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비즈니스 파트너가 추천한 곳.
말라카.
여행 계획은 애당초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말라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말라카 여행.
무지 상태의 나에게 말라카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사실, 이런 식의 여행은 나에게 딱 맞는다.
20대 때부터 시작된 방랑벽은 지금까지 비슷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데 변함없는 게 딱 그것이다.
목적지에 대한 스터디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산에 다닐 때는 지도를 머릿속에 넣어 두고 가지만 말이다.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흔히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반 여행지와는 달리, 산속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정말 난감하기 때문이다.
처음 산을 접했을 때 선배들이 몽둥이로 찜질을 하면서까지 지도를 외우게 만들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덕분에 지금도 설악산 정도는 백지 위에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어느 지점에 뚝 떨어뜨려 놔도 어디에 갈림길이 있는지, 어디에 탈출로가 있는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 지도조차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번 말라카 여행은 등산과는 상황이 다르긴 했다.
전날 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했다.
그렇게 숙소가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피곤이란 놈은 나를 깊이 잠들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샤워를 하고 도망치다시피 튀어나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전날 숙소에 들어서며 보았던 과일 판매점 하나가 영업 중이었다.
히잡을 둘러 쓴 두 여자가 그 앞에서 뭔가를 구입하고 있었다.
살짝 배가 고팠지만 빨리 터미널에 가서 말라카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에 발길을 재촉했다.
말라카까지는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했으니 빨리 가야 점심 나절에나 도착할 듯했다.
숙소 위치가 어딘지도 잘 모르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만 했다.
택시 안에서 구글 지도를 열어 현재 위치와 TBS터미널과의 거리를 살폈는데 GPS 위치와 동선을 보니 왠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의심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었지만 설마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눌러 내렸다.
하지만 모든 게 의심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도심 고속도로 비슷한 고속화 도로를 타고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언제부터 이렇듯 사소한 문제에도 의심하는 사람이 되었던가?
나는 스스로를 질책했다.
나와 나 사이에 선과 악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다 보니 택시는 TBS터미널 입체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TBS터미널은 쿠알라룸푸르의 통합버스터미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반포에 있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인 셈이다.
터미널 안에 들어서니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인종을 목격하게 됐다.
백패커들도 많이 보였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안내판에는 딱히 친절한 안내가 없어 창구를 잘못 찾아갔다가 안내원의 도움으로 말라카 버스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곳에 줄을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앞 줄에서 귀에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4인 가족인데 한국 사람들이다.
혹시나 싶어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그들 역시 나를 반가워한다.
자기들은 9시 50분 버스 티켓을 샀으니 나도 같은 시간 티켓을 구입하라는 것이다.
그들 가족은 말레이시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고 했다.
어린 남매가 정말 즐거워 보였다.
비즈니스 파트너는 내게 말라카는 역사적인 성지 같은 곳이라며 주말에 꼭 가보기를 권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라카에 사느냐고 물었는데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당일치기로 가는 거란다.
난 어떻게 할까?
1박 2일? 아니면 월요일 새벽 버스로 올라올까?
아무런 계획도 없이 출발한 여정이라 생각 자체가 없는 거다. ^^
TBS터미널에서 말라카까지 가는 버스 티켓이다.
9시 50분 버스.
삼성 로고는 말레이시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정치에 휘말려 이리저리 피곤한 일이 많은 기업인데 외국 나오면 언제나 자랑스러운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오래전 삼성 애니콜 June이라는 모델이 나왔을 때 미국 친구가 그 전화기 주고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던 선배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 뭐라도 요기를 할 생각으로 곳곳을 뒤지고 다니는데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괜한 걸음인가 싶기도 하고 해서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10번 게이트로 가는 도중에는 티켓을 태그 해야만 출입이 가능한 입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거라 생소했다.
아무튼 QR코드를 센서에 태그하고 들어가니 아까 만났던 한국인 가족이 보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어쩌면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말레이시아의 기억이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의 상황 자체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 그리 즐거울까?
별 일 아닌 일로 웃고, 울기를 반복하다 보면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겠지.
세상을 알아가면서 웃기보다 찡그릴 날이 더 많아질 아이들을 생각하니 왠지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버스 좌석이 좁다.
젠장.
이 친구 때문에 정말 피곤한 상황이었다.
나도 털 좀 있는 편인데 나는 민둥산이나 마찬가지다.
저 덥수룩한 팔의 털.
어지간한 대머리보다 털이 더 많고 길다.
거기다 곱슬거리기까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 살에 비벼대는 통에 수십 번은 기겁했으리라.
내가 아니라 여자였다면 아주 까무러칠 일이었다.
갑자기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반팔을 입은 상태라면 옆자리 사람들에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라도 일깨워줘서 고맙네. 털 친구.
드디어 말라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또 사우나가 시작됐다.
높은 습도에 내 몸이 익어가는 느낌이다.
터미널에서 나온 나는 구글 맵을 열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거리는 기껏 20km 정도.
나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딱히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시간까지 가야 하는 이유도 없다.
숙소 역시 예약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도를 확인하고 방향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 남쪽으로 걸어간다.
육교를 지나는데 사람 한 명 없다.
육교 아래로는 꽤 많은 차량이 지난다.
저 넓은 길을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 참에 짚고 넘어갈 이야기가 있다.
말레이시아는 무단횡단에 관대하다.
어떤 도로에서건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처음엔 이걸 건너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익숙해져 버렸다.
운전자들 역시 대개 그런 무단횡단자에게 관대하다.
그게 그냥 그런 문화인 것이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운전습관은 우리나라보다 좋다고 봐야 한다.
조금은 느긋한 편이다.
열대지방 사람들의 성향 탓이지 싶다.
TESCO 매장이 상당히 크다.
말라카 중심지에서 여기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지도로만 봐도 약 5km 정도 직선도로 옆 길을 걸어야 한다.
가로수 가지가 내려앉아 좁게 낸 인도로는 걸을 수 없었다.
걷기 위해서는 맨홀이 난 곳으로 걸어가야 한다.
역시 나처럼 걷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3보 이상 승차의 개념을 가진 것도 같다.
나는 무계획이 계획인 무개념 여행자니 시간에 좇길 일이 없어 좋다.
배낭을 멘 나는 가벼운 발걸음을 끊임없이 옮겼다.
조금씩 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강은 Melaka River 다. 말라카 리버.
영어로는 멜라카인데 왜 말라카라고 부르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날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강은 역사를 품고 있었다.
이 길을 엉뚱하게 걷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
반가운 매장이 나타났다.
KIA자동차 전시장이 보이니 어찌나 반가운지......
가지고 있던 말레이시아 화폐는 모두 써 버리고 없었다.
뭐라도 먹고 다니려면 환전을 해야겠는데 마침 지나는 길에 환전소가 보였다.
대체 달러는 왜 가지고 다녔을까 싶었는데 이럴 때 필요한 것이었지 싶다.
환전소가 있는 건물인데 안에는 극장도 있다.
아마도 동시 상영 정도는 할 듯 보이는 곳이었다.
자전거를 취미로 하는 내게 반가운 표식이 나왔다.
자전거 전용도로.
처음 봤다. ^^
이게 어디까지 이어졌나 궁금했는데 어이없게도 얼마 가지 않았다.
한강은 물론 전국에 연결된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어진 우리나라의 환경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라는 것을 새로이 느끼고 있었다.
말라카 중심지에 거의 접어들 무렵, 은행들이 줄지어 선 대로변에 있는 야외형 식당을 만났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이상하게 여기서 배를 채우기는 싫었다.
그래도 말라카에 왔는데 말라카스러운, 말라카 다운 곳에서 뭔가를 먹어야 하지 싶었던 것이다.
지나는 길에 대추야자도 보았다.
열대는 열대구나 싶었다.
가로수에 흔히 보이는 녀석들.
하긴, 제주도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긴 하다.
말라카 중심지를 향해 가는 길에 상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티커 판매점.
온갖 잡다한 생필품을 파는 상점.
자동차 용품 판매점, 수리점 등 모두 집약되어 있는데 시장도 아닌 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위 스티커를 보면 말레이시아의 특이한 문화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말레이시아의 자동차들을 보면 스티커가 덕지덕지 하다.
예전에 현지인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른쪽 아래 사진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을 거다.
우리나라에도 판촉물로 많이 쓰는 춤추는 풍선 같은 건데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다.
게다가 구멍도 뚫려서 왜 저걸 켜 놓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 반가운 게 나타났다.
진로소주 <자두에 이슬>
친구들이 진로소주를 아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했다.
자전거 판매수리점이다.
딱히 좋은 자전거는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생활자전거 매장이다.
5년 전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에 있던 레저 용품점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만난 한국 제품은 겨우 KOVEA 가스버너 한 종류뿐이었다.
당시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었는데 말레이시아는 우리보다 레저 선진국이었다.
이미 당시만 해도 그랬다.
환경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나의 십 대 시절 로망이었던 픽업트럭에 오프로드 풀 튜닝된 차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곳이 말레이시아였다.
물론 라오스 갔을 때도 흔히 볼 수 있긴 했다.
스카이다이빙만 해도 그렇다.
국내에는 불과 얼마 전 용인에 실내 스카이다이빙 센터가 오픈했지만 말레이시아에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좀 더 상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상가 밀집지역을 지나가니 주택지가 나왔다.
이제 조금만 가면 걸어오면서 예약한 호텔이 나타난다.
온몸은 땀에 폭삭 젖었고 잠시라도 쉬었다가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말레이시아의 식물들 중 눈에 띄는 것들만 사진에 담았다.
일반적인 말레이시아 가옥도 몇 채 촬영했다.
대개 비슷한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종교색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평소 잔돈 짤랑거리는 게 싫어하는 편이고 주머니 볼록한 것도 싫어서 지갑도 사용하지 않는 나인데 말레이시아는 나에게 여러 불편함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화폐 단위가 너무 세분화되어있는 것도 피곤하게 했다.
평소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다니는 내게 말레이시아는 적응하기까지 상당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건물 옥상 모습이다.
이 모습을 보니 작년에 출판된 <블랙골드>의 서문에 쓴 내용이 기억났다.
원래 제목은 <곳집 창>으로 하려고 했던 건데 출판사의 요구로 <블랙골드>로 바꾸고 말았다.
원래 내 제목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나?
살짝 옮겨 보면 이렇다.
하늘 높이 떠오른 드론의 눈으로 본 도심의 모습이었는데......
유난히 구름이 낮다. 군데군데 구멍 난 구름 사이로 빛 내림이 한창이다. 간신히 빛 내림을 피한 도시는 숨을 죽여 호흡한다. 숨을 쉬듯 도시는 생명을 뿜는다.
도시의 시간은 멈춘 지 오래다. 지금껏 무심코 흘려 보던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뽀얀 뭉게구름 아래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선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귓가를 거스르던 도시의 소음은 대기 속으로 증발해 버린 듯 고요하다. 타임머신을 거꾸로 돌린다 해도 이 모습은 한동안 변함이 없을 것만 같다. 단지 옥상 위에 널린 빨래들의 춤사위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거리는 빛이 흐르기도 전에 환경미화원의 손길로 어루만져졌다. 주택가의 지붕 위에는 집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다양한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누구의 손길조차 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 위에는 도시의 온갖 수줍음이 자리 잡았다.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잘 꾸며진 화단, 바비큐 시설, 실내 온실, 운동기구들, 아이들 놀이터, 농구골대, 골프 연습 매트, 썬텐용 비치파라솔과 벤치, 휴식용 평상 등이 주택가의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아무렇게 늘어놓은 생활폐기물, 얼키설키 꼬인 전깃줄, 에어컨 실외기, 각종 배관도 보인다. 건물의 너저분한 것들을 천정에 감춰버린 듯 도시의 민낯을 대변한다.
어떻게 주차했을까? 골목 구석구석 자리 잡은 차량들은 벽과 키스하려는 듯 아슬아슬하다. 생을 포기한 것 마냥 생채기가 덕지덕지한 차도 보인다. 막다른 골목엔 꼬마 녀석들이 공놀이에 열중이다. 좁고 넓음이 꼬마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보인다. 골목 어귀의 조잡한 평상이 그늘을 지붕 삼고 있다. 평상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두 노인이 장기판에 빨려 들 듯 빠져 있다. 평상 옆엔 다른 노인 몇이 뒷짐을 지고 있다. 노인들과 꼬마들은 골목의 생명을 몽땅 지배하고 있다.
남산을 배경으로 한 자락 허리께엔 허름한 주택들이 자리 잡았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오램이 묻어난다. 하늘에서 본 경리단 인근의 풍경은 그다지 이색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도로변 음식점들의 배기관들은 주택가의 모습보다 어지럽다. 거미줄처럼 엮였다. 식당의 지저분한 불순물을 옥상 한 켠으로 치워버린 듯 부끄럽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횡단보도 중간쯤엔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섰다. 신호등의 파란불은 수명을 다해간다. 노인은 달팽이다. 긴 횡단 도보 맞은편 보도는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성급한 택시기사는 클락션을 눌러 댄다. 동그란 렌즈가 눈살을 찌푸린다. 구름 아래 하늘이다. 기껏해야 삼백 미터 높이다. 괴이한 형태의 검은색 물체가 두둥실 떠 있다. 날개가 여덟 개나 달린 녀석이다. 드론은 경리단 인근 주택가에서 떠올랐다. 한참을 주택가 상공에서 비행 중이다. 주민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각자의 일에 바쁘다. 드론이 날아오른 지 벌써 십 분이 넘었다. 하지만 지상 어디에도 내려앉을 것 같지 않다.
경리단과 하얏트호텔 중간쯤 되는 주택의 옥상이다. 드론을 감시하는 네 개의 눈동자가 있다. 그중 한 명은 드론의 조종기를 쥐고 있다. 다른 한 명은 그 옆에 서서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지켜본다. 두 사람은 형제인 듯 매우 닮았다. 둘 다 작은 눈에 마른 체구다. 키를 제외하고 딱히 다른 점을 찾으라면 키가 작은 사람의 눈이 좀 더 작은 편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얼굴에 두 개의 선을 찍 그은 듯한 눈매를 가졌다. 키가 크고 눈이 작은 남자는 이정한이고 키가 작고 눈이 특히 더 작은 남자는 이정현이다. 언뜻 보면 형제인 듯 하지만 결코 형제는 아니다. 동갑내기인 둘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함께 다닌 말 그대로 ‘단짝’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골에서 전학을 오게 된 정현은 전학 첫날 정한과 단짝이 되었다. 그들은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름도 비슷하고 중학생 때는 키도 고만고만했다. 얼굴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은꼴이었다. 둘 다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렸는데 이유는 달랐다. 정현은 전라남도 무안이 고향이다. 시골 아이들이 의례히 그렇듯이 그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많이 도왔다. 정한은 사정이 달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정한은 허구 헌 날 온종일 동네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그들은 학창 시절 내내 항상 같은 별명을 달고 살았다. 정한은 『구두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현은 전학 온 첫날부터 『구둣솔』이라는 별명을 달게 되었다. 그 둘을 동시에 부를 땐 『구두통』이라고 했다. 집도 같은 동네였기에 등하교는 물론 취미생활도 같이 했다. 구두통은 고교시절 딱 한번 가출이란 것을 한 적도 있었다. 이유란 것도 별 것 없었다. 단지, 가출이란 게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다는 정한의 어처구니없는 제안 때문이었다. 정현은 고민 없이 정한을 따랐다.
호텔에 들어오니 휴대폰 배터리도 아웃.
사우나 통에서 20km를 걸었더니 체력도 아웃.
샤워하고 잠시 낮잠 좀 자고 둘 다 충전 시간을 가졌다.
오후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