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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Feb 04. 2022

#5 수술

갑상선암 수술

대체 의학 치료하는 곳은 광명에 있었다. 치료 내용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에서는 특별히 뭘 하는 게 없어서 대체 의학 치료라도 받고 싶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꾸준히 다니면서 허리에 전기치료를 받으니 점점 허리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몸 관리를 잘해서인지 대체 의학의 효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몸 상태는 나아지고 있었다.


그즈음에는 수술을 앞두고 감정이 널뛰기를 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좋다가도 어느 순간 우울해지는 걸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항상 트로트를 듣고 계셨기 때문에 임영웅과 영탁, 이찬원, 정동원의 노래를 나도 어쩔 수 없이 들었는데, 광명 가는 차 안에서도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면 어느새 나도 기분이 업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음악의 힘이려나. 미스터 트롯이 왜 인기가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어느새 입원일이 다가왔다. 수술을 앞두고 한 검사에 간수치가 안 좋게 나와서 수술이 미뤄질 뻔했는데, 다행히 추가 검사에서 간수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수술은 일정대로 가능하게 됐다. 세브란스 암병원 주차장은 항상 차가 많다.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는 항상 만차여서 주차를 할 수 없었다. 지하 4층부터는 빈자리가 있어 주차를 할 수 있었는데도, 항상 지하 5층에 주차를 하고는 했다. 평소 미신을 믿지는 않았는데도, 쓸데없이 4라는 숫자에 의미 부여가 되는 걸 막기는 힘들었다. 나약해진 마음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입원과 수술.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다섯 명과 함께 병실을 썼다. 며칠 전에 수술을 하고 퇴원을 앞두고 있는 사람. 재발이 되어 세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는 사람. 같은 병이었지만 상태는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수술 날 새벽. 전날 밤 억지로 잠을 청해 겨우 잠들었는데, 간호사가 깨우더니 채혈을 했다. 첫 번째 수술이니 곧 수술 준비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수술로 갑상선을 뗀 다음 조직검사를 한 다음에야 갑상선암 확진이 된다고 했다. 암이 아닐 경우도 있어서 수술 중에 조직검사를 시행하고 결과를 듣고 난 후에 수술을 마저 진행한다는 거였다.


갑상선암은 분화암과 미분화암으로 나뉜다. 분화암은 유두암, 여포암, 수질암으로 나뉘고, 미분화암일 경우에는 확진되고 6개월 안에 죽는다고 했다. 대부분이 갑상선 유두암이고 미분화암은 극히 드물었다. 미분화암일 가능성은 없었지만, 갑상선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럼 목을 절개해서 떼고 난 다음 아니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그럼 척추에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의문이 남았지만, 갑상선암이길 빌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종잡기가 힘들었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했다. 명멸하는 형광등 불빛. 처음 경험해보는 긴장감이었다. 이 느낌을 잘 기억해야지.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으니까. 수술실에 들어가니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서 간호사의 '마취 들어갑니다' 소리를 끝으로 기억의 스위치가 팍 꺼져버렸다.


수술 후 대기실에서 정신을 차렸다. 2~3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갑상선암이 맞았나요?"

"그건 담당 선생님한테 나중에 들으세요"

갑상선암 유무가 가장 궁금했지만, 간호사도 모르는 것 같았다.


병실로 돌아왔다. 전신마취 수술이 끝난 다음에는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마취된 동안 폐가 제 기능을 안 하고 있어서 수술 후에는 심호흡을 계속해줘야 한다고 했다. 목에 붕대가 붙어있는 게 불편했지만, 마취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갑상선암이 맞습니다. 갑상선은 전절제를 했고, 임파선 전이된 부분도 깔끔하게 제거를 했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어요"

갑상선 유두암이었고, 15% 정도 미분화된 상태였다. 분화암을 오랜 시간 동안 방치를 하면 미분화암으로 변하는데, 일부가 미분화되어있었던 거였다. 더 오랫동안 방치를 했다면 정말 큰일이 날뻔했다.


수술을 위해 입원하고 가장 안 좋았던 기억을 뽑자면 매일 새벽 피를 뽑는 일이었다. 갑상선 호르몬 수치 체크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한창 자고 있는 중에 채혈을 한다고 매일같이 깨우는 거다. 주사 바늘이 딱히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잘 아는 익숙한 공포랄까, 그게 그렇게 싫었다. 


수술 후 하루가 지나자 좀 더 견딜 만 해졌다. 수술 전 몸 관리를 빡세게 한 덕분 같았다. 나보다 하루 늦게 입원한 30대 초반 환자는 목의 흉터가 싫어서인지 겨드랑이 절개로 수술을 한다고 했다. 로봇 수술이라 시간이 더 걸리는 수술이었다. 여성 환자들이 많이들 선택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수술이 금방 끝났는데, 오후에 수술하러 들어간 그 환자는 밤 11시가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환자의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싶었다. 슬슬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할 때쯤 자정이 다 되어 수술실에서 환자가 돌아왔다.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 경우였다. 전신 마취 수술이 몸에 많은 데미지를 준다고 들어서 그 환자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환자는 내가 퇴원을 할 때까지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 나는 수술 후 다음날부터 쌩쌩하게 돌아다녔는데, 그 환자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전신 마취 상태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술 집도의도 꽤 중요하구나 싶었다. 목에 흉터는 생기겠지만, 수술 시간이 짧은 목 절개를 선택한 것이 잘한 선택으로 느껴졌다.


내 몸에 갑상선을 떼어버렸으니 이제부턴 평생 갑상선 호르몬 약을 먹어야 했다. 평소 영화처럼 무인도에 떨어져 그곳에서 생존하는 걸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 갑상선이 없으니 이젠 무인도도 함부로 못 가겠구나 싶어 기분이 안 좋아졌다. 정말 걱정도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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