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

by 루파고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는 나를 발견했다.

TV를 거의 보지 않던 내가 말이다.


어느 정도였는지는 친구들이 했던 말로 일축된다.

"혹시 북에서 내려온 거 아니냐?"

연예인 이름 하나 모르고 최신 유행어는 물론 흔히 쓰는 트렌디한 표현에도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 내가 TV를 보고 있었다니 황당한 일이었다.

어릴 땐 TV 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요즘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엔 어른들은 TV를 바보상자라며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보상자에 푹 빠져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바보상자를 가까이할 생각이 없었기에 오히려 의식적으로 멀리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TV를 보게 된 이유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 때문이다.

책으로 접하는 간접 경험은 일 퍼센트 이상 부족한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온갖 상상을 끼워 맞춰야 했기에 생각을 많이 해야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동영상으로 구성된 짜임새 있는 콘텐츠들 속엔 내겐 너무 부족하기만 한 데이터를 충족시켜 주는 광활한 지식이 넘쳐났다.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린 이유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것임으로 옳다, 그르다의 구분도 필요 없고 좋다, 나쁘다의 잣대도 필요 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을 거부하고 반대 방향을 달려갔던 걸까?

그렇지 않다면 극보수적인 편협의 울타리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했던 거다.

최첨단을 달리던 IT 붐업 시절 프로그래밍을 하던 첨단의 주자들 중 한 명이었던 난 지금 문명을 거부하고 원시인의 모습을 추종하는 웃지 못할 존재이고팠던 거다.

하하하!

이제 한번 웃고 나를 다시 돌아본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란 위기감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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