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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26. 2021

20. 여주-충주 자전거 여행

올해 재활 라이딩을 시작한 지 딱 10번째 라이딩이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은 지난주 계획했다가 한 주 연기해서 다녀온 거다. 작년 7월 18일 124km를 달린 시점에 반포대교 인근에서 낙차를 하고 고관절이 부러지고 말았다. 주변 자전거 동호인들의 사고 소식을 간간히 듣곤 있었지만 막상 내게 그런 사고가 나고 보니 황당했다. 이번 주는 재활 라이딩을 시작한 지 딱 한 달째다. 8개월 만에 타던 날은 다시 자린이가 된 기분이 들었을 정도였다.

원래 계획으로는 국토종주길의 일부이기도 한 여주-충주 구간을 천천히 달리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며 천천히 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쭉쭉 뻗은 자전거길에 사람도 없어서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내 체중이 10kg 넘게 불었지만 그래도 자덕은 자덕인지라...


그나저나 시작부터 맞바람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순풍에 돛 단 듯 달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여주 강천섬 근처에 주차를 하고 출발한 시간이 8시 조금 넘어서였다. 한강이었다면 벌써 꽤 많은 라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어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준비를 하는 동안 두 명이 MTB 라이더가 짧은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다. 난 빠른 속도로 그들을 제치고 업힐을 쳐내고 길다면 긴 다운힐을 즐겼다.

초행길이라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게 그다지 후회스럽진 않았다. 다만, 기껏 제치고 온 라이더들은 바른 길을 달려가는 게 보인다는 게 안타까울 뿐. 



이번 라이딩에서 이 사진이 가장 만족스럽다. 라이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섬강교를 건너는데 이런 비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변에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요즘 다시 캠핑에 눈이 돌아가던 내겐 상당히 익숙하면서도 부러운 풍경이었다. 차에 실어 둔 루어낚싯대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라이딩 때려치우고 낚시나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인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낚시는 다음으로 미루고 충주에나 다녀오고 생각할 일이다.



그새 경기도 여주에서 벗어난 걸까? 강원도 원주에 들어섰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하지만 곧 충청도 표지판을 만났으니, 짧은 시간에 3개 도를 옮겨 다닌 게 됐다. 서울과는 달리 자전거 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구간을 자주 만났다. 하지만 그것도 좋았다. 눈 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이 라이딩 내내 이색적인 감성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초행길에서 느껴지는 들뜬 기대감은 다시 방문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거니까.



운이 좋았는지 마침 날씨가 맑고 솜털 모양의 구름들이 하늘 위를 꾸며 놓아 달리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강변길을 달리는 이런 멋진 자전거길이지만 내가 자전거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절대 구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멋진 비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준 자전거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게 자덕이 되라거나 자전거를 타보라거나 등을 떠밀었던 사람이 없었고 단지 나 스스로 자전거에 취미를 붙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된 거라 딱히 감사할 사람이 없었다.



남한강변을 따라 충주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남한강을 몇 번이고 건너야 했다. 강 위에서 보는 남한강은 드론 샷이 아닌 이상 구경할 수도 없지 싶다.



강변 옆으로 마을 몇 개를 거쳐 가다 보면 산책에 나선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는 한강변과 비교하면 이런 한적함에 도로 위에 한 시간 정도의 투자는 필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구간에서는 길을 잘못 들어 빙빙 돌기도 했다. 한두 주만 일찍 왔더라면 복숭아꽃 만개한 자전거길을 달릴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내년을 기약하며 페달에 힘을 가했다. 이 근처 자전거도로는 원래 경운기나 다니던 농로였을 것이다. 시멘트 포장된 길은 골재가 다 드러나 우들 두들 해서 승차감이 매우 나빴다. 만약 복숭아꽃이 만개해 있었다면 그런 것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강 건너 캠핑장에는 다양한 캠핑 스타일의 캠퍼들이 응집되어 있었다. 난 참 저런 문화를 싫어하는데... 도심에서 벗어나 다시 도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


가끔 강변길을 벗어나 도로를 달리게 되기도 했지만 여주에서 충주까지 가는 길은 남한강을 끼고 달리는 구간이 대부분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강이 훤히 보이는 길이었고 국도를 달리게 되었지만 차량 소통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일요일의 이른 시간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아주 가끔 만나게 되는 라이더들과는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눴다. 요즘 등산로에서는 서로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90년대 한창 산에 미쳐 있었을 때만 해도 설악산 깊은 계곡이나 험난한 능선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웠는지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곤 했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서로 미친 듯이 페달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다가가면서 짧게나마 인사를 나눴다는 것만 해도 좋았다.



이 구간을 지날 땐 왜 그토록 가슴이 쿵쾅거렸는지 모르겠다. 저 길고 긴 길 위에 선 인간은 달랑 나 혼자였다는 게 지금도 실감이 가지 않는다. 길게 잘 닦여진 자전거길을 미친 듯이 달리기보다 휘파람 불며 희희낙락 여유 있게 달렸던 그 시간은 자체가 힐링이었고 여유로운 휴식이었던 것 같다. 두 다리는 페달을 밟고 있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으니까.



이 길을 영상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길이라 여유 있게 촬영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달려볼 수 있을까?



이 다리는 이름도 없다. 한쪽 끝에선 진입로 공사가 한창이라 자갈이 깔린 흙길이다. 중장비로 꾹꾹 눌러 놔서 어차피 빨리 달릴 순 없어서 위험하진 않았다. 다리를 넘어가면서 펜스 틈 사이에 카메라를 끼워 넣어 간신히 한 컷 촬영해 두었다. 예쁘게 안 나와서 아쉽지만.



이런 풍경에 너무 익숙해졌음인가? 점점 이색적인 느낌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한적함이 가져다주는 여유는 그 무엇도 비견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여주에서 충주 가는 길은 기껏 50km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유유자적함은 50km가 아닌 500km처럼 길었고 5km만큼 짧게 느껴졌다.



페달에서 두 발에 뗀 건 여기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기껏 1분이었을까? 무정차로 충주까지 갔다는 것도 사실 여기서 잠시 멈췄던 걸 의식한다면 거짓이 될 거다. 어쨌든 난 여기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진 않았다. 마침 나타난 전망대를 지나치기 싫었던 거다. 왠지 뭔가 있을 듯해 보였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지나오면서 만났던 교량 위에서의 절경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으니까.



조금씩 충주가 다가오는 걸 느낄 즘, 짧은 업힐 구간 하나를 지나 다운힐이 시작되자 멀리 충주로 보이는 도심이 보였다. 충주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는 충주 외엔 없으니까 말이다. 벌써 충주까지 왔다는 사실에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일었다. 예상보다 너무 짧은 것 같았다.

재활 라이딩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시작한 운동은 조금씩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불과 이 주 전에는 팔당대교에서 여주 강천섬까지 왕복하면서 40km 단위로 쉬었던 걸 생하면......



이제 눈 앞에 충주시내가 훤하게 보이고 있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달려온 나였기에 충주시 도심이 나타나자 머릿속이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대체 어딜 가야 할까? 점심 식사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고 차로 돌아가면 끼니때를 놓칠 것인데 아침도 거른 채 달려왔음에도 배는 고프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에 스마트폰을 열어 지도를 보니 지난번 충주-상주 구간을 돌기 위해 충주댐을 돌아서 간 기억이 났다. 국도 합류 지점까지 다녀올까 싶어 자전거 도로를 찾았지만 자꾸 같은 자리만 빙빙 돌고 있었다. 지나가는 라이더라도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지도를 살펴 제대로 인지하고 나니 국토종주를 하는 듯한 젊은 친구가 한 명 지나가는 게 보였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달리는 것일까? 그 역시 초행길 같은데 길을 잘도 찾아간다. 난 느린 속도로 그를 따라가다가 확 트인 길을 만나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놈의 숫자가 뭐라고 평속에 연연하는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엔 길을 헤매느라 까먹은 평속에 미련을 두고 있었다.



넓은 비닐하우스 농경지를 좌측에 두고 길게 뻗은 자전거길이 펼쳐졌다. 저 끝에 가서 오늘의 목적지로 삼기로 하고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것이 맞바람인 듯, 뒷바람인 듯 아리송한 바람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은 지난 몇 주간 이어진 경험 때문이었다. 갈 때도 맞바람. 올 때도 맞바람...



이 도로의 끝에 동네 어르신들이 쓰려고 만들어 둔 것으로 보이는 작고 아담한 정자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곳도 아닌데 내 몸은 자연스럽게 처마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계획했던 대로 이 도로의 끝이 나의 목적지였는데 이런 좋은 쉼터가 있었다니~



55km를 달려왔다. 참 미련하게 달려왔구나.

난 자전거를 세우고 냉장고에서 꺼내 온 동네 빵집 팥빵을 꺼냈다. 등 뒤에서 내 몸의 열기를 받았을 팥빵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물통에 담아온 다래 달인 물과 함께 빵을 쪼아 먹는데 동네분들이 정자 안으로 들어오셨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 혼자 왔냐? 몇 시에 출발한 건데 대단하다. 충주엔 연고가 있어서 온 거냐? 어디까지 가냐? 등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봄기운을 잔뜩 받아 스멀스멀 여름으로 향해 가는 이파리들을 보며 봄의 끝자락을 만끽하려는데 아까 지나쳐 왔던 국토종주 젊은 친구가 보였다. 나도 언젠가는 국토종주를 해 보리라는 다짐과 함께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오늘 라이딩은 너무 짧기도 하고 해서 주차된 곳까지 가도 2시가 안 될 것 같았다. 이러다 밥은 언제 먹나? 가다가 배고프면 어쩌지?



하지만 고민은 고민일 뿐이었다. 난 또 생각지도 않은 짓을 하고 말았다. 여주까지 가는 길... 스카이다이빙 현장에서 멈춘 걸 제외하곤 발 한 짝 딛지 않고 달리고 말았던 것이다. 오는 길에 발견한 충주스카이다이빙센터. 내 라이선스는 2004년이었던가? 이젠 손 뗀 지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하다 하다 별 짓 다 한다 싶었지만 난 어쨌든 별 짓 다 하고 살긴 했다.



충주스카이다이빙센터 앞에서 사진 촬영한다고 기껏 1분 쉬었을까? 난 역시 죽자 사자 달렸다. 그리고 올 땐 몰랐는데 무려 15%나 되는 업힐을 만나 끌바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내 몸은 아직 정상을 찾지 못했다. 10%만 넘어가면 다리에 무리가 간다. 참아야 하지만 끌바는 할 수 없는 일이다.

650ml 물 한 통으로 114km를 달렸다. 오는 길에 편의점 같은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보였던 판매점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 멈추기 싫었던 거다. 난 마른 혀를 나무라며 차까지 무조건 달렸다. 소변도 참고 달린 난데...


차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어 원샷에 500ml를 마셨다. 투 샷엔 반 병. 그 정도 마시고 나니 해갈은 되었지만 배가 살살 고파오기 시작했다.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갈까 싶었지만 그냥 집에 가서 씻고 캔맥주나 하나 들이키고 싶었다. 아침, 점심 몽땅 굶고 기껏 물 한 통으로 연명하며 110km를 달렸으니 내 몸에게 뭔가 보상을 해줘도 되겠는데 이상하게 혼자 라이딩을 하게 되면 내게 너무 인색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번 라이딩은 113.89km다. 이동 시간은 4시간 25분. 상승고도는 별로 없다. 칼로리 소모는 만족스럽고 평균 속도는 기껏 25.7km/h

안타깝지만 길만 잃지 않았어도 30km/h는 채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재활을 목표로 한 라이딩이었는데 오히려 나를 혹사시킨 게 아닌가 싶지만 집에서 맥주 1캔, 소주 3병을 마시고도 잠이 오지 않아 12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그러고도 새벽 4시에 잠이 홀랑 깨서 허우적대는 내 꼴이라니...

건강해지는 신호인지 망가져가는 신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올 해에는 부산까지 국토종주길을 달려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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