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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Jan 26. 2022

#3 혼란

암이란 과연 무엇일까?

병명을 알았으니, 이제 병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이 병에 걸린 거죠?"

"모르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아냐는 듯한 태도였다. 그럼 의사가 모르면 누가 알아? 점점 상급종합병원의 의사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상담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고, 뭐 좀 물어보려고 하면 간호사한테 물어보라며 나가라고 했다. 수많은 대기 환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나는 무심한 의사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슬기로운 의사들은 다 어디 간 걸까?


의사들이 속 시원히 말을 해주지 않으니 직접 공부를 해야 했다. 암이 왜 생기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책을 사보고, 건강 유튜브를 구독하고, 카페에 가입해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다. 암세포는 매일 몸 곳곳에서 생겨나지만, 면역세포들이 그 암세포가 성장하지 않게 막아준다. 면역기능이 저하되면 점점 암세포가 커지게 되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결국 발병한다는 것이다. 내 몸속에 있는 암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암이 생기는 과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니 내가 암에 걸린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졌다.


오랜 자취생활 동안 이틀에 한 번씩 라면은 끓여먹었었고, 치킨, 피자, 햄버거, 편의점 도시락,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었었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콜라도 중독 수준으로 마셨다. 설탕은 대표적인 암의 원료다. 생활습관은 또 얼마나 안 좋았었나. 아침에 출근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거의 매일을 밤을 새웠다.

창문 밖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잠이 들었고, 점심 넘어서야 하루를 시작했다. 늦게 일어나다 보니 밤에는 항상 불면증에 시달렸다. 가장 안 좋았던 것은 나이 마흔을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이다. 현대인 중에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때만 해도 나이 40 전에 입봉을 하지 못 하면 내 인생이 끝날 것처럼 느껴졌다. 대학 동기형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흥행에 성공해 인생이 바뀌었고, 후배 동생도 흥행감독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나? 친구들의 성공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성공이 어느새 나를 옥죄는 족쇄가 되어있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여자 친구는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마흔이 다 되도록 꿈을 놓지 못하는 나를 철이 없다고 생각했다. 안정이 최우선의 가치인 여자 친구와 나는 매번 부딪쳤고, 오랜 싸움 끝에 결국 내가 졌다. 

사실 나도 지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못 한 거면 실력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3월까지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취직을 하기로 여친과 약속했다. 이 나이 먹고 어디에 취업해야 하나 싶었지만, 20대 철부지처럼 계속 꿈을 꿀 수는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2월에 암을 발견하게 됐으니, 취업 이야기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원인을 알았으니, 그 원인을 제거해야 했다.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시작했다. 인스턴트식품, 튀긴 음식, 밀가루, 고기 (돼지, 소)를 완전히 끊었다. 잡곡밥과 채식 위주로 먹었고,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나리오를 쓰지 않아야 했다. 시나리오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시작됐으니. 너무나도 좋아하는 운동 테니스도 중단해야 했다. 테니스는 편향 운동이라 허리에 좋지 않은 운동이었다. 요추 4번에 생긴 암세포는 꽤 커져서 요추 4번의 뼈를 주저앉혔다. 골절이 생겼기 때문에 테니스는 이제 칠 수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테니스 물품도 모두 정리했다. 세상에 맛있는 모든 것들은 왜 다 건강에 안 좋은 걸까? 매일같이 풀 데기만 먹다 보니 라면과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 진료 역시 세분화되었다.

1. 갑상선센터 내분비대사내과 

2. 갑상선/구강/두경부암센터 이비인후과 

3. 척추종양센터 신경외과


갑상선 쪽과 신경외과 의사가 만나서 협진을 논의했다고 했다. 갑상선 내분비내과 의사가 말했다.

"웬만하면 척추 쪽 암 떼고 우리 쪽으로 왔으면 좋겠는데"

난 얘기가 된 건가 싶어 신경외과 의사에게 가서 말했다.

"척추 쪽 수술을 먼저 하는 건가요?"

"척추 수술은 위험하고 큰 수술이니까 갑상선 수술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협진했다며? 뭘 상의했다는 거지? 각 과를 돌며 진료를 받아보니 이 사람들 내 병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특히 갑상선암이 척추로 퍼진 케이스에 대해서는 진료 경험이 부족해 보였다. 신경외과 척추 쪽 의사에게 물어보면 갑상선암은 내 전문이 아니니 모른다고 하고 갑상선 쪽 의사에게 가서 수술 후에 방사성 요오드 치료받으면 척추 쪽에도 효과가 있냐고 물어보니 그건 척추 쪽이라 나는 모른다고 했다.


현대 의학의 맹점이랄까. 각 분야가 세분화되어있다 보니 전문의라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밖에 모르고 있었다. 현대 의학은 대증요법에 치우쳐져 있다. 즉, 증상 제거에만 집중한다는 뜻이다. 암세포가 있으면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한다. 암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암세포와 항암치료 끝에 암세포가 없어져 완치 판정을 내렸던 환자가 반년만에 온몸에 암이 퍼져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암이 생겼던 생활 패턴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진료를 거듭할수록 나는 의사들을 점점 더 믿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여친의 지인이 내 소식을 듣고는 수술을 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무슨 소리지? 얘기를 들어보니 갑상선암은 과잉진료가 많으니 굳이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서울대 병원의 의사가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는데, 뭔 소리인가 싶었다. 미쳤나? 내가 반응을 하지 않자 대체 의학 쪽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보 잰다.


그곳에서는 일반 병원에서 쓰지 않는 장비를 쓰고 있었다. 몇 가지 장치를 손과 발에 채우고 헤드폰을 씌웠다. 그러더니 내 몸의 상태를 각 장기별로 체크를 해주었다. 이런 장비로 몸을 다 체크할 수 있다고?

이렇게 좋은 장비가 있으면 왜 병원에서 쓰지 않는 거지? 병원도 아니고, 의원도 아니었다.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인간의 에너지와 파동을 이용하는 치료였다. 이곳에서는 허리 쪽에 전기 치료를 해주었다. 도수치료보다 훨씬 더 허리가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대체 의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믿기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 속는 셈 치고 병원 진료 외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이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수술에 의문이 생긴 내가 갑상선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의사는 뭔 헛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수술 안 하면 죽어요!"


대체의학 원장은 병원에서 수술을 하더라도 지금 당장 하지는 말고 몸을 어느 정도 만든 다음에 하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 나면 면역력이 떨어져 그 여파로 암이 더 퍼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혹여나 수술 후에도 항암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혼란스러웠다. 정보가 너무 많았다. 암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다 보면 의사에게 살해되지 않는 방법...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절대 항암을 하면 안 된다느니, 자연치유가 어떻다느니...  말들이 많았다. 어디에서는 고기를 먹으라고 하고, 어디에서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홍삼이 좋다고도 했고, 먹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암환자 한 달 경력으로는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진짜 정보를 가려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여러 진료 끝에 갑상선암 수술을 먼저 하고 척추 수술을 나중에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갑상선암 수술하고 나면 얼마 뒤에 척추 수술을 하게 되나요?"

"뭐 최대한 빨리 해야죠"

그래도 빨리 수술을 해준다니 안심이 되었다. 수술 예정자들이 워낙 많아서 갑상선암 수술도 한 달 뒤로 겨우 잡은 상황이었다. 내 몸속에 암세포가 더 자라기 전에 하루 빨리라도 수술을 해야 될 것 같았다. 


한 주가 지나 신경외과 의사가 뜻밖의 소리를 했다.

"근데 수술을 해도 척추 쪽 암을 다 제거를 못 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죠? 그러면 수술을 왜 하나요?"

"신경이 많이 지나다녀서 잘못 건드리면 하반신 마비가 옵니다"

"그러면 방사선 치료 같은 거 하나요?"

"방사선 치료는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거지? 황당해하며 다시 물어보았지만 신경외과 의사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내 몸의 문제는 갑상선암은 수술로 쉽게 제거가 가능한 반면, 요추에 있는 암은 수술로 제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거였다. 이쯤 되니 자신 없어하는 의사에게 내 몸을 맡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같은 서울대 병원에서 척추 쪽 권위자인 다른 의사로 바꾸려고 했는데, 같은 병원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어쩐지 이 의사의 예약 일정이 여유롭더라니. 그래서 다시금 인터넷을 샅샅이 뒤질 수밖에 없었다. 구글에서 갑상선암 뼈 전이 케이스에 대한 논문을 찾았다. 그 논문을 쓴 의사를 찾아보니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의사는 서울대 병원에서 찍은 MRI와 CT 사진을 보고 말했다. 

"뼈가 주저앉았네요. 갑상선암 수술은 아직 안 했죠?"

"네"

"이건 갑상선 수술하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하면 효과가 있으니까 좀 지켜보죠"

"척추 수술은 안 해도 되나요?"

"많이 아파요?"

"좀 뻐근하긴 한데 견딜만해요"

"수술은 못 걸어 다닐 때 정도 돼야 하는 거예요. 갑상선암 수술 먼저 하고 요오드 치료하면 아마 효과가 있을 겁니다"


같은 척추 사진을 보고 네 명의 의사가 다 다르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많은 병원을 다녀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병원의 의사는 갑상선암 뼈 전이 케이스를 다뤄본 의사였다. 서울대병원의 의사만 믿고 덜컥 수술을 할 뻔했다. 평생 못 걸을 위험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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