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바이크 시즌3:사랑시> 26화-고백 하나

by 루파고

"왜죠?"

이별하는 물었다. 가까스로 자신을 누르고 의심스러웠던, 하지만 꼭 풀어내야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최후의 방어장치를 허물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을 좇았던 이유와 속내를 알게 된다면 자신 역시 스스럼없이 마음의 빗장을 열 생각이었다.

"네?"

그가 반문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표정인데 잘 캐물으면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답변이었다.

이별하는 다음 질문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와의 공감이래 봐야 지난밤의 뒷모습 정도가 전부였다. 공포 속 평화, 폭풍 뒤 고요, 어둠 속 빛...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게 하는 묘한 존재감 정도랄까?

"왜 저를 돕는 거죠?"

질문에 남자의 입술이 뻐끔거렸다. 이별하는 입모양새에서 그가 수줍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별하는 조급함이 느껴졌지만 그의 대답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그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가? 건너 건너로 만난 적이 있었던가? 기억 구석을 모두 뒤져 보았지만 생소한 얼굴이라는 건 확실했다. 한 가지 가능성이라면 열혈팬들 중 한 명일 수는 있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수많은 팬들 중 광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추 꿰고 있었기에 소심한 성향을 가진 팬일 가능성도 있다. 이별하는 더 이상의 의미 없는 추측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뿐. 그의 눈동자는 간헐적으로 이별하를 스치며 지나쳤다.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이내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리 깊지 않은 계곡 속 얕은 물살이 일으키는 물소리가 소곤대듯 이별하의 귀를 괴롭히고 있었다.

"팬입니다."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특별한 답을 기대했던 이별하는 자기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네요. 설마 사인해 달라고 따라오신 건 아니죠?"

계획하지 않았던 도발이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기에 이별하는 그런 질문이 입에서 튀어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과연 자신이 내뱉은 소리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였다.

"알고 따라온 건 맞습니다."

그의 목소리엔 불순한 의도 같은 게 숨어있지 않았다. 아니, 이별하는 그렇게 믿고 싶었고 믿어버린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에 대한 스스로의 방어기제를 해제시켜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에게 의심 같은 건 필요 없다며 연막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럼 어떤가 하는 또 다른 체념 같은 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히 확인해야 하는 부분은 있었다.

"어떻게 아신 거죠? 제가 라이딩 나온 건 저도 모르던 사실인 데요."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건가요?"

"음......"

이별하는 뭐라고 말을 이을 수 없어 가는 신음만 내었다. 갑자기 파고드는 의심은 조금씩 깊이를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별하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과연 그가 진실을 말해줄 것인가?

"스토킹을 하고 있었다고 봐야죠."

"스토킹...... 설마 했었는데 진짜였나 보네요."

남자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그가 비록 스토킹이란 단어를 뱉어냈지만 이별하에겐 두렵거나 불편라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팬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스토킹을 당해 왔었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언제나 부담스러운 압박감에 시달렸었다. 초반엔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겪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불법적인 일이란 건 압니다. 저는......"

남자는 말 끝을 흐렸지만 입술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작게 달싹거렸다. 이별하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입술을 읽고 있었다.

'사랑합니다.'

가수라는 직업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익힌 능력이었다. 그녀는 가슴이 심하게 콩닥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정체도 모르는 스토커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고 인정하고 싶진 않은데 이성과 감성은 별개로 노는 듯했다. 얼굴이 달아오른 걸 알 수 있었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어 남자는 눈치챌 수 없겠지만 부끄러움에 사로잡혀 갔다.

"짐을 꾸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는 걸 듣고 무작정 따라붙었습니다."

"그게 무슨?"

"그렇지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건 압니다. 저를 기억하지는 못 하시겠지만 우린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아는 사입니다. 제 마음은 그 후로 줄곧 한 사람만을 향해 있었죠."

그의 말에 이별하는 기억을 더듬어 갔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있다 해도 전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게 노래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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