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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n 29. 2021

33.잠실 새마을시장에 인심 좋은 순댓국집이 있더라

재래시장이 변하고 있다

이 나이 먹도록 잠실에 있는 새마을시장에 가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방문한 새내순대국&뼈해장국은 잠실에 사는 친구 녀석과 간만의 조우로... 낮술이 시작된 곳이다. 하루에 연거푸 맛집 두 곳을 순례하고도 8시가 안 되었던 걸 보면 어지간히 일찍 시작한 것 같긴 하다. 3주 전 강릉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더위를 먹은 충격으로 한낮의 라이딩을 피하겠노라며 새벽 4시에 일어나 샤워까지 하고 차에 자전거를 싣고 분원리까지 가서 분원리 3회전을 하고 돌아왔다. 친구들과 이른 아점을 먹고 돌아왔지만 기껏 12시밖에 안 된 시간이었고 오늘이야말로 한동안 끊었던 낮술을 즐길 수 있는 적기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오후 4시에 친구와 술 약속을 잡았고 너네 동네냐 우리 동네냐를 두고 실랑이를 하다 잠실새내로 결정을 봤다. 이젠 신천이었던 이름이 잠실새내로 바뀐 걸 모르는 서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신촌역에서 약속을 잡고 신천역에 가있었다는 웃지 못할 일이 의외로 많아서 그랬을까? 예전의 신천, 잠실새내엔 먹자골목이 번성한 곳인데 사실은 그보다 잠실종합경기장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무튼 잠실의 그 복잡한 골목상권 속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맛집들을 다 제쳐 두고 친구는 나를 새마을시장 안쪽으로 끌어냈다.



재래시장은 변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있던 오래전 케케묵은 그림들은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남성시장과 영동시장에 오랜 단골집들이 있어서 가끔 방문하는 편인데 새마을시장은 그곳들보다 좀 더 세련미가 있었다. 재래식과 현대식이 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느낌이라 할까?

시장 안에 펼쳐진 야채들의 가격을 보니 반포 뉴코아를 단골로 다니던 나의 마음을 이쪽으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술자리만 아니라면 청양고추며 갖은 야채, 버섯류 등을 쓸어 담았을 것 같다. 아무튼 다음엔 뉴코아 대신 새마을시장에서 장을 보기로 작정하며 시장 골목의 정취를 실컷 누렸다. 입구를 들어서 이백여 미터 정도 걸었을까? 친구 녀석은 꽤 깨끗해 보이는 인테리어의 순댓국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봐도 오래된 식당 같지는 않았다. 나름 나만큼이나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녀석이라 의심할 게 없었지만 내심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다 말고 도로 돌아 나와 외관 사진을 하나 남겼다. 왠지 느낌이 좋았던 건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일요일인 데다 식사시간도 아니라 그랬을까? 10개 정도 되는 테이블 중 우리를 포함해 네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 실내 인테리어는 거의 새거나 마찬가지였다. 리모델링을 한 걸까?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곳이라 한다. 그런데 대체 나를 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일까 싶었고, 일단은 메뉴판을 살폈다. 강남 물가에 길들여진 탓일까? 왜 이렇게 저렴한 걸까? 역시 재래시장 안에 있는 식당이라 뭐가 좀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엄청난 호기심이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재래시장 안에 있다 하여도 여기도 강남 3구 송파 잠실이란 말이다.



순댓국집에서 나는 특유의 돼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새로 인테리어를 한 식당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잘 살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직원은 없이 부부인 듯한 장년의 부부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처럼 확신이 필요할 것 같았으면 물어나 볼 것을 그랬다. 친구와 나는 순댓국 한 그릇과 수육을 주문했는데 남자 사장님은 오히려 수육과 오소리감투를 섞어서 내어 주시겠다는 호의를... 이 친구가 단골이어서 그랬을까 싶었지만 그건 아닌 걸로 밝혀졌다. 누구에게나 그런 친절을 베푸시는 듯했고 사실은 그보다 우리는 어딜 봐도 술꾼으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상이 차려지기도 전에 소맥 몇 잠을 부어댔는지, 그 모습을 봤다면 객단가 높은 놈들일 거라는 예측이 가능할 거니까.



기본상이다. 순댓국이야 이 정도면 끝장 아닌까?



요건 정말이지. 누구나 애정하는 메뉴 아니던가? 사실 순댓국 한 그릇만 있어도 소주 세 병은 뚝딱 해치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순댓국 컬러가 왠지 예쁘다. 이상하다 싶어 자꾸 사진을 찍어 보는데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이 나온다. 맛도 그러할진대, 누구나 알다시피 순댓국의 특장점 중 하나는 내 입맛대로 간을 볼 수 있다는 최고의 매력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까? 난 개인적으로 청양고추와 매운 다진 양념을 왕창 말아 얼큰하고 매콤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



마침 내 눈앞에 머릿고기수육 사진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작가 사진이 분명한데 너무도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물론 이미지 판매점에서 파는 사진이겠지만 제발, 부디 비슷하게 차려지기만을 기대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촬영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경험상 스튜디오 사진이 아닌 이상 어렵고, 보정도 필요한 것이니까.



술안주 다운 술안주가 드디어 차려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돼지 비린내를 맡으려 코를 들이밀었다. 오호~ 이거 맘에 쏙 드는데? 특수부위 초보자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내가 애정하는 순댓국집이 한 곳 더 있는데 거긴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그 집은 또 그 집의 강렬한 매력이 있음으로...

아무튼 고터 안의 그 집은 순댓국 못 먹는다는 사람도 잘만 먹게 만드는 곳이다.



역시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내 수준엔 이게 최선이다. 이 정도면 됐지 뭐~ 내가 사진을 찍는다며 손도 못 대게 하는 걸 어처구니없어하는 친구. 인스타질부터 시작된 이 맛집 촬영이 내 브런치에까지 번져 이 짓거리를 하게 될 줄 난들 알았겠나? 그런데 웃긴 게 이렇게 쓴 글들이 내게는 나중을 위한 나의 정보가 되고 있더라는.



돼지수육과 오소리감투 사진이다. 참고로 오소리감투는 돼지의 위다. 오소리감투의 식감은 안 먹어본 사람은 알 수 없는 오독거림과 쫀득함이 교차하는 미식가들의 부위다.



한동안 잊고 살았다. 분식집에나 먹곤 했던 돼지 간과 염통을 서비스로 주시더라는. 절대 단골의 힘이 아니었다. 애주가의 힘이었다. 둘이서 무려 맥주 1병, 소주 7병을 마셨으니 이 정도면 어지간한 술꾼들 저리 가라 할 정도 아닌가.

아무튼 푸짐해서 너무 좋았고 서비스 덕에 소주 2병은 더 마신 것 같다.






우린 2차로 또 멋진 곳엘 갔다. 거기서도 각 2병씩은 더 마셨다.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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