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를 사랑하는 너의 주캐는 뭐니?
주캐든 부캐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
난 멀쩡히 일을 하는 사람이다. 취미는 많고 많다. 자전거도 타고, 낚시도 하고, 끼니때가 되면 가급적 맛집도 찾아다니며 짬을 내 글도 쓴다. 자전거를 타고 올레길도 타고, 생각나는 것들을 스마트폰에다 끄적여 놨다가 몇 분이라도 짬을 내서 글을 쓴다. 술자리가 없는 날엔 저녁에 몇 자 두드려 보기도 한다. 정리하면 내 일상은 글쓰기로 마무리된다고 할 수 있다.
소설 8편이 출판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소설도 많고 쓰는 과정에 있는 소설도 몇 편 된다. 나도 모르게 죽기 전에 100편을 쓰기로 작정을 하긴 했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근 신조어가 된 부캐나 주캐라는 단어에 나를 대입해 보니 내 부캐는 작가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주캐와 부캐의 구분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난 일을 즐기며 글쓰기도 즐기니까.
그런데 이 개념을 두고 살펴보니 부캐의 탄생과 존립의 가능성을 두고 말들이 많다. 부럽다 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부캐를 만드는 걸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 관리만 잘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부캐를 창조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일을 너무 좋아한다. 일하는 게 즐겁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정말 많다. 내 직업을 작가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상당수가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따로 하는 일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남들 노는 거 다 놀고, 남들 먹는 거 다 먹고, 마실 거 다 마시는면서 글 쓸 시간이 있겠냐고 말이다. 설사 그런 와중에 일은 해봤자 얼마니 열심히 하겠냐며 직업이 있다는 나를 의심한다.
난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다. 이걸 또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의외로 정말 많다. 아무튼 이래 저래 나는 작가라는 원하지 않았던 부캐를 얻었다. 그게 부캐라고 상각 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 쓰는 행위를 취미생활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도통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난 그래서 직업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백수라고 말하곤 한다. 이젠 그게 속 편하다. 나의 본캐, 부캐를 두고 저울질하며 뭔가 수익을 위한 행위를 한다는 걸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굳이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서다.
주캐가 됐든 부캐가 됐든 난 두 가지 다 열심이다. 사람들은 일 하면서 그렇게 많은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은 시간이 부족하거나 하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남들이 하는 걸 안 해서 시간이 남아돈다. 아주 단순한 사실인데 그들은 인정하지도 않고 실행하려 하지 않는다. TV를 안 보면 하루에 몇 시간이 남는다. 유튭 같은 건 내가 정한 몇 개의 취미 때문에 보는 채널 몇 개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가끔 보는 수준에 그친다. 멍 때리는 것 따윈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인터넷 서핑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게임 같은 건 아예 안 한다. 의외로 하루에 6시간 이상은 잔다. 밥은 천천히 먹으며 거의 매일 술자리가 있다. 일도 충분히 열심히 한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지만 시간을 비슷하게 쓰지는 않는다.
알면서도 잘 못하는 이유는 미련과 습관 때문인 거다. 이를 악물고 딱 일주일만 TV를 켜지 않고 살아보면 안다. 유튭도 줄이고, 쓸데없이 인터넷을 뒤적이는 행위도 줄인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도는지 느낄 것이고 책을 읽을 시간이 넉넉해진다. 난 그 시간도 부족하다 싶어 술도 끊었던 사람이다. 술을 끊으니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주정뱅이라는 부캐를 버릴 수 없기에 제삼 세계의 정신으로 돌아오는 또 다른 시간을 즐긴다. 핑계지만 술 마시며 대화하는 중에 나오는 아이디어도 쏠쏠하고 가끔 나도 모르는 알코올릭 부캐의 창의력에 감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부캐를 창조하고 싶다면 과감히 자잘한 나와의 줄다리기를 끝내야 한다. 부캐 창조의 진정한 욕망이 있다면 잡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 게으름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내 삶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오늘도 난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누군가가 스스로의 변화를 거부하려는 걸 봤다. 노력이 없으면 변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 난, 다시 내게 물었다. 너의 부캐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내 부캐는 현실 속에서 찾아낸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나의 부캐는 원래 나의 본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