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20
나는 구직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사업이 위태로워지면서 마음이 많이 조급했다. 그리고 자격증 준비를 위해 썼던 시간이 모두 낭비로 느껴졌던 탓에 이력서를 넣어왔던 시간에 비해 불안함이 컸다. 숨이 차고 막히는 증상이 6개월 만에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되어 약을 끊고 병원에 가는 걸 그만두었는데 다시 증상이 심해졌다. 지역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을 받게 된 것이 그쯤이었다.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하는데 왠지 나는 '잘하고 싶었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선생님은 내게 다른 사람의 실망을 과하게 의식한다고 했다. 잘 해내고 싶었던 이유는 크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게 실망할까 봐. 그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나는 그게 제일 무서웠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하다가 실망하는 게 제일 무서워서 사람들을 기대하지 않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근데 잘하고 싶은 마음은 곧잘 다른 사람들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게 무서워지는 악순환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싶어서 온 힘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내려고 애썼지만 항상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번번이 작아지고 지쳐갔다. 선생님은 그랬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마음인 거잖아요. 그건 그 사람이 책임지는 거예요.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러게. 나는 왜 다른 사람의 기대를 다 만족시켜주려고 했을까.
면접을 보면서도 이상한 마음이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잘 봐준 것 같다 싶으면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그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면접 분위기가 좋으면 연락을 받기도 전에, 다니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그렇게 걱정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럴까 봐 연봉을 높이 부르지도 못했다. 연봉을 보고 기대했다가 막상 일을 같이 하게 되면 별 것도 아니었네, 하고 생각할까 봐. 아마 그건 내가 봤던 모든 면접에서 티가 났을 게 분명했다. 탈락의 연속이었다. 남들은 작은 경력도 잘 포장하고 다듬어서 예쁘게 만들어 몸값을 높인다던데, 난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타인의 실망에 대한 걱정은 내 마음을 지배했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작은 스타트업에서 연락을 받았다. 대표는 내 자기소개서를 보고 같이 일하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말했다. 자기소개서를 보고 사람이 궁금해진 건 처음이라고. 결국 또 글이었다. 잊을만하면 또다시 문창과 출신의 나에게 감사하고, 고생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하는 일이 생긴다. 나는 생각도 없이 그런 말에 쉽게 감동하고 쉽게 마음이 무너졌다. 문창과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기대하게 하고, 그런 만큼 실망하게 하는 일도 많았다. 회사에서는 팔리는 글이 필요했고, 그건 문창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같이 일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오히려 나에게 묻는 질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걱정하는 부분들을 이야기했다. 모호했던 전 회사의 업무 경력, 스타트업이 처음인 것에 대한 우려와 당장은 아니지만 육아휴직을 쓰게 될 수 있는 상황을 말했고 대표는 그 이야기를 모두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리고 고민하고 대답해 주었다. 다른 면접장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면접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꽁꽁 숨기고 티 내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 회사에 다니기로 했다.
첫 출근을 하면서 다시 기대와 실망에 대한 불안함이 사정없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렇게 긴장해 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나를 잘 봐준 만큼 또 잘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겁쟁이인 채로, 잘못될 걱정만 가득한 채로 세 번째 회사에 출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