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남의 일일 뿐이다
참견과 참여엔 얼마큼의 용기가 필요한 걸까?
어젠 신사동 유명한 참치 전문점에서 술자리가 있었다. 9시가 되자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기에 어쩔 수없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지하철을 타러 가던 나는 골목 안 식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보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엔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택시를 잡을 방법이 없기에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카드 세 개 중 교통카드 기능이 되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다행히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명함지갑에 꽂혀있어서 1회용 승차권을 발매했다. 신사역은 출퇴근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풍경을 감상하던 중 오래전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부대끼는 인파로 어지럽던 플랫폼. 줄을 서는 것 자체도 의미가 없던 시절, 당시엔 차단벽도 없는 플랫폼이 얼마나 혼잡한지 푸시맨이라는 직업도 있었다.(불과 십 년 전에 중국 북경 지하철에서 푸시맨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요즘엔 출퇴근 시간대 9호선 정도나 되어야 당시의 1호선 수준이 될까 싶은데, 바글바글한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별의별 사건사고들이 신문에 기사로 나오곤 했다. 성추행 사건은 다반사였고 문틈에 끼어 몇 정거장을 더 지나쳐야 하는 일도 잦았다. 하긴 당시엔 버스도 창문으로 타곤 했을 정도니 요즘 대중교통 혼잡은 '혼잡'이란 단어로 표현하긴 애매할 정도이다. 버스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내리고 보니 주머니가 뜯어져 있다거나 가방이 찢어져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내용물은 사라지고 없는 게 당연하다.
1990년대 지하철 1호선에서 지하철 범죄를 목격한 적이 있다. 이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한 여자의 뒤에 바짝 붙어있는 걸 보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드라마는 이 정도에서 끊어주더라만. ㅎㅎㅎ
사람이 많긴 했지만 정말 밀착할 정도로 붐비지는 않았다. 나하고는 일 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였는데 그 남자의 손에 들린 칼이 보였다. 섬뜩한 느낌에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내 시선은 남자의 칼과 여자의 가방에 꽂힌 채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나도 모르게 남자의 칼을 쥔 손목을 거머쥐고 꺾고 있었다. 남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러지 말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그때 내 오른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른 남자 한 명이 내게 바짝 붙어 있었던 거다. 눈이 마주치자 그 남자는 아래쪽을 보라는 의미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정말 서슬 퍼런 칼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단도 하나가 내 옆구리에 살짝 담겨 있었다. 까불면 죽는다는 의미였을까?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나는 오금이 지리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내리자!"
여자의 가방을 노리던 남자가 자근자근 말했다. 내 옆구리에 칼 끝을 누르던 남자는 내 옆을 스치며 말했다.
"까불지 말어. 새꺄! 죽여버리려다 참았으니까."
지하철 문이 열리자 두 남자는 유유히 열차 밖으로 떠났고, 한 남자는 끝까지 내 눈을 노려보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상황을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나서서 돕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여자는 그제야 가방에 문제가 없음을 알고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죽었다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년 전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또 되지도 않는 정의론에 빠져 지나치면 그만일 문제에 참견했다가 큰 싸움이 날 뻔했던 적이 있는데, 앞으로 다시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때 역시 누구도 돕거나 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괜히 나 혼자 쓸데없는 짓을 해봐야 좋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세상은 따뜻하다. 하지만 관심은 부족하며, 번거로운 일에 끼어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끔 방송에서 나오는 의인들을 보면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당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른다는 거다.
당장 당신 앞에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겠는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