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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15. 2021

21. 강릉에도 껌을 판다기에 자전거 타고 다녀왔다

6월 땡볕, 여주에서 강릉까지 177km, 세 사람의 미친 라이딩

지난해인 2020년 7월 18일 반포에서 낙차로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을 하고 올해 3월 21일부터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재활 첫 라이딩으로 짧게 잡는다고 반포-양수 왕복을 선택했는데, 재활 라이딩 치고는 무리다 싶을 정도의 거리였다. 사고로 다친 다리의 근육 손실이 심해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체중도 15kg나 늘어난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라이딩을 하며 3월 21일부터 현재까지 1,713.9km를 주행했다. 100.7kg에 육박하던 체중은 오늘 아침 91.8kg이 되었다. 물론 어제의 극한 라이딩 때문에 잠시 수분이 부족한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93kg 정도는 된 셈이다.

어쨌든 난 아직 재활 중이다. 골절된 고관절엔 아직 쇳덩어리가 들어있고, 아직도 이물감이 느껴지며, 근육량도 부족할뿐더러, 페달링도 엇박자가 난다. 아무튼 정상인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난 지난주 절친한 라이딩 멤버들에게 허튼소리를 지껄이고 말았다. 자전거 타고 강릉에 다녀오겠다고 말이다. 문제는 혼자 라이딩을 계획했던 강릉행 라이딩에 모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아뿔싸! 이 짐승들과 함께 가면 난 죽었구나 싶었고 한편으로는 함께 가는 즐거움에 기대심도 부풀어 올랐다.


속초에 껌 사러 간다며 자전거를 타고 미시령을 넘는 자덕들만의 농담이 있다. 그만큼 자전거 타고 미시령 넘는 게 쉽다는 말이지만, 사실은 너무 고단한 업힐의 역설인 거다.

지난겨울 난 혼자 눈 쌓인 미시령을 홀로 넘었던 적이 있었다. 얼마나 추웠던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넘었는데 이번엔 여름을 코앞에 둔 시기라 그리 어렵지 않게 강원도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강릉으로 껌 사러 가는 거다. 속초 갔을 땐 껌을 사기는커녕 콘도 잡아놓고 서울에서 지인들을 불러 모아 술 파티를 하고 말았는데 껌 사는 것을 잊고 말았다.


라이딩 전날, 팀이랄 것도 없는 우리 팀의 대장이자 사부님이 세차를 하다 발목을 접질려 라이딩에 동참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우리는 이번 라이딩 계획을 폭파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난 원래 계획대로 혼자 라이딩을 가는 걸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 역시 나와 동행하기로...



전날 긴장한 탓인지 아침엔 대변을 보지 못했다. 긴장? 내가? 설마~ 난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다. 100g이라도 줄여야 라이딩이 편하니까! 30분 가까이 변기 위에 눌러앉아 있었지만 결국 체중을 줄이려는 나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의 장 활동이 아직 미진했을 것 같기도 했고, 심적으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전날 밤 나는 에너지 비축을 위해 소고기 볶음, 새우구이 등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었는데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었다.



얼굴이 나오지 않았으니 이해하렴. 아는 사람 빼곤 누가 알겠니? 아무튼 대장을 제외한 세 명은 성남시청 주차장에서 6시에 만나 각자의 차를 주차하고 자전거를 타고 이매역까지 이동했다. 기껏 십 분 정도의 거리여서 본 라이딩에 전혀 부담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는 차도 거의 없고 한적했지만 평소 같았으면 공도를 달리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른다.

아무튼 이매역에 도착해 경강선 여주행 6시 50분 열차에 자전거를 실었다. 역시 자전거는 문지방령이 가장 넘기 힘든 고개라고 하는 말을 실감했다. 일단 자전거 복장을 차려 입고 집 밖으로만 나오면 어찌 그리 신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주역에서 인증샷을 남긴 후 라이딩 시작이다. 인증샷은 말 그대로 인증샷이다. 모르는 분이 마스크 쓰고 따라오려 하네? ^^ 힘들 텐데...



여주 시내를 벗어나니 시작부터 꽃길이다. 농로 양 옆으로 활짝 핀 꽃들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강릉까지 가는 길을 담은 GPX파일에 왜 이런 농로 위주의 코스로 되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미리 보고 왔던 코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난 분명 강천섬을 돌아 섬강을 따라 원주까지 가는 코스를 생각하고 왔는데...



초반에는 제법 속도를 내며 달렸고 25km를 달리도록 쉬지도 않았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미친 업힐이 나타났다. 설마 이런 코스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코스와는 다른 방향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앞길이 캄캄했다. 이러다 계속 사람 잡는 업힐만 나오는 건 아닐까? 긴 업힐을 올라 숨을 헐떡인 후 다시 긴 다운힐을 달렸다. 긴 다운힐은 업힐의 보상이지만 또 업힐이 이어질 거라는 걸 증명한다. 어차피 우리가 목표한 곳은 대관령을 넘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초반 업힐부터 질려 버렸지만 무려 190km를 가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기에 참아야 했다. 어쨌든 모든 고통을 감수하리라 잠적했던 라이딩 아니었던가? 기껏 두 시간 정도 달렸을까? 약 60km 정도를 달려 횡성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나쳐 오는 길에 편의점도 하나 있었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문막이나 원주까지는 가서 첫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는 점점 높아지고 하늘에 구름이 조금 있긴 했지만 기상청에서 예고했던 대로 온도가 만만치 않았다.



섬강 옆 편의점에서 1차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느낌 상 어지간히 체력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삼각김밥을 꾸역꾸역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콜라도 한 병, 집에서 내려온 맛있는 원두커피도 나눠 마셨다. 연양갱도 하나씩 지급됐지만 결국 먹지도 못하고 서울로 가지고 돌아오고 말았다. 아무튼 첫 휴식부터 음료가 당기는 게 어지간히 더울 것 같긴 했다.

아직까지 화장실을 가지 않았는데 소변으로 나올 수분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느끼지 못했을 뿐, 이미 더워진 날에 몸속의 수분이 올통 대기 중으로 증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작 알았다면 나중에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섬강을 가로질러 달리는데 멈춰 서 사진 한 장 촬영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뒤로 처져 사진 몇 컷을 촬영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날씨는 쨍쨍이다. 무시무시한 더위를 충분히 예고하고 있었다.



도로는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횡성을 오갔다. 길고 짧은 업힐과 다운힐이 이어졌다. 난 언제나 그랬듯 찍사였으니 이번 라이딩에서 열심히 폰카를 눌러댔다. 이 후기를 쓰려고 작정한 건 아니었지만 또 뭔가를 끄적일 게 분명하기도 했고 함께 라이딩하는 친구들에게 기록이라는 선물을 주는 재미도 있다. 그 덕에 나의 라이딩 사진은 거의 없다. ㅠㅠ 다른 레저에 심취해 있을 때에도 그랬는데 역시 찍사의 길은 외롭다.



일요일의 국도는 한적하기만 하다. 차량 소통은 거의 없다. 물론 제법 소통량이 있는 도로도 있지만 이번 라이딩 코스로 잡힌 길은 아마도 대부분 이런 한적한 코스인 것 같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번 코스는 내가 미리 조사했던 코스와 완전히 다른 길이었다. 짧고 굵게? 그래, 인생은 짧고 굵게 멋지게 가는 거다. 까짓 거~



머릿속엔 온통 태기산뿐이었다. 태기산! 태기산! 이번 코스에서 가장 두려운 구간이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태기산이 아니었다. 태기산으로 가는 길목엔 14%에 달하는 긴 업힐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올랐을까? 바닥에 아미노바이탈 한 봉지가 눈에 띄었다. 앞서 올라간 친구가 떨어뜨린 모양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의 것은 아니었는데 누군가 나를 위한 선물로 준 것인 듯한...) 나는 페달질을 멈추고 약간 되돌아와 아미노바이탈을 주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다시 업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전부터 체력이 바닥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본격 업힐이 시작되자 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의지가 무너지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꾹 참고 버티며 페달을 밟을 텐데(페달을 돌리는 개념마저 사라진 수준) 온몸에 힘이 빠진 것만 같았다. 이윽고 나는 클릿을 빼고 멈춰 섰다. 낙차 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봉크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게 정신은 말짱하고 몸만 헤롱 거리는 상황이었던 거다. 자전거를 거치시키지도 못한 채 핸들에 몸을 의지하는데 아무래도 중심을 잡기가 버거웠다. 수분 부족일까? 잠시 쉬고 있는데 내 뒤에 오던 친구가 더워서 죽겠다며 그늘이 없어 짜증 난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올라갔다. 난 그제야 내 몸의 상태를 이해했다. 더위를 먹은 거였다. 하긴, 내가 아무리 재활 중이라 할지라도 겨우 이 정도 경사에서 퍼질 사람이 아닌데...



거기서부터는 쭉 끌바(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였다. 더워 죽겠다던 친구도 더위를 먹었는지 도로 옆 그늘 하나를 찾아 들어가 쉬고 있었다. 자전거를 밀고 간신히 걸음을 옮기던 나도 친구 옆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먼저 올라간 친구는 왜 안 올라오냐며 카톡을... 우리는 진부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며 주절주절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고 있었다.

십 분은 쉰 것 같다. 둘 다 완전히 더위를 먹고 겔겔거렸다. 한참을 쉰 나는 다시 자전거를 밀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몇백 미터를 올랐을까? 꼬부랑꼬부랑 업힐은 좌로 우로 휘어지며 경사가 더 심해졌다.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힘든 판에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걷는 것도 쉽지 않다. 간신히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데 뒤에서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다. 부럽다. ㅠㅠ 어쨌거나 그렇게 꾸역꾸역 올라가다 보니 정상이 보여 한 사진 한 장 촬영해 봤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지도를 보니 북내미고개란다. 초반엔 6~8%, 후반엔 10~14% 경사다. 화악산도 올라 다녔던 난데, 겨우 이런 데서 뻗어버리다니 자존심 같은 건 별로 없지만 억장이 무너졌다.

잠시 숨을 돌리자 뒤따라 오던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업힐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저 부러울 뿐이고~

그리곤 긴 다운힐이 이어졌다. 둔내로 이어진 도로는 내가 알던 길과는 전혀 달랐다. 알고 보니 둔내 IC를 건너뛰고 오는 코스였던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흔하디 흔한 편의점은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된 거다. 목이 말라 허덕이던 내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던지 친구는 내 물통까지 받아 민가에서 물어 얻어다 주었다. 500ml나 되는 물을 한 번에 들이켜자, 본인도 힘든데 다시 한 병을 얻어다 주었다. 늦었지만 정말 고마웠다. 네 덕분에 강릉에 다녀올 수 있었던 거야.



편의점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다름 아닌 익숙한 지형지물 때문이었다. 스키, 스노보드에 미쳐 살았던 시절에 나는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좋아했다. 남들은 고속도로를 탈 때 난 국도를 달리며 강원도를 느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마주친 평강교회가 나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공포의 태기산에 진입한 것이다. 경사도는 5~7% 정도를 오가는 수준이었지만 아직 초반에 불과하다. 차로 다닐 때 태기산 오르막길이 꽤 세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태기산 업힐의 공포가 나를 짓누른 것이다. 우리는 평강교회 앞 널찍한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아미노바이탈, 포도당 캔디 등을 털어 먹었다. 길에서 주워온 아미노바이탈이 친구 것이 아닌 것도 거기서 알았다. 아무래도 힘겨워하는 나를 위해 하늘이 내린 선물인 거다. 그동안 착하게 살긴 했나? ㅎㅎ

우리가 쉬는 사이 외국인 여자 한 명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오르는 게 보였고 중간쯤에서 도로 옆 그늘에 누워 쉬는 모습을 보았다. 그게 바로 혼자 다니는 맛이지.



태기산 업힐은 5km 정도의 거리다. 이화령과 거의 비슷한 거리에 비슷한 경사도이다. 힘이 들지는 않지만 긴 업힐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다. 이화령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쉬운 것 같은데 왜 태기산을 그토록 두려워했던가? 이걸 화악산과 비교했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다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100km 정도였으니 체력적으로 버거울 순 있었을 것 같다. 태기산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냥 그런 업힐 수준으로 허탈하게 끝이 나버렸다. 오히려 너무 염려한 나머지 힘을 비축한 덕에 정상에 오르고도 힘이 남아 버렸으니까 말이다. 올라가면서 사진을 찍을 여유까지 있었으니.

잊을 뻔했는데 갈증이 심하니 눈에는 물이, 귀에는 물소리만 들려오는 것 같았다. 황당하게도 도로 옆에 심마니로 보이는 분들의 트럭과 텐트가 보였고 그 사이로 물이 졸졸졸 흐르는 게 보였다. 음료 페트병으로 임시 수도를 만들어 물을 받고 있었던 거다. 난 물통이 정말 바닥나 있었기에 정상에 있는 무이쉼터에서 음료를 사 먹겠다는 일념이었는데, 여기서 물을 보급할 수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평창군이다.



힘이 남긴 했지만 더운 건 여전하다. 구름이 가끔씩 하늘을 가려 주었지만 해만 뜨면 육수가 빠져나갔다.

고개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보니 배가 참 많이 나왔구나 싶다. 태기산을 내려오는 길에 우리 뒤로 처졌던 외국인 여자가 빠른 속도로 다운힐을 내달렸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데 너무 무모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겁나 빠른 속도로 우릴 제쳤다.

태기산의 긴 다운힐은 아마 이화령처럼 5km는 되었을 것 같다. 긴 다운힐 후 눈에 익숙한 휘닉스파크 인근의 도로를 달려 봉평을 지나 장평을 향했다. 인근 공도는 거의 손바닥처럼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지라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봉평 시내를 만나니 웬 문명을 만난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보급을 하고 강릉에 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이내 마음을 바꿔 편의점 앞 식당으로 눈을 돌렸다. 장평막국수다. 여기는 장평에서 꽤 유명한 식당인데 라이딩하다 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난 그저 시원한 막국수에 마음이 동했다. 이 무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거라면 그 무엇도 감사한 일이다. 태기산을 내려오면서 몸의 열이 꽤 식어 내려서 다행이었는데 장평막국수에서 시원한 에어컨, 선풍기 바람을 쐬고 시원한 막국수를 먹고 나니 몸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리프레시된 것이다. 회복력 죽이다.



장평을 지나 진부로 가는 길이다. 길이 너무 많이 변했다. 원래 있던 왕복 2차선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가 되었다. 원래 외길이었던 도로지만 전에도 소통량이 많지 않았는데 4차선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도로는 넓어져 훤했는데 강원도스러운 느낌은 상쇄되고 없었다. 아쉬움이 만감 했다.



4차선 도로 끝에 자전거가 다닐 수 있을 정도 되는 갓길이 있긴 했지만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분리된 부분이 많이 거슬렸다. 자칫 잘못 밟으면 바로 낙차의 위험이 있다. 마침 지나가는 차라도 있으면 큰일 난다. 몇 년 전 강화도에서 공도를 탈 때 자전거 핸들과 덤프트럭 뒷바퀴가 불과 1~2센티 정도로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즉사했을 경험이 있었기에 공도는 언제나 조심, 또 조심이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계곡 위를 지나는데 부자인 듯한 두 사람이 보 위에 돌을 쌓으며 고기잡이를 하는 걸 보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땡볕에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강릉에서 껌을 사온들 무슨 감동이냐며... 나도 저들처럼 물놀이나 즐길 걸.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이제 5~7% 정도를 오가는 약업힐로 긴 공도를 달려야 한다. 횡계까지만 가면 대관령은 식은 죽 먹기다. 다들 뙤약볕에 지쳐 힘도 안 나는 데다 맞바람까지 가세했다. 태양은 등 뒤 서쪽으로 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들 속도가 더디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난 힘이 다시 살아나버렸다. 하지만 내게 생명수 같은 물을 얻어다 살려준 친구를 버리고 갈 수 없기에 조금씩 밀바(뒤에서 자전거를 밀어주는 서비스?)도 해주며 속도를 냈다. 업힐에서는 내 몸 하나 구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말이다.

아무튼 X 쌀 힘도 짜내어 횡계를 향해 갔다. 마지막 몇백 미터는 경사가 조금 가팔라져 8~11% 정도를 오갔는데 거기서 남은 힘을 다 쏟아부었다. 이제 업힐은 없다시피 하니까 말이다.



횡계 시내로 접어들어 편의점에 잠시 멈추어 섰다. 성남으로 가는 7시 30분 시외버스는 이미 만석이라 9시 출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버스를 예매했다. 갑자기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 버렸다. 우리는 편의점 벤치에서 20분 정도 노닥거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용평리조트 진입하는 3거리를 지나는데 멀리 대관령 고개에 구름이 잔뜩 낀 게 보였다. 비가 오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밀려왔다. 비라도 내리면 다운힐이 너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대관령까지는 2~6% 정도의 약업힐이다. 대관령만 넘으면 다운힐과 평지뿐이니 힘겨운 구간은 끝이 난 거다.



역시 안개가 잔뜩이다. 비는 내리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대관령의 아름다운 조망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차로는 수백 번은 지나다녔을 곳이지만 자전거로는 처음인지라 그에 따른 기대는 별개의 것이었다.

대관령에서 사진을 촬영하려고 자전거를 세우고 보니 그토록 지나다녔으면서도 여기서 사진 한 장 촬영한 게 없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뭐 대수라고~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던 강릉행 라이딩에 마지막 복병이 나타났다. 짙은 안개 때문에 노면은 축축하고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됐다. 게다가 마주오는 차가 중앙선이라도 넘어버리는 상황이면 매우 곤란할 것이고 브레이크 오작동 사고라도 발생하면 큰일이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구간이지만 급경사 다운힐이라 예민해지고 있었다.

차로 다닐 땐 대관령 다운힐이 그렇게 긴 줄 몰랐던 것 같다. 안개비 때문에 브레이크 레버가 젖어 브레이크 잡는 것도 쉽지 않다. 드롭바를 잡은 손아귀는 나의 무거운 체중에 눌려 뻐근해졌고, 급경사에 급회전 구간이 많아 손을 뗄 여유도 없었다. 끝날 만하면 다시 굽어졌고 또 굽어졌다. 대관령의 굽이굽이길은 지칠 정도로 길었다.



드디어 성산이다. 남대천을 끼고 달리는 도로는 너무도 잘 정비가 되었지만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고 넘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1도 없었다. 미친 듯이 달려대는 차량들과 함께 공도를 달려야만 하는 공포를 누가 알까? 마침 앞뒤로 차가 한 대도 없는 구간에 이번 라이딩의 마지막이 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위로는 KTX 라인이 지나간다. 이제 곧 강릉고속버스터미널이다. 난 왜 다 끝나갈 무렵 힘이 나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본능인 걸까?



우리는 드디어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시간은 7시 25분 정도 된 것 같았다. 혹시 몰라 성남행 7시 30분 차를 알아보았으나 만석이었던 차에 3석이나 비어있을 리가 없었다. 



마음을 비우고 터미널 근처 부대찌개 전문점에 들러 저녁을 챙겨 먹었다. 날이 선선해져 있었는데 낮과 밤, 서쪽과 동쪽의 기온차를 심하게 느꼈다. 낮에 이 정도였으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도착했을 것인데... 이상하게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벌써 이틀째 대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나오는 것도 없었다. 인풋 아웃풋이 불공평한 거다. 꾸역꾸역 물어 퍼부어도 하염없이 들어만 갔다. 몸 안의 수분은 모조리 증발하고 없었나 보다.



집에 와서 보니 길바닥에서 주워온 아미노바이탈이 주머니에 그대로 있었다. 하긴 태기산 밑에서 아미노바이탈을 무려 세 개나 때려 먹었으니...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그런 보조제 같은 걸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젠 필수품으로 챙겨 다니기로 했다. 이젠 체력이 아닌 약빨로 라이딩을 해야 하나보다 싶었다.


아침에 체중을 재보니 91.8이었다. 사진을 찍으려 스마트폰을 드니 바로 92.15다.

어차피 밥 챙겨 먹고 그러다 보면 다시 94~95가 되겠지만 어쨌든 이번 라이딩은 다이어트 성 라이딩으로 조금은 줄어들었지 싶다. 이 육중한 비만 체구로도 강릉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다. 살쪘다고, 힘없다는 변명으로 피하지 말고 다들 도전해 보시길...


참! 속초 갔을 때도 껌은 안 사고 그냥 왔는데, 강릉에서도 껌을 안 샀다. 다시 다녀오지 뭐!



다른 친구들 획고는 2,700대 나오던데 내 스트라바에는 왜 이렇게 나오는 걸까?






참 재밌는 게, 강릉에 가자고 한 것도 나란 놈이고 강릉 라이딩에 제일 퍼진 것도 나란 놈이고 여길 왜 가자고 했냐며 투덜거린 놈도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 하나 없이 함께 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진심으로...

난 벌써 다음 주 라이딩은 어디로 가나 고민하고 있다. 자전거는 참 매력적이다. 힘들 땐 힘들지만 견디고 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고 뿌듯하니 말이다. 산쟁이였던 내가 자전거로 느끼는 매력은 조금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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