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뒷골목에 은근히 유명한 맛집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알지만 외지 사람들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곳, 개성편수다. 편수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편수는 개성 음식으로 여름에 먹는 만두이다. 야채 위주로 소를 만들어 깔끔한 맛이 장점인데 그러고 보니 이북 음식들은 대체로 간결하고 깔끔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성편수라는 간판에도 불구하고 개성의 편수를 만날 수 없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메뉴를 변경한 걸까? 홍대의 곱창전골이라는 간판을 쓰는 디스크 음악다방 비슷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걸까?
어쨌든 간판이 개성편수임에도 불구하고 개성의 편수를 팔지 않는 이 식당에서 의외의 만족을 얻었다. 황당하게도 칼국수와 만두를 주력하는 식당인데 제육덮밥에 더 매료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개포동의 한적한 이면도로 안에 개성편수라는 간판을 걸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주인 내외가 직접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고, 서빙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는 것 같았다.
입구에는 이렇게 이 식당의 음식에 대해 적나라하리만큼 자랑스러운 설명이 되어 있다. 모든 것이 직접 만들었다는 게 사실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개 식당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절차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 아쉽다. 정말 맛난 음식점은 김치만 먹어보면 대충 각 나오는데...
국내산 소고기, 국내산 생닭, 국내산 돈육.
어쨌든 이런 거 맘에 든다.
게다가 만두피, 칼국수 면발의 반죽도 직접 한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비록 개포동이 강남권에서는 외곽이라 하지만 그래도 강남인데 가격은 꽤 착한 편에 속한다.
커다란 전골냄비에 가득 담긴 만두전골이다. 다른 곳에선 칼만두국 정도의 이름으로 팔리지 않던가? 아무튼 만두전골 안에는 각종 야채와 버섯이 푸짐하다. 이게 몇 인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네 명이 갔었는데 이것 말고도 아래 보이는 찐만두도 주문하고 1인당 제육덮밥 한 그릇씩 주문했으니 먹고 죽자는 의미나 마찬가지 아니었나 싶다. 찐만두와 만두전골의 만두는 김치만두와 고기만두 두 가지다. 진한 육수가 베이스가 된 만두전골은 고소하고 구수하다.
만두전골에다 찐만두까지 주문한 건 사실 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이걸 다 먹어갈 때쯤 되어서야 제육덮밥이 차려졌는데 무리하게 다 먹어버린 건 실수였던 것 같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집에 가서 한숨 푹푹 쉬어야만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만약 이 제육덮밥이 맛이 없었다면 그렇게 배가 부른 상태에서 이걸 다 먹어치우는 불상사는 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 만두와 만두전골이 간이 약했기 때문에 좀 더 강렬한 맛의 제육덮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식당 안에 높게 쌓아둔 쌀가마니를 본 기억이 나는데 괜찮은 쌀을 쓰는 것 같긴 했다. 요즘이야 여주에서 귀한 현미쌀을 수배해서 먹는 편이라 백미 쌀을 사진 않는 때문에 흰쌀밥을 먹으려면 식당에나 가야 맛을 보게 된다. 어떤 식당의 찰지게 지은 쌀밥은 밥맛 자체로 끝장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은 좀 아쉬웠던 것 같다.
개성편수의 안타까운 점은 개성의 편수를 맛볼 수 없었다는 것이지만 착한 재료에 착한 조리법으로 착한 마음을 담아 손님에게 내어주는 게 너무 괜찮았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아 강한 조미로 원래의 맛을 눌러버리거나 하는 게 없어서 좋은 식당이다. 만두전골의 육수 정도면 어떤 걸 넣고 끓여도 경이로운 맛을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긴 했었다. 동선이 맞지 않아 아주 자주 가지는 못한 곳이지만 개성편수의 만두전골은 수준급 이상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난 왜 자꾸 제육덮밥이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