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구 잘 알아!
과연 그럴까? '잘'이란 단어를 빼면 맞을 수도 있다. 만약 서로를 안다는 표현을 한 거라면 상대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나, 누구 알아'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유명인을 알면 으쓱한 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특히 애정을 갖고 존경하던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어떻게든 인연이 닿아 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가 나를 기억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다행히 난 유명인도 아니고 누구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위인이 못 되기 때문에 그럴 고민을 할 입장이 아닌데, 문제는 대인 기억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산다. 만약 내가 영업 관련한 일을 했다면 완벽한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을 거라는 걸 나 자신은 잘 알고 있다.
아는 것과 아는 척하는 건 엄연히 다른 거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 했는데 이런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을까? 실제 A가 B에게 X를 잘 안다고 말했을 때, 사실 B가 X와 너무나도 각별한 사이라는 걸 A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B는 X에게 A를 잘 아느냐 물었고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X의 기억 속엔 A란 존재조차 없었다. 비즈니스에서 만난 A와 B, 과연 그들의 신뢰는 어떤 관계로 유지될 것인가? 보나 마나 한 결과다.
거꾸로 이런 경우가 있었다. G는 K에게 L의 명함을 전달받아 스마트폰에 저장하려는데 이미 등록된 번호였다. 하지만 G는 L을 기억하지 못했고 그저 K에게 L의 전화번호를 이미 갖고 있었음을 알렸다. K 역시 황당하여 L에게 전화를 걸어 G를 아느냐고 물었는데 G와는 달리 L은 G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L에게 G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혹 A 같은 사람으로 남아있진 않았을까?
우린 평소에 자잘한 실수를 하며 산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걸 빼먹고 산다. 실수를 인정하여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불편한 진실, 불편한 관계를 만들 일이 없을 거다. '사과'는 용서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상대에게 얼마나 진실하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