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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Jan 27. 2022

#4 친구

암 치료 비용

수술을 앞두고 몸 관리를 혹독하게 했다. 좋은 것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쁜 것을 안 먹는 것이었다. 채식 위주로 식재료를 전부 바꿨고, 하루에 3리터의 알칼리 수소수를 마셔 몸속 노폐물을 빼려고 노력했다. 먹는 습관을 바꾸자 설사가 멈췄다. 그동안 내가 정말 안 좋은 것을 많이 먹고 있었구나 싶었다.


아프기 전에도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건 아니었는데도, 순식간에 8kg이 빠져 55kg이 되었다. 몸속의 독소가 빠져나가자 항상 부어있던 얼굴의 부기가 빠졌다. 그러니 얼굴이 더 잘생겨 보였다. 다이어트가 최고의 성형이라더니. 구글 포토에 저장돼있던 몇 년 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 얼굴 부어있는 돼지가 나라고? 라면 다섯 봉 끓여먹고 자다가 방금 일어난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아예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매일같이 건강한 재료로 만든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대신 아버지가 광주에서 혼자 식사를 하셔야 했다. 나에겐 나를 끔찍하게 아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말 엄청난 행운아였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건 편한 부분이 많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굉장히 괴롭기도 했다. 하루 종일 트로트 노래를 강제로 들어야 했다. 나는 미스터 트롯 멤버들의 이름과 노래 제목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전부 외워버렸다. 어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기셨다고 했다. 

성은 임이요. 이름은 영웅이었다.


암 치료는 돈이 많이 든다. 병원비가 많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암에 걸리면 중증 등록이 되어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다. 병원비의 5%만 결제하면 되었다. 95%는 국가가 지불하였다. 현대의학에는 불만이 많았지만,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대단했다. 이번 코로나를 통해 어느 정도 증명된 것 같기도 하고. 대신 대체 의학 비용이 꽤 들었다. 갈 때마다 10만 원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갔으니 꽤 큰 비용이었다. 식재료를 살 때도 유기농으로 좋은 재료만 사다 보니 꽤 큰돈이 나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수술 때까지 몸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각종 검사가 끝나자, 수술 날짜를 잡고는 끝이었다. 갑상선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음식은 어떻게 먹어야 될까요?"

"맘대로 드세요. 갑상선은 음식이랑 상관이 없습니다"

에휴,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병명이 밝혀지고 나서는 놀우회 친구들과 대학 친구들 단톡방에 발병 사실을 알렸다. 이런 소식을 듣기에는 친구나 나나 아직 젊었다. 암이 전이됐다는 소식에 놀우회 고향 친구들은 놀라서 바로 전화를 해왔다. 특히 인천 친구는 전화상에서 울먹였다.

"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도 아픈 거였어?"

"어"

친구는 갑자기 자기한테 연락해 인천까지 찾아온 이유를 짐작했다. 그래서 더 마음 아파했다.

"말을 하지"

"그때는 무슨 병인지도 몰랐어"


몇 주지나 놀우회 친구들이 얼굴 보자고 했다. 파주에 있는 다른 친구 집이었다. 원래 수도권에 살고 있는 친구들 다 모이려면 날을 잡기가 힘들었는데, 그날은 전부 다 와있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찾아가 수다를 떨었다. 워낙 오랜 친구들이라 만날 때마다 즐거웠다.  나이가 들 수록 수다의 주제가 계속 바뀌었는데, 요맘때쯤에는 육아와 재테크가 주된 화두였다. 하지만 그날 대화의 주제는 바로 나였다. 지금 상태가 어떻고, 어떻게 치료하고 있고,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지. 마지막 질문의 답은 나도 모르고 있었다. 잘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한지는 나도 정말 궁금했다. 웃고 떠들다가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인천 친구는 또 눈물을 흘렸다. 너무 늦게 자면 안 되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데 친구가 나를 붙잡으며 무언가를 건넸다. 흰색 봉투였다.

"뭐야 이거?"

"얼마 안 되는데, 치료에 보태써"

"아니야, 괜찮어"

"받어"

울컥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뒀다니. 주차장에 내려와 차에서 봉투를 열어보니 100만 원이었다.


고향 친구들을 시작으로 대학 동기들이 돈을 모아 200만 원을 주었고, 흥행감독인 후배 동생이 100만 원을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입봉작으로 크게 터트린 절친형이 1000만 원을 주었다. 치료에 보태 쓰라고. 가족도 아닌 친구들이 자기의 돈을 그냥 내게 주었다. 동기형은 흥행 보너스로 10억 가까운 돈을 받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큰돈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흥행감독이 됐다면 형처럼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 천만 원까지는 힘들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내가 인생을 잘 살았나 보다 싶었다. 여친은 내 친구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빠는 진짜 친구복이 많네. 친구들이 얼마를 주었고,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메모장에 다 적어놓았다. 나중에 잊지 않고 다 갚아주리라. 이자 톡톡히 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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