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전거길로 나오자 군데군데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보였다. 기껏 삼십 분 정도 차인데 라이더가 꽤 늘어난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안보 인근에서 숙박을 했던 모양이었다. 서울 인근에서 자전거를 탈 땐 라이더 서로가 인사를 나누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외곽으로 나와서 보니 대체로 상냥해 보였다. 최소한 목례 정도는 나누는 모습에 왠지 동호인 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때론 안녕하냐고, 즐거운 라이딩이 되라고, 안전 라이딩하라고 하는 상대의 인사를 무시할 수 없어 그에 따른 인사로 대응하던 이별하는 어느새 자신이 먼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자전거는 함께 라이딩하던 오승희, 이우정, 한세아, 김민경 그리고 임창완과 백인찬... 그래, 백인찬까지라고 그녀는 선을 긋고 있었던 그 사람들 외엔 공유되지 않았던 자전거 생활로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토종주를 나선 후로 특히, 이틀째 되던 날부터는 동호인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동안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왔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임창완 같은 경우 후줄근한 복장으로 서울 어딜 가도 자신이 유명인 임창완이라는 걸 감추지 않았다. 물론 입장이 조금은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용기의 부재와 자연인과는 별개인 세계에 스스로 격리하고 살아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해가 뜬 후 대지가 덥혀져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도 마스크 한번 벗어버리지 못하며 라이딩을 해야 하고 쉴 때조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어야만 하는 이런 모습에 회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그녀는 훌훌 털어버릴 자신은 없었다. 새로울 모든 상황이 두려웠다.
수안보를 벗어나니 다시 시골이 나타났다. 도심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손길을 탄 관광지와 그렇지 않은 곳은 극과 극의 모습을 보였다. 도심을 벗어나 살아보지 못해서였을까? 왠지 도시는 치안의 안정감을 주긴 했다. 하지만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이색적이고 예쁜 대한민국의 한적한 모습은 새로운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자전거길엔 의외로 가족끼리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였다. 특히 부자지간 모습이 가장 많았는데 세상에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업힐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이별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업힐을 달려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10km라고 알고 있던 이화령 업힐도 사실 알고 보니 업힐과 다운힐 모두 합한 거리라는 걸 알게 됐지만 5km라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릴 자신이 없었다. 웬 고집인가 싶었지만 중간에 쉬었다 오르기는 싫었다. 그저 한세아 정 떼기를 핑계로 몸과 마음을 쉬고자 하는 욕망에 나선 국토종주였지만 없던 오기 같은 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업힐은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숨이 조금 가빠지기 시작할 무렵 다운힐이 시작됐다. 그녀가 알기론 중간에 다운힐은 없다고 알고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을 때 멀리 평지가 보이고 있었다. 이화령이 아니었던 거다. 이별하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두려움도 동시에 밀려 들어왔다. 방금 넘은 고개도 편안하게 달릴 만한 구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연풍면 이정표가 나타나고서야 이별하는 이화령이 연풍에서 시작된다고 하던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정말 곧 이화령이 시작될 거라고 예고하는 것이었다. 고가도로 아래를 통과하니 도로 옆 잔디 위에 자전거를 눕혀둔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헬멧 등 보호장구를 해제한 오륙십 대 정도 되는 남자였다. 그들의 시선은 이별하에게 꽂혀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엔 그녀가 먼저 용기 내어 인사를 건넸다. 평상시 목소리와 다르게 변성하여 소리를 내어 그들이 알아 들었을 것 같진 않았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던 이별하는 급히 브레이크를 잡고 멈추어 섰다. 그들은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의아한 표정이라기보다는 놀란 표정이라 하는 게 맞다.
"아저씨. 여기 앞이 이화령이 맞나요?"
"네. 맞아요. 여기서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제 쭉 업힐이니까!"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별하는 정말 잠시 쉬어 가고 싶었지만 괜히 불편한 일을 만들기는 싫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목소리가 예쁘시네요."
"고맙습니다."
이별하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얼른 페달을 밟았다. 뒤로는 그들의 이야기가 꽂혀 들었다.
"몸매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모르긴 해도 얼굴도 예쁠 것 같네."
그녀는 등 뒤에 선 그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드디어 업힐이 시작됐다. 경사는 그리 세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고민스러웠다. 그들 말대로 잠시 쉬었다 가는 게 맞는 것 같았지만 이미 시작된 업힐을 멈추고 싶진 않았다. 경사도는 6%에서 7%, 8%, 9%로 조금씩 오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