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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Oct 12. 2021

24. 춘천-화천-평화의댐-양구선착장-춘천 라이딩

혼자 달리는 맛

이 코스는 이미 일 년 전부터 예정에 있었다. 실천에 옮기지 못했을 뿐, 내 머릿속엔 언젠간 꼭 다녀오겠다는 집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춘천 코스는 지겹게 다녀서 이제 좀 멀더라도 새로운 코스로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갑자기 다녀오게 됐는데 기대 이상 멋진 코스였지만 일기예보 이상으로 많은 비가 내렸고 코스 이탈로 인해 시간과 체력을 많이 소진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 라이딩이 됐다. 더군다나 이번 코스는 내가 군생활을 했던 화천의 민통선(민간인통제선) 안쪽으로 공개된 길을 따라 평화의 댐까지 올라가는 추억놀이가 될 것이기도 했다.




정작 전날 밤 무작정 결정한 거라 함께 라이딩을 갈 사람도 없었고 딱히 기대를 한 것도 아닌데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이 깨고 말았다. 카카오 자전거 내비에서 보면 기껏 183km에 불과하지만 4100여 미터에 달하는 막강 업힐이 예고된 힘든 여정이 예고되어 있어서였을까? 난 잘 먹지도 않는 라면을, 그것도 거의 안 먹는 아침밥으로 한 봉지 끓여 먹고 라이딩 복장을 갖춰 입었다.

그런데 평소 어지간하면 달고 다니는 전조등이 눈에 박혔다. 이걸 달고 가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어지간한 업힐 같으면 무게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달고 다닐 텐데 꽤 무거운 전조등까지 달고 가는 게 부담스러웠던 거다. 게다가 전날 미리 챙겨 두었던 고용량 보조배터리도 전조등과 함께 슬쩍 치워 버렸다. 대신 최근 맛 들인 내 몸의 부스터 역할을 하는 에너지 겔 세 개를 챙겨 넣었다. 아르기닌 용액을 물에 희석해 넣고 여분으로 두 개 더 챙겨 넣었다. 연장통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연장통 안에는 유사시에 사용할 튜브 등 용품과 다양한 용품들이 이미 가득했다. 게다가 항상 펌프까지 달고 다니는 탓에 자전거 무게는 줄지 않는다. 기함급 자전거가 내게는 사실 어울리지도 않는다. 살을 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거나 92~93kg에서 더는 내려갈 생각을 안 한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춘천을 향해 달렸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오는 듯했다. 이게 잘하는 짓인가 싶었을 정도로 말이다. 아직 추운 날씨는 아니니 비 맞으며 라이딩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저체온증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바람막이 조차 챙기지 않았으니까.



춘천에 도착해 자전거를 꺼내고 출발 준비를 마치니 7시 30분 정도. 난 출발지 근처에서 의미 없는 사진을 한두 장 촬영한 후 슬슬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멀리 구름 위에 보이는 산봉우리를 보니 오늘 업힐이 만만할 것 같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부슬비를 맞으며 1~3% 정도 되는 약한 업힐을 올랐다. 카카오에서 만든 자전거 내비 덕분에 요즘 초행길도 부담이 없다. 다만 너무 늦게 안내를 하는 바람에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그런 자잘한 것도 조만간 개선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이런 로터리라도 만나게 되면 카카오 내비는 완전 바보가 된다. 차라리 안내를 안 하는 게 낫다. 일반 내비처럼 몇 시 방향 진출구로 나가라고 안내하면 편할 텐데... 아무튼 여기서 멈춰 지도를 확인하고 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가 바로 지옥문이라는 걸 곧 알게 됐다.



꺄아~ 시작부터 꽤 길고 경사가 센 구간이 나타났다. 가민은 11~13%의 경사를 오르내렸다. 아주 가끔 7% 정도 경사가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9~11%의 연속이다. 정말 길다. 그래도 라이딩 초반이라 체력이 쌩쌩하니까 이 정도는... 하지만 껌은 아니었다.



세미고개 정상이 보인다. 강원도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차폐물이다. 전쟁이 나면 아군이 철수하고 저걸 폭파해 길을 막는다. 하지만 기껏 시간을 조금 벌기 위함이지 별 의미는 없다. 요즘 같은 첨단 전투 시스템에 있어서는 더없이 의미가 없다.

보통은 정상이 보이면 경사가 확 줄어드는 편인데 여긴 용서가 없다. 덴장!



아무튼 여기까지 2km 거리다. 경사는 남산이나 북악 이상이니 절대 쉬운 코스는 아니다.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경사가 쭉 이어지기 때문에 북악은 게임도 안 된다. 여기 올라오면서 역시 강원도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 지경이면 나중은 볼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이 코스를 내가 스스로 짰다는 거다. 탓할 누가 없다.



세미고개 다운힐이 끝나고 고성2리 마을회관을 지나 407번 국도를 타고 지루한 업힐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랬을까, 차량 소통이 많지는 않았지만 좁은 국도를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가 만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비게이션은 자꾸 위치 이탈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난 페달질을 멈추고 문제를 파악했다. 407번 국도가 새로 닦이기 전에 구불구불 고개를 넘어가는 옛길이 존재했다. 게다가 이 국도는 터널을 통과해야 해서 위험하기도 했다. 난 횡단보도가 없는 국도(아무 데도 없었음)를 무단횡단으로 건너 옛길로 접어들었다.



여기도 7~13%인데 거의 9~11%이다. 뭐 급한 맘 안 먹고 꾸준히 페달질 하면 언젠간 올라갈 거다. 문제는 아무리 굽이져도 끝이 안 보인다는 거. ㅎㅎ



고탄고개 정상이란다.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황량하기 그지없다. 밤에 혼자 왔다면 살짝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방금 지도를 찾아보니 아래로 난 부다리터널 위로 난 이 코스가 고탄고개라고 한다. 스트라바에는 2KM로 나오는데 카카오내비로 대충 보니 2.3KM 정도 한다. 그게 그거지만.

그런데 황당한 게 기껏 15.6KM 달려왔는데 획고는 581M.

만만한 코스가 아니라는 걸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나타날 코스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고개를 내려오니 이렇게 통제되어 있다. 난 중간에 끼어 들어와서 그랬을까? 진입에선 본 적 없는 거다.



거례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이런 갈림길이 나온다. 만약 내비 없이 왔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다. 물론 나 역시 너무 늦게 알려주는 카카오 내비 덕분에 한참을 달려가다 코스 이탈 메시지를 듣고 돌아왔다. 너무 생뚱맞게 튀어나온 코스라 어쩔 수 없을 거다.



오늘 보니 이 가교를 칠석교라 한다. 다리를 건너는데 왠지 모를 부실함 같은 게 느껴졌는데 말 그대로 가설 교각이니 이해해야지. 아무튼 완성도 떨어지는 이 다리를 건너가는데 북한강의 정취를 살포니 느껴보는 시간이 되어주긴 했다. 일정만 여유로웠다면 십여 분이라도 시간은 내어 사색의 시간이라도 가져봤을 것을...



다리를 건너와서 한 컷 남기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초행길이라 앞으로 갈 길에 어떤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같은 북한강인데 좀 더 상류지역인 화천까지 와서 보니 새로운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자주 보던 풍경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여길 지나가면서 도저히 멈추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여긴 그 유명한 붕어섬 아니던가? 화천에서 춘천 넘어오는 국도를 지나다니면서 수도 없이 봤던 풍경인데 왜 이렇게 다른 느낌일까? 역시 자전거를 타고 보면 차로 다닐 때 볼 수 없는 풍경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수면과 가까이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게 꾸지뽕인 줄 알고 엄청 놀랐다. 몇 백 미터를 두고 가로수처럼 펼쳐져 있는 이 열매는 꾸지뽕이 아니고 살딸나무 열매였다. 이것도 약재로 좋다고 하기에 몇 줄 설명을 남겨본다.


한방에서 "신여지", "사조화", "소자축", "야여지(野茹枝))" 등으로 불리는 데 맛은 떫고 성질은 평한 편으로 꽃과 열매를 폐와 호흡기를 이롭게 하고 어혈을 없애주고 식욕을 증진하는 데 사용

나무껍질에 함유된 해열 진통 작용을 하는 키니네(quinine)를 이용해 동물에 물린 상처 치료에 쓰기도 gka

꽃과 열매는 수렴, 지리(止痢, 설사를 멈춤), 속골(續骨)의 효능과 지혈작용이 있어 외상출혈과 골절상, 이질에도 활용되고 맛은 떫다고 기록되어 있음.

면역력 강화, 신진대사 촉진, 피로회복, 자양강장, 신경통, 소화 기능 향상, 이질, 위염 등에 효능



드디어 화천에 도착했다. 지난해 화천시청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왔었다. 게다가 7사단에서 군생활을 했던 내게 화천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그땐 그냥 군인도시나 마찬가지였던 시골 그 이상은 아니었다. 군인 상대로 먹고사는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화천은 산천어축제, 토마토축제 두 건의 대성공에 힘입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수입으로 단단한 행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구간은 '파로호 산소 100리길'이라고 한다. 파로호는 산 건너편에 있는 건데... 군생활할 때 익히 알고 있었던 딴산 아래는 오토캠핑의 성지가 된 듯했다. 인공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걸 보며 장관이라 느끼며 사진을 한 장 남기려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업힐 때문에 포기하고 페달을 밟았다.



말이 필요 없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싶게끔 했던 오솔길이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 같지만 포장된 걸 제외하면 원래 있던 수목들 같다. 아니라면 꽤 오래전 가꿔진 공원이겠다. 나무 사이로 굽이진 길이 너무 예쁘다.



풍산리로 향하는 길이다. 왼쪽 건너엔 7사단 신병훈련소로 이어지는 국도가 있다. 20대 초반, 나의 청춘 26개월이 소진된 지역이다. 그런 곳에 이런 자전거도로가 개설되고 있다는 것만 해도 세월 참~



성동마트. 이곳이 맞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여기가 맞다면 말년 휴가 때 설악산 등산 갔다가 그대로 복귀하는 바람에 등산장비와 사복을 맡겨두었던 곳이다. 전역 후 짐을 찾아 바로 등산복으로 고쳐 입고 다시 설악산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산에 미쳐도 너무 미쳐 있던 시절이었는데 군대마저도 산이 득실득실한 화천 바닥에 떨어졌으니... 그것도 복인가 싶다.

첫 보급지가 됐다. 역시 콜라와 생수 하나로 끝! 너무 안 먹고 달리는 거 아닌가 싶지만 난 원래 안 먹고 달리는 편이다. 오랜 산쟁이 패턴 인지도 모른다. 이놈의 몸은 에너지 비축도 잘하고, 에너지원 불출도 잘한다. 그래서 살이 잘 찌고 잘 빠진다. ㅎㅎ



사진을 찍으면서 이 안내판에 관심을 뒀어야 하는데... 난 여기서 평화의댐으로 향하지 않고 그리웠던? 풍산리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웠다고 하면 몹쓸 소리지만 지나간 청춘만큼은 그립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린 시절,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맑고 맑은 영혼을 가졌던 시기였던 것 같다. 작은 것에 감동하고 슬퍼하고 즐거웠던 시절...



여기가 민통선을 지키는 초소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주 큰 건물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지만 나 땐 없었던 것 같다. 7사단 훈련병 시절엔 막사도 없어서 텐트 생활을 했었으니 말이다. 민통선이었던 부근을 지날 땐 옛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휴가 복귀 때 몸수색을 하던 곳, 복귀 시간을 맞추지 못해 문제를 일으켰던 군인들. 여기서 우리 부대까지는 요즘엔 없는 닷지차라 불리는 고물 트럭을 타고 산을 넘었다. 정말 말 그대로 산이었는데 주말에 누가 면회라도 오면 경사가 높은 비포장 흙길로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한 시간 이상은 걸렸던 것 같다.



바로 여기가 우리 땐 5분 저지선이었던 함묵력이다. 여기까지 구보를 다니고, 여기서 혹한기 훈련도 했다.

풍산리에서 함묵령까지 꾸준한 11% 경사에 15%까지 오르내린다. 끈기를 가지고 올라오면 되는데 한참 쭉 뻗어나간 이 길이 예전엔 흙길이었다는 걸 생각하니 세월 무색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민간인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탈영병 하나가 부대를 빠져나왔다가 이틀 만에 여기서 자수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방송을 틀자 숲 속에서 거지가 되다시피 해서 기어 나온 탈영병. 탈영 후 숲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 복귀할 수도 없었다는 슬픈 사연이...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몸에 열이 나도 비가 금세 식혀주니 말이다.



이제 다운힐이 시작됐다. 하지만 길이 미끄러워 다운힐에 매우 신경 써야 했다. 게다가 벌써부터 뒷브레이크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래서 미리 정비를 했어야 하는데... 앞뒤 브레이크 전부 마모가 심한 상황인데 이런 막강한 산길을 올 줄 알았다면 말이다.



기억도 참. 여기가 당거리였던가? 전방 GOP 근무를 마치고 내려와 여기서 군 생활하다가 전역했었다. 96년 강원도 폭우 땐 연병장 1/3이 떠내려가기고 했고, 아래쪽 계곡은 이십 미터 이상 수심이 올라오기도 했다. 위쪽 정찰대도 피해가 컸다고 들었었다. 폭우 때 전방 철책이 상당 부분 무너져 대대 전원이 복구 작업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대대에는 우리 분대만 남았었다. 덕분에 인근 탄약고란 탄약고는 죄다 돌아다녔던 것 같다. 풀 뽑으러... ㅎㅎ

강릉 잠수항 무장공비 때문에 대대 전원이 다시 전방으로 투입되어 몇 달 동안 텐트 생활을 해야만 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군생활이어서 그랬는지 추억이 많다.


나는 다시 가던 길을 향해 달렸다. 내 기억 속엔 갈림길이 나오면 좌측이 옛 정찰대 막사였고 우측으로 가면 평화의 댐이었다. 군 시절 매복, 수색 활동을 많이 다녔던 곳이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한참을 중얼거렸다.

"나 참~ 허! 나 참~ 이럴 수가 있나..."

다시는 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곳을 민간인이 되어 찾아왔으니 말이다. 감개가 무량했다.



문제의 장소가 나타났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때문에 여기서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넘어오지도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함구령 고개 업힐은 직접 가보지 않았어도 힘든 코스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군인들이 절대 보내줄 수 없다 해서 사진 한 장 부탁하고 여기서 발길을 돌렸다. 다시 돌아가려니 눈앞이 깜깜했다.



기억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던 추모비도 있다.



다시 넘어오는 길은 경사가 1% 정도 더 강했다. 한 번뿐이었지만 16%까지 넘어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상에 올라 보니 혹한기 훈련 때 발을 동동 구르며 밤을 지새우던 기억이 났다. 화천, 참 어지간히 춥기도 했는데...

아듀~ 함구령! 나는 함구령을 뒤로하고 풍산리 방향으로 달렸다. 길게 쭉 지른 내리막길은 다운힐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았지만 노면 상태, 브레이크, 빗방울 등 악조건에 무리를 하고 싶진 않아 그다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달렸다.



올라갈 땐 설마 했던 이곳, 화천 드림 캠핑장. 여긴 원래 <산악전투 프로육성>이라고 쓰인 돌기둥이 있었는데 그 위에 시멘트 작업을 한 듯했다. GOP 올라가기 전에 여기서 몇 개월 살았던 기억이 있다. 이등병 때였는데. ㅎ






풍산리에서 평화의댐까지 올라가는 길은 길고도 길었다. 그 긴 업힐을 한 번 쉬었는데 어떻게 보면 안 쉬고 그냥 가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7~13% 수준의 업힐인데 얼마나 긴지 지금까지 경험해본 업힐 중 최강이었던 것 같다.

올라가는 길에 라이더 세 명을 만났는데 이 코스 달리면서 유일하게 만난 팀이다. 내게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나 역시 초행이란 말에 놀라는 듯했다. 난 그저 내 페이스대로 그들을 제치고 달렸을 뿐이다. 업힐 고수들은 이런 코스도 어렵지 않게 오르겠지만 93kg인 내게는 절대 쉬운 업힐이 아니었다.



정상에 먼저 도착한 나는 습기로 축축한 스마트폰 렌즈를 간신히 닦아내고 사진 몇 장을 촬영했다. 방금 제치고 온 라이더 한 명이 내 사진에 나왔다. 나중에 양구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출발하려는데 그들이 도착했다. 서울-화천-양구-속초 코스로 3일 여정 중이라고 했다. 여럿이 그렇게 달리면 재밌기도 할 텐데... 나도 이런 러닝 메이트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



오늘 지도를 보니 이 구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다. 경사가 좀 세긴 해도 그런대로 달릴 만했는데 이 정도 긴 코스는 이화령 정도가 최장이었는데 그것도 기껏 해야 6km에 그쳤다. 좀 더 강한 곳이었다면 화악산 업힐이었는데 이제 다시 간다면 화악산을 그렇게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 같지는 않다.



해산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긴 다운힐이 시작된다. 이 코스에서 다운힐을 즐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장담한다. 길어도 이렇게 긴 다운힐은 흔치 않다.



평화의댐 광장을 그냥 스쳐 가려다 사진 하나 남기려 멈춰 섰다. 빗방울이 좀 얇아지긴 했지만 렌즈 표면이 젖어 물기를 닦아내기 쉽지 않았다. 공구통에서 미리 챙겨놨던 휴지를 꺼내 렌즈를 얼추 닦아 평화의댐을 촬영했다. 그렇게 못된 짓을 많이 하고도 명이 긴 몹쓸 전두환 시절 지어진 이곳. 국민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간 곳이다. 난 군 시절 평화의댐 안쪽에서 LTV를 타고 강상수색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어딘가 사진이 남아 있으려나... M60 사수였던 난 평화의댐을 배경으로 나름 멋진 자세를 잡는다며 똥폼을 잡고 있었다. 지인 중 한 명은 오래전 스쿠바 다이빙 중 평화의댐 터널 안에서 길을 잃어 사망하기도 했다. 피슁 때문이었다고...


평화의댐에서부터 그리 길지 않은 다운힐을 즐기며 내려와 다시 굽이치는 골짜기를 따라 조성된 도로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깎아지른 업힐이 시작됐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민의 경사도 센서가 문제를 일으키는 게 보였다. 아무리 경사가 세져도 1~2% 정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거다. 기록이 나름 중요한 코스이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역시 이번 업힐을 길고 길었다. 차로는 이 길을 몇 번이나 다녀왔었는데 자전거로 달리니 감회가... 내 옆을 빠르게 스쳐 달려 올라가는 차량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비는 점점 강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과 양구에서 라이딩을 종료하고 춘천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것을 두고 고민하는 거다.

길 옆에 조그만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어쩜 그리 고마웠는지 모른다. 난 그 안으로 피신해 공구통 속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스마트폰을 넣었다. 그런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30% 정도의 배터리와 남은 경로를 살피니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난 이미 양구에서 라이딩을 종료하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어 있었다.

한참을 달려 그 긴 업힐만큼이나 긴 다운힐을 만났고 빠른 속도로 남은 거리를 줄였다. 그러다 만난 곳, 드디어 식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시골 점빵을 발견하고 말았다.



팔십은 훨씬 넘어 보이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가게 앞 의자를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만큼이나 오래된 건물의 짧은 처마 아래에서 슬래브 지붕을 따라 흐르는 빗방울을 아스라이 피한 정도였다. 이 점빵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도중에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는 길을 달렸기에 이런 사람의 흔적을 만난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었다. 비를 쫄딱 맞으며 다가온 나를 격하게 환영해주시는 것만 같았다. 배가 고팠던 난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끓여주실 수 있겠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할아버지는 응당 끓여주겠노라 답했다. 가게 안엔 몇 가지 안 되는 식품과 생필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선택의 폭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어린 시절엔 이런 모습이 흔했고 이런 곳에서도 지금보다 넓은 프리즘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만 캔맥주 하나, 구운 계란 3개, 생수 하나를 꺼내 라면이 끓는 동안 홀짝였다. 할아버지는 가게 안쪽에 '여보, 김치 좀 내오시게~'라며 소리를 질렀다. 두 분 모두 고령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오랜 경험으로 상대의 입술이다 행동거지를 보며 눈치로 말을 더 잘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라면을 반쯤 먹어갈 무렵 할머니가 김치를 소복이 담은 접시를 내왔다. 할아버지는 내게 김치를 내밀며 '우리는 신김치가 좋아서 이렇게만 먹는데 입맛에 맞으려나 모르겠어요.'라며 쑥스러워하신다. 하지만 이렇게 라면도 끓여주고 김치까지 내어주시는데 어찌 이리 황송한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지... ㅎㅎ

신김치는 어디 누구네 김치보다 맛있기만 하더라.ㄹ

면을 국물까지 완전히 비우고 어찌 이렇게 라면을 잘 끓이시느냐 물었더니 여기서 끓인 라면만 해도 엄청나다고 했다. 값을 치르려 물어보니 물건값 5천 원, 라면과 끓여준 비용 2천 원만 내라 하신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저렴한 것 같아 3천 원을 채워 드리려는데 한사코 받지 않으신다.

나 같은 여행자들이 은근 자주 찾아온다고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내가 제치고 달려왔던 세 명의 라이더가 비에 쫄딱 젖은 모습으로 점빵 앞에 도착했다. 왜 그렇게 반가운 걸까? ^^


그들은 오늘 양구쯤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간다고 했다. 작은 배낭 안엔 간단히 챙긴 물건들이 있을 듯했는데 그들은 여기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가려는 모양이었다. 난 그들과 무운의 인사를 나누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곧 비가 그칠 것 같다던 할아버지의 예감과는 달리 비는 더 강하게 들이부었다. 좁은 국도를 달리는 외로운 라이더를 배려한 운전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속도를 줄여주거나 멀찍이 떨어져 달려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비 내리는 도로를 달리는 건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니까.



양구에 도착해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니 배터리는 약 20%. 난 양구터미널에서 춘천터미널까지 가는 버스 편을 검색했다. 아뿔싸! 양구에서 춘천까지 가려면 양구-홍천, 홍천-춘천으로 해서 경유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나왔다. 분명 할아버지가 직행 노선이 있다고 하셨는데...

난 결정을 내야 했다. 해가 지려면 약 3시간 남짓 남았다. 양구에서 춘천까지 약 80km 정도. 평지라면 시간당 30km 달려서 거의 3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겠지만 굽이진 산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달리면 4시간도 어려울 수 있다. 눈앞에 가물거리던 전조등과 보조배터리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가져왔다면 이런 고민 다윈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난 스마트폰 전원을 그고 다시 비닐봉지 안에 넣었다. 이제 15% 정도 남았으니 아껴 써야 한다. 내비게이션의 도움 따윈 받을 수 없기에 미리 지도를 숙지하고 그대로 달려야 했다. 어쩌면 이정표가 나를 도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사진은 없다. 찍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양구선착장에 도착했을 땐, 혹시라도 배를 타고 춘천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기웃거려 봤지만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귓동냥을 한 정보가 있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하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소양호를 따라 굽이굽이 달렸다. 오르락내리락하며 달리는 길은 의외로 예쁘고 멋졌다. 퇴촌 분원리 코스 이상으로 멋진 곳이었다. 여유 없이 비 맞으며 달리는 것만 아니라면 분위기에 한껏 취해도 보고 정취는 느끼며 달리겠건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춘천 방향만 보고 달렸다. 다행히 긴 업힐보다는 낙타 등처럼 굽은 코스라 체력을 아끼며 달릴 수 있었다. 빛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고글은 벌써 100km 전부터 끼지 않고 달렸다. 빗방울 때문에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던 것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도 없어서 그냥 내리 달렸는데 마침 빗줄기가 얇아진 틈을 타 비닐봉지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배터리는 13% 남았다. 내 몸의 체력도 그 정도 남아 있을까 싶었다. 카카오맵을 열어 현재 위치를 확인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무려 40km가 남았는데 평상시 같으면 2시간 안에 무조건 갈 수 있을 거리였다. 하지만 이미 날은 거의 기울어 가고 있었다. 


7~11% 정도의 엄청나게 긴 업힐을 올라 배후령 터널 앞까지 가서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다. 마침 비를 피할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던 거다. 거의 다 온 게 분명한데 배후령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 막막했다. 전조등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넘어갈 텐데, 앞으로 남은 거리와 해가 완전히 빛을 감출 때까지 남은 시간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혹시나 싶어 카카오T를 열어 카카오택시를 호출했지만 서비스 자체를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역시 마찬가지.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배후령 직전에 있었던 터널은 차가 텀을 둔 타이밍을 맞춰 50km/h 속도로 빠르게 빠져나왔기 때문에 무리가 없었지만 배후령 터널은 왠지 좀 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시설만 있다면 터널을 걸어서라도 통과하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혹시나 싶어 앞쪽까지 가보니 작업용 시설이 있었다. 여기서 나의 오판이...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게 나은 판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배후령을 넘다 어두워진 길을 찾지 못해 스마트폰 배터리도 방전되고 나면 그 후가 막막한 상황이었을 거다. 인가도 없고, 인적도 없는 길인데...

어쨌거나 나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 작업용 통로를 타고 자전거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이어졌다. 클릿 슈즈를 신고 걷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 덜그럭거리는 좁은 시멘트 맨홀 위를 무려 5.1km 걸었다. 엄청나게 긴 터널이었다. 만약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배후령 고개를 넘는 걸 선택했을 것 같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떻게든 터널은 빠져나왔는데 쌩쌩 달리는 차량들의 맥이 끊기는 틈을 타 다운힐을 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열었다. 배터리는 8% 정도 남았고, 체력은 아직 빵빵했다. 걸으며 리커버리가 된 듯했다. 가민은 배터리가 방전되어 아웃됐고, 전조등은 없었으며 갓길은 좁고 위험했다. 게다가 가로등 따윈 없었고 빗줄기는 거세기만 했다.

믿을 수 있는 건 가시성 뛰어난 후미등뿐이었다.

나는 도로 옆에 한쪽 클릿을 채우고 차량들이 지나가는 패턴을 읽었다. 분명 20초 정도의 간극이 있었다. 터널 전 업힐 밑에 신호등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 난 마지막 차량을 보낸 후 페달을 밟았다. 아스팔트 도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도로 관리는 잘 되어 있을 거라고 판단하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의 전조등으로 밝혀진 도로 상황을 살피며 내달렸다. 기껏 2~3km만 달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거기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편하게 주차해둔 곳까지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마침 하늘이 도왔는지 교차로까지 별문제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뒤까지 따라온 택시 한 대가 조금 불안했지만 그것도 교차로를 빠져나간 후에야 내 곁을 스쳤다.

이제 안도감을 느낀 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열어 내가 갈 길을 확인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길은 명확했다. 문제는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을 달려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건 수단껏 해결하기로 하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한참을 달리자 춘천에서 화천을 향해 달려가던 길과 다시 합류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초행길에 만난 익숙함은 그 무엇보다 반갑다. 거기서부터 차까지 15km 정도 거리였는데 전조등이 없었어도 도로 위 복병 같은 건 만나지 못했다. 가끔 동네 똥개들이 튀어나와 가슴을 철렁이게 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번 라이딩은 최근 몇 년 간의 라이딩을 모두 통틀어 최고였다. 여러 가지 경험으로 지난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했고, 준비성이 나름 철저하다 생각했음에도 엄벙덤벙하는 습성 때문에 고난을 겪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목숨도 걸 때 거는 건데, 별 일도 아닌 데 쓸데없는 정렬을 낭비하기도 했다. 혼자일 때 좋은 것도 많지만 혼자여서 어려운 것도 많다. 한 뜻으로 같은 길을 동행하는 동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나를 골라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판단은 흐리멍덩한 정신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삶은 실패와 실패 속에서 단단해져 간다.

전조등과 보조배터리 두 개 덕에 고생도 생각도 많았던 라이딩이다.

다음에 이 코스를 다시 달리게 되겠지만 그땐 정말 재밌게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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