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닌 길을 검증도 없이 길이라 안내해서 개고생 시키다
작년에 왔을 땐 영업하지 않던 휴게소가 문을 연 걸 확인하고 쪼로로 달려들어갔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손님은 나밖에 없고 딱히 영업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주머니가 계셔 라면을 부탁하고 맥주 한 캔을 사서 홀라당 마셔버렸다. 역시 라이딩엔 맥주가 최고다. ㅎ
계란 하나 깨서 풀어 끓인 라면이 꿀맛이다. 칼칼한 김치가 라면과 천상 궁합. 잘 먹으며 달려야 하는데 이거라도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지덕지인지 모른다. 또 라면만 먹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안장에 오르는 나.
제발 좀 쉬자고~!
지난번 라이딩 때도 그냥 스쳐 지나가 버렸던 동네. 국토정중앙 마을이란다. 딱히 의미를 두진 않으려 했는데 왠지 국토의 정중앙에 있다는 생각이 의미로 다가왔다. 게다가 양구터널 우회로를 향하는 길목에 있으니 들러 사진이라도 촬영해 두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던 거다.
땅끝마을에 가도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는데 이놈의 글질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 이젠 SLR을 안 갖고 다니게 되어 사진에 관심도 잃어가는 처지. 아무튼 이 탑이 있는 위치가 국토 정중앙인가 싶었다. 여기서 신발도 벗고 에너지겔 하나 뜯어먹으며 아주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기선 10분 정도 쉬었으니 엄청 오래 쉰 거다. 양구옛길을 지나면서 구름이 정말 걷혀 햇살이 뜨거웠다. 몸에서 열기를 좀 빼줄 요량으로 나무 그늘 아래로 기어 들어갔더니 선선하니 좋았다. 1리터짜리 물통엔 아직 절반 정도 물이 남았고, 양구터널을 지나 편의점을 만나면 보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위가 심하면 수분을 많이 필요로 하니까.
이때가 제일 좋은 시간이었다는 걸 알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주 길지는 않지만 꼬불꼬불한 시멘트 포장도로 업힐을 달리는데 바닥상태가 좋지 않았다.
올라가면서 농업폐기물 차량의 시간 엄수 사항 등 이상한 문구가 보여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끝에 만난 이것! 철문으로 막혀 있는 이 길을 두고 잠시 고민에 휩싸였다. 지도를 확인하니 양구터널을 우회하는 길은 전혀 없었고 오로지 이 길만 가능한 것이다. 카카오내비가 알려준 이 길을 두고 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우측으로 난 개구멍 안으로 포복을 해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자전거도 알맞게 들어가는 ㅎㅎ
아무튼 여길 통과해 우측으로 난 길로 향했는데...
지금 카카오내비가 알려준 경로를 캡처해서 다시 봐도 역시...
사진을 촬영해 오진 않았지만 어쨌든 창고 뒤로 난 길은 사라지고 없었다. 있었다 한들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도 문제지만 어쨌든 폐쇄된 길인 것도 사실이다.
작년에 갔던 길이 생각났다. 이 길에 비하면 거긴 양반이었다. ㅠㅠ
정말 멘붕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나. 위험을 무릅쓰고 양구터널을 통과할까?
별의별 고민을 다 하다가 위험을 감수하는 모자란 짓은 하지 않기로 하고 되돌아가는 걸로 결정했다. 또 높은 산 5개는 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원 코스대로 해도 높은 산을 꽤 넘어야 하지만 말이다.
놀라서 그랬을까? 목마르고 배고프고 귀찮고 걱정스럽고... 모든 안 좋은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쨌건 집으로 돌아가긴 해야 하니...
시간적으로 놓친 부분이야 어쩔 수 없고, 다행히 아침에 무게 때문에 망설이다 달고 온 랜턴이라도 있고 추위를 막아줄 바람막이라도 있으니 산길 넘는 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양구옛길로 들어서 100km 지점에서 쉬었다. 원래대로라면 70% 지점인 건데...
앞으로 약 50km가 남았고 배치고개, 배후령을 넘는 게 관건이다. 체력이 남아줘야 할 텐데...
110km 지점. 누적 오르막이 2345m. 아직 갈 길이 멀다.
부귀고개를 넘다 지쳐 잠시 쉬고 있는데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라이딩하면서 마을버스라도 잡아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벌써 의지가 약해진 걸까?
아직 장거리 다닐 체력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겨우내 너무 놀긴 했다.
부귀고개에 올라가니 갑자기 청평사-소양댐 여객선 생각이 났다. 많은 라이더들이 그걸 타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난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지도를 열어 청평사 선착장까지 거리와 시간을 잡아보니 열심히 달리면 5시 마지막 배를 탈 수 있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열심히 달릴 체력이 있지도 않았지만 당장은 긴 다운힐이 있으니 내려가며 체력을 충전하고...
그랬지만 다시 만난 하우고개 업힐에선 초반부터 체력이 털리고 있었다.
달리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지만 내리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다. 원치 않게 끌바도 하고 다시 체력 잡히면 라이딩도 하고 그랬는데 하오고개 30% 남은 지점에서 뻗어버리고 말았다. 5시까지는 10분 남았는데 마지막 배를 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 포기한 채 누워서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북북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자전거 소리가 들렸다.
"빨리 오셨네요~" 하는 나의 질문에 "안 올라가십니까?" 하는 답변. ㅠㅠ
마음만은 빨리 가서 배를 타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걸 어쩌나. 차라리 푹 쉬고 버티고개, 배후령을 넘는 수밖에.
하지만 역시 오래 쉬지 못했다. 기껏 10분도 못 쉰 것 같다. 체력이 저질이 된 게 분명하다.
하우고개 정상. 여기서는 5분도 채 쉬지 못하고 억지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업힐을 올라 긴 다운힐과 낙타등 코스를 지나 청평사 계곡을 향했다.
청평사 유원지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쉬면서 물과 체력을 보충한 후 남은 두 업힐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에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이미 영업 종료란다.
어떻게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이미 늦었으니 고개 넘어서 갈 거다, 고 했더니 지금 빨리 가면 마지막 배를 탈 수 있을 거라고...
난 대체 무슨 소린가 했더니 마지막 배는 5시 30분이란다.
미친 듯이 달렸다. 내가 달려오는 걸 본 건지 검수원이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난 이 마지막 배를 탈 수 있었다.
난 그저 하늘이 날 굽어 살피셨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망할 놈의 블로거. ㅎ
불과 한 달 전 정보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부귀고개에서 쉴 때, 청평사 선착장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려고 했었는데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포기했던 차였다.
힘이 드니 생각이 짧았던 거다. 소양댐 선착장에 전화해 보면 알 것을...
그러면 마음 졸이지 않고 부담 없이 시간 맞춰 올 수 있었을 텐데...
소양댐 선착장까지 오는 뱃길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체력이 고갈된 상황에 두 개 고개를 넘을 생각이 갑갑했었는데 신의 축복인 거다.
처음 만난 편의점에서 콜라 2+1으로 구입하고 하나는 여유 있게 마셔준 후 두 개는 비닐봉지에 넣고 핸들에 걸고 유유자적 차로 돌아왔다.
차에 도착하니 집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이젠 여유롭게 행동해도 된다. 아주 한적하게 편안하게 뭔가에 쫓길 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그래서 라이딩 코스 그림은 이렇게 되고 말았다. 예정보다 거리와 획득 고도는 줄었고...
이번 라이딩에서 느낀 게 있다. 스트라바 제목에도 나왔듯이...
1. 남들이 안 가는 코스는 가지 말자
2. 카카오내비 믿지 말자
이젠 더는 안 당하리라. ㅎㅎ
하긴 덕분에 재밌는 MTB 다운힐 코스를 하나 찾긴 했지.
30년 전부터 다녔던 소양댐 인근 **막국수.
2년 전 용문-속초라이딩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가 맛이 변해 두 번 다신 안 간다 했다가 속는 셈 치고 다시 갔는데 역시 속았다. 카운터에서 계산하는데 다른 손님도 맛과 음식 품질에 대해 말이 많았다. 역시 초심 버린 식당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서울로 들어와 봉은사를 지나는데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왔음을 알 수 있었다. 강남 들어오니 마음이 이렇게 편하다. 자전거를 왜 타는지. ㅎ
집으로 돌아와 푸라닭치킨에 소머스비, 파울라너 천상 궁합 조건의 치맥을 끝으로 라이디이을 정리 했다. 역시 몇 조각 먹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절대 다리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