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24화-노란색의 그와 그

by 루파고

이별하는 브레이크를 살짝 잡아 속도를 줄였다. 시선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가는 노란 자전거의 남자에게 집중하며 쿵쾅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생각했다.

'왜 저 쪽에서 오는 걸까? 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걸까? 혹시 내 위치를 놓쳐 이화령을 넘었다가 걱정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걸까?'

그녀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자전거는 색상만 비슷했고 업힐을 오르는 사람은 그날 보았던 체구의 남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대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들며 느껴지는 상실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언제 봤다고 그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누군지 얼굴도 본 적 없는 상황이다. '정말 못 생겼으면 어쩌지? 할아버지일 수도 있잖아.'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별하의 상상은 끝없이 이어져 갔다. 노란 자전거는 순식간에 그녀를 스쳐 지나갔고 브레이크를 잡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빨리 노란 자전거의 남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GPS의 속도를 확인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이토록 빠른 다운힐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히 엄청난 속도였다. 코너링은 프로페셔널한 스포츠카 드라이버처럼 기울며 속도에 몸을 맡긴 채 달렸다. 처음엔 노란 자전거에게서 벗어나려던 충동 때문이었지만 나중엔 그저 다운힐에 몸을 맡기고 중력의 의지를 따를 뿐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별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행복하단 느낌이 들었던 거다. 세상을 초월하고, 세상을 던졌고, 세상을 무시하고, 세상과 상관없는 그녀 자신만의 세상을 만난 것만 같았다.

속도가 빨라 마스크로 새어 들어오는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별하는 세상에 없던 즐거움을 만끽했다. 만약 누군가 근처에 있었다면 그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녀는 이별하가 아닌 이별하가 되어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건 간헐적으로 이어졌지만 처음 느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조금씩 그 감흥이 줄어들어 나중엔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지만 느낌은 쭉 연결되어 있었다. 이화령의 다운힐은 생각보다 빨리 끝나버렸다. 내려오는 길에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인사를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라이딩 중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이었다. 서울 외곽에서 만난 그 어떤 다운힐도 이런 즐거움을 주지 못 했었다. 이미 끝나버린 라이딩이 아쉬워 뒤를 돌아보았다. 이별하는 뒤를 돌아보았다는 스스로를 인지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라이딩 중 뒤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식 중에 일어난 일.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별하는 용기 없는 자신을 나무랐지만 그뿐이었다. 도저히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한참을 달렸지만 그녀는 이화령의 다운힐을 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영원토록, 생명이 다 하기 전까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직 펼쳐내지 못한 연노랑 새싹들이 피어오른 오랜 숲터널을 쏘아 내려가던 그 몇 킬로미터는 평생의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별하는 이정표에서 문경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드디어 언젠가는 와 보리라 생각했던 그곳을 코 앞에 두고 있었던 거다. 몇 년 전 CF 촬영 때문에 패러글라이딩을 해본 적이 있었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에 탠덤으로 글라이딩을 했었는데 하늘을 날며 교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뼈에 스미도록 묘한 그리움 같은 걸 기록해 주었던 것이다. 문경이란 곳이 그런 곳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좁아터졌다고 말하는 대한민국이지만 가본 곳이라야 기껏 촬영 때문에 다녀본 곳들 뿐이었는데 문경은 왠지 이상향 같은 곳이 되어버린 거다. 그랬던 문경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자전거도로는 2차선 공도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강변 옆을 달리긴 했지만 강을 즐길 수는 없었다. 가끔씩 덤프트럭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바람에 몹시도 두려운 마음이 일기도 했지만 이런 위험한 도로는 머지않아 끝날 거라는 믿음으로 꾸준히 달렸다.

"이!"

완만하게 굽은 코너를 돌던 이별하는 자기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노란 자전거에 바로 그 남자가 도로 옆 갓길에서 뭔가를 하는 걸 목격한 것이다. 쪼그려 앉은 등에 불과했지만 그저께 봤던 뒷모습과 전날 밤 자신을 안내하던 그 실루엣이 맞아떨어진다는 걸 확신한 것이다.


이별하는 서서히... 서서히... 브레이크 레버를 잡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남자. 알지도 못하는 그 남자. 세상에 그 누구보다 못 생겼을지도 모를 그 남자. 그저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그 남자.

하지만 어떻게 자신이 밤길을 헤매고 있었을 걸 알았으며 왜, 어떤 이유로 무서운 초행길의 밤길에 등불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그라는 존재가 궁금했다. 왠지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왜 이런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마음이 시킨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이별하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쿵쾅거렸다. 두근 반, 세근 반... 두근두근... 두근두근...

호흡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가 속도를 줄이고 노란 자전거의 남자 근처에 다가섰지만 그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순간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오픈된 노란색 포르쉐 카레라911 컨버터블 스포츠카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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