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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an 05. 2021

30년 맛집, 5탄- 곤지암 최미자소머리국밥

알면서도 지나쳤던 바로 그 식당, 소머리국밥의 본가!

동서를 가로지르는 42번 국도. 요즘이야 막힐 일 거의 없는 영동고속도로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주말, 연휴, 명절이 되면 끝없이 막히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에서 용평리조트까지 5시간이 걸린 기록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발굴한 곳이 바로 42번 국도였는데 원래는 영동고속도로가 생기기 전만 해도 강원도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도로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42번 국도는 이천, 여주를 통해 동해안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오래된 맛집들이 은근히 줄지어 섰다. 나중에 슬쩍 소개하긴 하겠지만 그 유명한 이천 쌀밥 전문 한정식집들 역시 42번 국도 옆에 있다. 최미자소머리국밥은 42번 국도 중 곤지암에 위치하고 있는데 유명한 곳이란 걸 알면서도 매번 무시하고 지나쳤던 곳이기에 늦게나마 방문하게 된 걸 감사히 여기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개인적으로는 청평에 있는 조그만 소머리국밥집을 베스트로 치고 있었는데 이번에 순위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물론 청평의 식당은 내가 아끼고 아끼는 식당이기에 아직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내 인스타그램에 두어 번 정도 소개하긴 했다. 그게 전부다. 내가 그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직접 끓여준 소머리국밥도 맛있지만 김치나 밑반찬이 그냥 할머니 손맛 고향집 밥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유명세를 타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두고 싶은 욕심이랄까?

어쨌거나, 최미자소머리국밥 이 곳은 삼십 년에 가까운 기간을 두고 소문만 익히 들어왔던 식당이다. 그런데 마침 부산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최미자소머리국밥은 선배님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불쑥 튀어 올라오고 말았다. 난 이제야 정말 가보게 되는구나 싶었고 전엔 느끼지 못했던 기대심이 부풀기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데 과연 이 집은 어땠을까? 소문에 찾아간 곳들 중 기대 이하의 수준으로 큰 실망을 안긴 곳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지만 선배님의 맛집 리스트 중엔 실망스러운 곳은 없었으니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러고 보니 위 사진은 이천 출장길에 다시 들러 찍은 사진이다. 처음 간 건 어두운 밤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밝은 듯 침침한 백색 간판이 어두운 주차장 앞을 밝히고 있었다. 간판엔 30년 전통이라 되어 있었지만 2021년인 현시점에서 보면 1981년 오픈한 최미자소머리국밥 간판 나이만 10년은 된 것이다.



우린 4명이었기에 국밥 4개와 수육 큰 걸 하나 주문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홀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의외로 많은 직원분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 같다. 테이블 위엔 <1981년 처음 시작한 최미자 소머리국밥>이라고 인장을 박아 두었다.


역시 수육이 먼저 차려졌다. 비주얼부터가 남다르다. 콜라겐 덩어리가 분명할 저것들의 패턴은 상상하기엔 징그러울 수 있지만 구미를 당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맛집의 당당함이 수육 하나로 끝장이었다. 이런 식당을 이십 년 넘게 무시하며 다녔던 나 자신을 원망했다.

식감? 쫄깃함이 혀를 감아도는 것이 소머리 수육과의 첫 만남 같았다. 전에 먹었던 모든 소머리 수육의 공식과 서열이 순식간에 깨져 나갔다. 순간 청평 할머니의 소머리국밥이 뇌리를 스쳤으나 아주 빠른 속도로 흩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변 손님들 테이블 위엔 소주병들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애주가인 나로서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만약 서울에 있었다면 당장 한 병 주문하고 볼 일이었으니 아쉽고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드디어 소머리국밥이 상 위에 내어졌고 뽀얀 소머리 국물(이 표현은 좀 그런가?) 위에 올려진 다진 파가 보기에도 맛깔스러웠다. 수북이 담긴 소머리고기는 또 어떻고...


술을 부르는 소머리고기가 국밥 안에도 엄청나다. 사진엔 없지만 김치가 곁들여진 소머리국밥은 출장길 한 끼 식사로 최고였던 것 같다. 이젠 아마도 42번 국도가 아니어도 근처에 지나가는 길엔 거의 무조건 들렀다 가게 될 게 분명하다. 한동안은 말이다. 아주 질릴 정도로 다니고서야 조금씩 뜸해지겠지만 추억 속에서 혀 끝에 감도는 깊은 소머리국밥의 감칠맛이 잊힐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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