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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17. 2021

30년 맛집, 37탄-목동에서 31년 목동돈까스

직접 끓은 소스가 돋보이는옛날돈까스

목동에 볼 일이 있어 갔었다. 목동 하곤 딱히 인연이 없어 갈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같은 서울인데도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원래 이 곳은 전혀 인연이 없던 곳인데, 30년 시리즈를 쓰려고 작정하고 살다 보니 타 지역에 가면 의례히 30년 이상 된 맛집만 찾아가는 집요함이 생겨버렸다. 물론 30년 넘었다고 해서 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30년이란 세월을 버틸 수 있다는 건 한 지역에서 맛과 친절 등으로 검증받은 곳이라고 해도 반언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물론 맛이란 지극히 상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대중적인 게 가장 좋지 않나 싶다.

여긴 순수하게 인터넷을 뒤져 후기 등 평가를 몇 개 읽은 후에 방문하기로 맘먹은 곳이다. 돈가스라는 음식을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곳들 중 대략 열댓 군데는 다녀본 바, 소문나고 오래된 집은 뭐라도 한 가지는 다른 개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여긴 대체 어떤 부분이 특별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 여길 찾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목동 상업지 스포츠조선 사옥 지하 1층에 있는 목동돈가스. 사옥 지하로 들어서니 죽 늘어선 오래된 상업시설이 나타났고 오래전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1990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직장인들의 맛집으로 유명해진 것인지 역시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무란다. 가격은 착한 편인 것 같다. 밥시간을 피해 왔더니 조금은 한적해 보였는데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외국인들도 있었다. 잘 보니 캐리어를 끌고 온 것 보면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 같진 않았다. 돈가스가 일본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원은 유럽의 커틀릿이라고 하니 이것 역시 서양인들 입맛엔 잘 맞으리라. 재미난 것이 하나 보였다. 예전엔 애스크라는 상호를 썼던 듯한데, 호프를 겸한 식당인 것이다. 마침 호프 한 잔이 당기던 참이었는데 점심시간을 것 넘긴 시간에 돈가스를 안주로 호프를 들이켤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여긴 <옛날돈까스>라는 단어를 타이틀로 쓴 만큼 옛 추억을 당겨올 만한 돈가스일 것인지 궁금해졌다. 상 위에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차려지고 미역국이 올라왔는데 완전 이색적이다. 보통은 크림수프 정도를 기대하게 되는데 이건 대체 뭔 조합인가?



이 세 개의 연장은 30년 전통이라는 말을 밑받침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으면 저리 닳도 닳았을까? 나이프는 날이 살아있기나 할지 모르겠다.



호프를 마실 순 없으니 콜라로 대체해 주문했다. 왠지 모르게 돈가스엔 콜라가 제법 어울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콜라는 역시 오리지널 코카콜라인 것 같다. 이것 역시 대체될 수 없는 원조만이 가진 맛 아닌가 싶다.



콜라를 컵에 따라 몇 모금 홀짝이고 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목동돈가스의 치즈돈가스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비주얼이야 돈가스다 다 비슷한 것이니 딱히 꼬집어낼 만한 특징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잘 보니 이 집 소스가 좀 독특하다. 대개 좀 시커먼 갈색 계통의 돈가스 소스를 쓰는데 이 집 소스는 강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돈가스 소스를 직접 만들어 쓴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니 돈가스 전문점이라면 의례히 소스를 만들어 쓰는 게 정상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또 내가 다녔던 유명한 돈가스 맛집들 중 시중에 파는 소스를 쓰는 집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 거다. 당연한 데 당연한 걸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인 것 같다. 아무튼 목동돈가스의 소스는 돈가스 본연의 맛을 누르지 않았다.



드디어 시작이다. 돈가스에 칼을 밀어 넣으니 치즈가 쭈욱 밀려 나온다. 칼질이 불편할 정도의 양이다. 처음엔 양으로 승부를 거는 왕돈가스가 살짝 당기긴 했으나 칼집이 난 돈가스 사이로 밀로 나오는 치즈 때문에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가고 말았다. 치즈돈가스가 전문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보는 게 당연한 일. 나는 사진을 찍는 것도 지쳐서 한 조각을 들어 입에 넣었다. 고소한 치즈가 수제 소스가 입 안에 느껴지고... 아 정말 잘 모르겠다. 순식간에 다 먹어치운 것 같다.



결과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까. 딱히 배가 고프거나 한 것도 아닌데 김치를 세 번이나 추가로 주문하고 거의 흡입 수준으로 먹고 말았다. 갑자기 어릴 적 혓바닥으로 소스를 핥아먹던 기억이 났다. 옛날엔 참 귀한 음식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 세대에서 피땀 흘려 이룩한 이 나라의 생활수준이 이렇게 대단해진 거다.



인테리어를 보면 30년을 묵은 아이템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스포츠조선 사옥 지하에 30년이란 세월을 꽁꽁 가둬버린 듯한 이 곳에서 30년 전의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긴 돈가스 종류가 의외로 많다. 가격은 착하다. 요즘 이런 가격으로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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