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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10. 2021

30년 맛집, 36탄-장어만 34년 장어만구이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식당

난 25년 넘게 강화도 일미산장으로 장어를 먹으러 다녔다. 물론 일미산장은 30년이 훌쩍 넘은 맛집이다. 아직 소개하지 못한 건 요즘은 도통 강화도에 갈 일이 없어서다. 오래전 SLR로 촬영해둔 사진들이 어딘가 처박혀있긴 하겠지만 그걸 찾아볼 부지런함이 내겐 없다. 아무튼 한정식집 수준으로 상이 차려지는 강화도 일미산장과는 완전히 다른 컬러의 장어구이 맛집을 멀지도 않은 서초동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촬영할 생각으로 방문한 거라 사진을 줄기차게도 찍어댔다. 오죽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댔으면 장어를 구워주던 사장님이 그렇게 찍어서 뭐에 쓸 거냐고 물었고, 이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해주더라는...

지금까지 맛집 관련 글들을 쓰면서 내가 사진을 촬영하는 비밀을 먼저 실토하긴 처음이었는데 이것 참 기분이 묘했다. 여태 모든 식당 사진들이 내돈내산이었거나 동행자가 계산하는 경우였다. 사장님이 복분자술 한 병을 서비스라며 주셨는데 이거 참... 난감해서~ 어쨌든 처음으로 식당에서 돈 안 내고 먹어보는 일이 다 생겼다.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는 탓에 알리게 됐지만 어쨌든 복분자술 잘 마셨고 그 덕에 소주, 맥주에 복분자술까지 섞어 마시게 됐다는...


내가 일미산장 단골이라 하니, 그 집을 아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더라. 하긴 내가 어지간히 싸돌아 다녔어야지. 매년 봄이 되면 고창의 단골 풍천장어집에서 1박 2일을 놀다 오곤 했었으니 말이다. 재작년엔 군산까지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자전거를 타고 새만금을 건너 고창까지 라이딩하고 그 집엘 갔었더랬는데...


이 식당의 이름은 장어만구이다. ㅎㅎ

'무슨 상호가 이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장어만 굽는다. 게다가 입구에 자랑스럽게 써둔 것처럼 강화에서 선친 때부터 시작한 장어구이를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작했냐고 물어보니 고2 때부터 선친을 도와 장어를 해체하고 굽는 일을 했단다. 연식을 물어보니 1970년생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찌 이마에 주름도 없는데 52세라고 볼 수가 있나? 눈치를 보니 그 비밀은 몇십 년간 장어를 먹어서 그런 걸로 보였다. 게다가 대학생인 아들까지 아르바이트로 아버지 일을 돕고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장어를 좀 더 열심히 먹을 것을 그랬다. 주방에 있는 분도 알고 보니 훨씬 젊어 보이는 여자분은 아내라고 하시더라는. 완전 장어빨이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장어뼈튀김이 여느 장어집보다 훨씬 맛있다. 보통 장어구이 식당에서 내어주는 뼈튀김은 기름이 많은데 여긴 기름기 없이 바삭하고 고소하다. 기름진 느낌이 없어 식감도 좋고 가장 중요한 건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한참 후에 사장님 설명을 듣고 알았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장어 뼈는 흐르는 물에 며칠을 씻어 내린다고 한다. 그러면 뼈에 남은 장어피와 골수 등이 다 빠져나가 기름기가 없어진다는 거다. 튀김이라는 것 자체가 기름을 쓰는 조리법인데 어쩜 이럴 수가 있나 싶다.



장어엔 역시 생강이다. 몇 가지 없지만 깻잎 장아찌, 무절임, 씻어낸 묵은지가 차려졌고 저민 마늘이 싱싱하다. 간소해 보이지만 정갈함에 정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손님이 많은 건 다 이유가 있음이다.



요건 정말 너무 반가운 마탕 아닌가? 이것도 같이 나오는데 장어가 구워지기 전 뼈튀김과 함께 애피타이저로 괜찮은 것 같다. 일종의 추억놀이?



장어 전용 양념장은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다. 양념장 그 자체로 장어구이에 최적화된 장어만구이의 비기 아닌가 싶다. 대개 장어구이 전문점에 가보면 너무 강한 양념장 때문에 장어 고유의 고소함을 눌러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장어만구이에서는 장어가 원래 이런 맛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겐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인 건 사실이다. 메뉴판을 보니 약간의 인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어만구이에서는 민물장어와 갯벌장어 두 가지만 있다. 일미산장에선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로 구분하고, 자연산이냐 양식이냐가 중요했는데 여긴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우린 이번에도 갯벌장어를 주문했다. 민물장어 3인분이 갯벌장어 2인분과 비슷하다는 말에 나쁜 머리로 암산을 하고 결정한 거다. 갯벌장어가 훨씬 맛있다는 건 이미 지난번에도 느낀 바가 있었으니.



아직 벌건 대낮인 건가? 6시 30분에 들어와서 그랬을까? 왠지 낮술 느낌이 살짝 나기도 하고. 깻잎을 들깨와 버무린 이 메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다. 난 깻잎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참숯이 뻘건 빛을 내며 은은한 열기를 뿜어낸다. 이제 장어만 올라오면 된다.



드디어 장어가 구워지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옆에서 장어를 굽는다. 손님이 구우면 안 되냐 물어보니, 잘못 구우면 식감을 버린다고 했다. 이유인 즉, 갯벌장어는 살이 단단해 식감이 좋은데 너무 구우면 오히려 살이 뻣뻣해져 갯벌장어 고유의 맛을 해친다는 것이다. 나는 군말 않고 사장님 손놀림만 구경했다. 앞뒤로 뒤집고 옆으로 세우면 노랗게 익어가는 장어 살집을 감상했다. 그 사이 우리는 소주를 한 병이나 비우고 있었다. 빈속에 자린고비 마냥 장어 굽는 냄새에 알코올을 들이켜고 있었으니...



그동안 구경하느라 고생했어... 이런 느낌일까? 제일 먼저 구워진 장어를 한 토막씩 소스에 올려 준다. 이거 뭐 침부터 꿀꺽 넘어가니 목이 다 메이는 듯했다. 이걸 대체 글로 어떻게 설명을 하란 말인가? 어제저녁 있었던 일인데 아침부터 이 글을 쓰며 또 침이 고이는 건 뭔지... 그것도 화장실에서... (대체로 화장실에서 대사를 치르며 글을 쓰는 편이라)



설명해 주기 전엔 몰랐지만 장어는 부위별로 맛이 다 틀리다 했다. 그랬던가? 보통 장어를 먹을 땐 꼬리 부분만 좀 다르다 생각했지 장어가 부위별 맛이 틀리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장님은 장어를 헝클어 놔도 다시 원 상태로 맞출 수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았다. 그 양반 손에 해체된 장어가 대체 몇 마리나 될까? 34년 동안 하루 100마리 정도 해체했다 치면 34년 X 약 300일 잡고 X 100마리 = 1,020,000마리다. 숫자로 보니 말 그대로 후덜덜하다.



꼬리는 뭐 뻔한 거니까 안 찍었는데 이게 부위별로 다른 녀석들이다. 오른쪽 끝에 건 여기 말곤 어디서도 먹어본 적이 없는 부위다. 바로 장어 심장이란다. 정말 색다른 식감에다 장어살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다른 고소함이 여기에 있다. 심장을 염통이라 하니, 장어 염통을 맛본 거다.



이건 장어탕인데 전혀 비리지 않다. 이건 장어비린내 때문에 어지간한 내공 아니면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장어만구이에선 다르다. 정말 다르다. 이거 뭐 말로 설명이 안 되니 패스!



결국 민물장어 한 마리를 더 주문하고 말았다. ㅋㅋ 복분자도 한 병 더 추가했고, 장어탕도 미친 듯이 흡입했다. 또 장어로 배를 채우는 불상사를 만났으니... 길고도 외로운 밤을 보내야 하겠고...



몇 개 남지 않은 장어 조각들 중 장어 심장 하나를 결국 내가 먹을 수 있었다. 이거 정말 명물인 것 같다. 보기엔 흉측해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장어죽. 우린 일찍 와서 웃고 떠들고 사진 촬영하고 이리저리 바빴는데 그새 자리는 꽉 차고 사장님은 다른 테이블에서 분주하게 장어를 굽고 있더라는... 다음에도 가급적 일찍 가야겠다는 생각이.

그나저나 장어만구이도 기가 막히지만, 나의 올 봄나들이 고창 여행은 바쁜 일과 때문에 건너뛰고 말았다는 게 아쉬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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