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브런치를 2년 넘게 쉬었다. 가끔씩 작가님! 하고 글 좀 올리라고 재촉하는 브런치의 알림이 떴다. 그마저도 이제는 잘 오지 않는다. 아니, 알림이 왔는데 내가 무시를 한 건지도 모른다. 내 브런치는 2년간 방치한 폐가 같은 상황인데도, 예전에 올린 브런치 글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을 누르는 사람이 간간이 나타났다. 그리 대단한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내 글을 누군가가 좋아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겐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는 브런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해야지 생각을 했었지만, 항상 그때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또 다른 새해가 밝았고, 뭔가 강제력을 동원해야 글을 쓸 것 같아 글쓰기 모임을 다시 신청했다. 주말을 뺀 나머지 요일동안 매일 글을 쓰고 인증하는 모임이다. 그동안 올린 브런치 글을 천천히 쭉 읽어보았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이어졌던 치료 활동과 전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아, 내가 그때 이런 심정이었구나 싶었다. 이래서 기록을 하는구나. 그때의 감정이 생생히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브런치는 영화 조감독직 수락 이후로 글이 끊겨 있었다.
오랜만에 접하는 영화 현장은 당연히 힘들었다. 모든 현장은 힘들기 마련인데, 저예산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페이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페이로는 소위 잘 나가는 스탭을 고용할 수가 없다. 초짜이거나 비교적 페이가 싼 스탭을 고용해야 한다. 경력이 좋은 스탭을 고용하려면 한 번만 도와달라고 인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용된 스탭은 부족한 페이를 받으니 돈을 제대로 준 영화보다는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된다.
프리프로덕션을 시작하자마자, 이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바로 알게 되었다. 예산은 한정적인데, 감독이 요구하는 것은 너무 많았다. 스태프들에게 회의 날짜를 잡으려고 연락하면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조감독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정신없이 촬영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크랭크인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모든 스태프들은 크랭크업만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크랭크 업하면 다시 현장이 그리워지기 시작하고...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촬영을 하는 현장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생기랄까. 그런 기운이 있다. 그게 정말 중독적이다. 그래서 감독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촬영한 영화는 후반작업을 거쳐 이미 개봉을 했다. 아쉬운 결과물에 아쉬운 흥행성적이었다. 나름 고생을 해서 찍은 장면들은 편집으로 대부분 날아갔다. 찍을 때도 편집될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편집이 되었다. 완성도는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감독은 아니니까. 욕도 감독이 먹고, 영광도 감독의 몫인 것이다.
크랭크 업을 하고 연말마다 하는 추적검사를 했다. 뼈스캔, 흉부 CT로 암세포가 퍼지고 있지는 않은지 체크하는 검사였다. 그때부터 세 번의 검사를 연말마다 했지만, 내 암세포는 커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된 것이다. 발병 후 5년이 지나 산정특례 혜택도 끝나간다. 이제 건강 문제는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 아팠을 때의 막막했던 감정을 어딘가에 풀고 싶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만나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고, 건강도 회복했으니 이제 무슨 글을 브런치에 써야 하나 싶지만...
그냥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일기 쓰듯 써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야지. 휴식은 언제나 달콤하지만, 너무 달콤하기만 하면 이가 썩기 마련이니까. 그동안 너무 오래 쉰 셈이다.
올해는 좀 달려야지.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