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광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광주시내 현대백화점 뒤쪽에 광주 특유의 오리탕 골목이 있다. 광주식 오리탕은 광주 외엔 어떤 지역에서도 구경한 적이 없다. 나를 식도락의 길 위에 얹어 놓은 계기도 사실 따지고 보면 98년 IMF 직후 시점이었던 것 같다. 전남대 다니는 선배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가 오리탕 골목을 찾았고, 영미 오리탕을 방문했고, 펄펄 끓는 뚝배기 속의 오리탕에 육수를 추가하며 미나리를 먹는 독특한 요리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또 다음날 광주 토박이인 선배를 따라 광주 시내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 맛본 음식들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그날 후로 나는 식도락의 재미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특히 영미 오리탕을 방문한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또또 그다음 주에도 주말이면 광주로 직행했다. 차를 몰고 광주로 향하는 길이 멀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건 오리탕의 오묘한 맛이 나를 당기는 힘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일 거다.
그 광주의 선배는 약 십 년 전 서울 시민이 됐고, 이젠 경기도민이 됐다. 어머니도 경기도로 이주해 오셔서 선후배 모임이 아니면 딱히 광주로 내려갈 일도 없어졌다. 그 때문에 서울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문제는 광주의 입맛에 길들여진 탓에 어지간한 맛집은 그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는 아주 포기하고 사는 선배에게 내가 신박한 제안을 하게 되었다. 바로 서울에도 영미오리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소식을 전한 것이다. 선배는 당장이라도 나를 붙들고 영미오리탕엘 찾아가려고 했지만 나는 최근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어서 딱히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10시까지밖에 영업을 하지 않으니 늦게 퇴근하는 요즘 식당에서 한잔 걸치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드디어 서로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된 날 우린 당장 영미오리탕을 찾아갔다. 강남에서 30분 이상 걸리는 군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내가 있는 곳과는 교통편이 애매하기도 했지만 영미오리탕을 서울에서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 것 같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굽이굽이 골목을 찾아 나오며 영미오리탕 간판을 보는 순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고 선배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마터면 줄을 설 뻔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모르긴 해도 나보다 선배가 영미오리탕을 더욱 기다려왔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미나리. 이게 바로 광주식 오리탕의 핵심이다. 싱싱한 미나리를 오리탕 국물에 데쳐서 먹는 건데 이 맛은 죽었다 깨어나도 먹어보기 전엔 알 수 없다. 그리고 영미오리탕의 특제 소스는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업을 거다. 미나리와 어찌나 궁합이 잘 맞는지 말이다. 미나리가 상 위에 올려지자 이미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침이 고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동물적인 감각이 나를 움직이고 있으니까.
십 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영미집과 영일집 두 집은 무한 리필하던 미나리를 추가로 주문하면 돈을 받기 시작했다. 그까짓 미나리 가격이 얼마나 한다고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죽하면 돈을 다 받나 싶은 생각도 했다. 어쨌든 겨우 몇천 원 때문에 마음 상할 일은 없다. 그 이상의 만족이 있으니까 말이다.
기본상엔 별 거 없다. 사실 손을 댈 일도 없다. 중요한 건 소스다.
부글부글부글. 오리탕이 부글부글 끓는다. 미나리를 국물 안에 푹 쑤셔 박아두고 기다리는 마음도 부글부글. 길지도 않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오리탕 안에 들어있던 오리고기를 모두 건져냈다. 이걸 먹는다고? 설마~ 우리는 오리탕 안에 들어있는 오리엔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 오로지 육수를 리필하고 미나리를 리필해서 먹는 거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젠 육수 리필도 추가금을 받는다. 기분이 좀 상했지만 어쩌겠는가? 감자탕집에서 뼈 추가하는데 공짜로 달라는 주문을 하진 않으니. 세상이 각박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거다. 이게 뭐 대단한 맛이 있겠냐 싶겠지만 먹어보면 안다. 그냥 소주를 부르는 이 녀석의 참맛을 먹어보지 않은 누가 알까?
미나리를 담뿍 넣는다. 먹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단 둘이 마시는데 말이다. 미나리는 계속 추가된다.
육수도 추가된다. 추억 속에 잠겨 옛이야기도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선배와 광주 오리탕 골목을 휘젓고 다니던 기억을 긁어내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너무 많이 대치면 식감이 떨어진다. 이 자체가 요리이기 때문에 적당히 데친 상태에서 맛을 보는 게 핵심이다. 눈이 날카롭고 손이 빨라야만 한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다 종목을 산삼으로 바꿨다. 그 후론 쭉 산삼주로 이어졌다.
이날 미나리만 네 번은 추가한 것 같다. 육수도 두 번 추가했다. 한 번은 무료 제공, 한 번은 추가 요금을 받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마셨는지 아마 둘이서 마신 술만 7병은 족히 넘었던 기억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옆집에 가서 10시 땡 소리 날 때까지 세 병을 더 마시고 귀가했으니 그날은 아마 술을 마셨다기보다는 추억을 마신 게 분명하다. 예전엔 둘이서 소주 열댓 병을 마셔도 끄떡없었는데 이젠 체력이 예전만 같진 못하니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