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23화-심장도 두근두근

by 루파고

업힐은 끊임이 없었다. 힘은 계속 줄어들어 GPS에 기록되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가끔 힘이 들다 싶어 GPS를 확인하면 11%라는 경사도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화령은 그저 길었다. 풍경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지만 보인다 해도 볼 여유도 없었다. 그저 오르막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멋진 경관이라도 있었으면 업힐에 대한 두려움이 덜 했을 수도 있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량들이 원래 차도라는 걸 알게 했다. 어떤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뒤에서 자전거 타이어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숨소리도 함께였다. 자전거는 몇 대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아직 자전거를 타며 뒤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무섭기도 하고 부담스러워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라이딩 중 뒤를 돌아보거나 두 손을 떼고 라이딩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그저 부러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던 것이다. 괜한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뒤따라 오던 자전거는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안녕하세요?"

세 사람이었다. 그중 이별하보다 몸매가 좋아 보이는 여자도 한 명 보였다. 운동으로 다듬어진 근육으로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그녀는 그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탄탄하진 근육으로 예전 같지 않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정 조족지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오셨어요?"

맨 뒤에 달리던 여자가 호흡이 버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네~ 잘 달리시네요. 부러워요."

"저도 죽기 살기로 따라가는 중이네요. 먼저 갑니다."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못한 대화였다. 세 사람의 모습은 코너 한 개를 넘자 거리가 훅 벌어졌고 두 개째 되자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온 이별하는 끙끙거리며 페달링에 신경을 집중했다. 기어는 이미 다 털고 없었다. 다람쥐처럼 꾸준히 페달을 밟는 것 외엔 오르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젠 속도고 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정상까지 멈추지 않고 오를 수만 있기를 바랐다.

한참을 달리자 도로 오른쪽에 이화령까지 2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벌써 절반 이상 남았다는 건데 아직 거의 절반 가까이 남았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고민스러웠다. 지금까지만 해도 이렇게 고통스러웠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다는 데 맥이 빠진 것이다. 정말 멈췄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운 와중에 뒤쪽에서 또 자전거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경쾌한 소리였다. 바퀴 소리로 미루어 보아 로드바이크가 아닌 건 분명했다. MTB로 이런 속도를 내며 올라오는 사람은 괴물이 분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속도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접근이었다. 그녀를 스쳐간 건 다름 아닌 전기자전거를 탄 머리 희끗한 노인이었다. 처음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자전거도로에서 전기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두고 갑론을박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는 서로 피해도 없을 테니 별 문제 될 게 없으니 오히려 더 좋아 보였다. 부러움은 그저 부러움일 뿐 반가운 푯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상까지 1km 남았다는 걸 알고 나니 없던 힘도 나는 듯했다. 도로 오른쪽으로는 전과 달리 경치도 볼 수 있는 구간이 나타났다. 멀리 터널도 보이고 이화령 정상으로 보이는 전망대 모습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상 힘은 거의 다 빠져버린 상황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희망보다 더 확실한 건 없었다. 마음을 기댈 수 있다는 건 세상 그 무엇보다 편한 것이다. 코너 하나하나를 돌아가도 경사는 거의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정상이 바로 코 앞이라는 믿음과 희망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되었다.

전망대가 눈 앞 백여 미터 가까이에 펼쳐지자 세상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듯 후련했다. 앞으로도 업힐은 나오겠지만 가장 고민했던 난고비를 통과했다고 생각하니 국토종주는 벌써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 전망대 광장 주차장과 데크 위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사람만 해도 서른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별하는 숨을 몰아쉬며 데크 끝으로 향했다. 이화령 정상에서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마침 그곳엔 먼저 올라갔던 세 사람이 보였다. 그들 역시 이별하를 알아보았다.

"빨리 올라오셨네요."

여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 어쩌다 보니 올라왔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이별하는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 정체가 들통날까 싶었지만 이젠 알려지면 어떻겠나 싶은 생각도 들어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요. 설마 이별하는 아니시죠?"

그녀의 예상은 적중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민 중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만나기 힘든 일이란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네. 사실 제가 맞긴 해요. 하지만..."

그들 말곤 주변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님에도 이별하는 불구하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랬군요. 올라오면서 목소리가 이별하 씨 같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남자 둘 중 키가 큰 사람이 입을 열었다. 맨 앞을 달리던 괴물 같은 남자였다. 그의 표정엔 온갖 호감이 몽당 피어 있었다. 땅달막하고 종마 같은 다리 근육을 가진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쓰고 있던 고글을 벗더니 가장 안에서 수첩 하나를 꺼냈다.

"사인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주변을 살핀 여자는 수첩을 내밀었다.

"그리고 같이 사진 한 장 같이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자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건 특히 고민스러웠다.

"그럼 부탁이 있어요. SNS나 지인들에게 알리는 건 말릴 수 없겠지만 떡 삼일만 참아주시면 좋겠어요. 그때 세 분과 함께 한 사진은 제 인스타에도 올리면 어떨까요? 사실 혼자 나온 건 큰 결심도 있었고요, 용기 내서 혼자 나왔는데 알려지긴 싫어서요. 정말 혼자만의 여행을 하고 싶어서 그래요. 꼭 부탁드릴게요."

이별하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모두가 동의하는 걸 확인한 후 이별하는 고글과 마스크를 벗고 그들과 사진을 몇 장 촬영했다.

정상에서 그들은 애써 이별하를 감싸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덕분에 사람들 눈엔 띄지 않을 수 있었다. 삼십 분 가량 잡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먹을 것도 나눈 뒤 그녀가 먼저 인사를 하고 자리를 털었다.


앞으로 5km 다운힐 구간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더 반기고 있었을 것이다. 5km 업힐에 대한 보상이었다. 이별하의 마음은 두근 반, 세근 반 기대로 가득했다. 경사가 점점 가팔라져 6에서 11프로 사이를 오가는 다운힐을 달리자 체감되는 속도감에 없던 스트레스까지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껏 오 분도 채 달리지 않았다. 코너 하나를 돌아 나가는데 노란색 자전거 한 대가 업힐을 오르는 게 보였다.

그녀의 심장은 이화령을 오를 때보다 더 숨 가쁘게 뛰었다. 주체할 수 없이 두근두근 대는 심장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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