팀장님의 욕을 다 들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던 건,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었다. 한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는 누군가와 그 밖에서 바라보는 누군가는 같은 사람일지언정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다행인 건 그렇게 사방팔방 내 주변사람들을 욕하는 중에도 내 욕은 아무도 하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거의 모든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곳이 정말 바뀔까. 이렇게 고여버린, 지긋지긋한 이곳이. 정말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내 기대고, 바람이었다. 정말 한 올 지푸라기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