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로 올레길 종주하기_제1코스
시작은 우연히 하는 거다
벵에돔 낚시가 지겨워진 순간 문득 뇌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언젠간 하리라 맘먹었던 그것.
바로 MTB로 올레길을 종주하는 것이다.
2-1코스, 2-2코스. 이런 식으로 갈라지고 만나는 구간이 있어서 하루에 종주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구간별 종주를 작정했다.
그동안 제주도 환상자전거길을 세 번 돌았다.
그중 두 번은 혼자 하루 만에 종주했다.
시계 방향 한 번, 반시계 방향 한 번.
나머지 한 번은 서울에서 함께 라이딩하는 친구들과.
그건 3일 걸렸다.
제주-서귀포 방향 1100 고지도 한 번 했고, 산록도로 종주도 한 번 했다.
내륙 코스도 하나씩 개발해서 타기도 하는데 새로운 코스가 아니라면 영 흥미가 나지 않는다.
마침 그런 내게 올레길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번에 제주에 내려올 때는 선배님의 부탁으로 접이식 MTB 한 대를 마련해서 비행기에 싣고 왔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한다고 하면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
-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빌린다. (물론 자전거를 소유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게 맞다.)
- 자전거를 비행기로 실어 온다.
문제는 자전거를 가져오는 데 있어 드는 비용이다.
우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저가항공사는 자전거를 수하물로 싣는 데 1만 원의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김포공항에서 자전거를 패킹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박스 구입비용, 박스 포장(왕복) 비용 등을 따지면 약 7만 원 가까이 든다.
그뿐 아니다.
집에서 김포공항까지 자전거를 가져가는 것도 문제다.
집에서 픽업해주는 서비스도 있는데 시간적인 문제와 비용적인 문제 두 가지가 발생한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 투어용 가방을 샀다.
로드바이크는 바퀴를 다 빼면 두 대 들어간다. (실제 경험)
MTB 역시 바퀴 두 개를 다 빼야 하는데 접이식 MTB는 앞바퀴만 빼고도 가능했다.
공항에서 달아보니 가방 포함 15.5kg 나왔다.
제주공항에서 성산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해안도로를 타거나 내륙으로 가거나.
나는 주로 내륙으로 가는데 사려니숲 사이로 난 도로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마침 로드바이크를 탄 한 명의 라이더가 나의 마음을 충동하고 말았다.
바로 나의 계획에 펌프질을 한 계기가 된 것 같다.
벵에돔 낚시에 지친 나는 오후 4시쯤 집으로 향했다.
이제 시작해야 할 때다.
혹시나 싶어 자전거 의류는 다 챙겨갔지만 올레길 1번 코스만 돌 생각이었기에 낚시 복장에 헬멧과 고글 그리고 라이딩용 반장갑만 끼웠다.
물론 GARMIN도 챙겼다.
어머니 자전거이기에 안장 높이도 최대한 뽑아 올리고 후미등도 달았다.
올레길 1번 코스는 작년에 어머니와 함께 돌아본 곳이다.
자전거로 하게 될 거라고는 어림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흥미진진했다.
올레길 안내소다.
사람은 퇴근하고 없는 듯했다.
여기서 50미터 정도 올라가면 올레길 등산로 초입이다.
정상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구간은 그다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등 뒤로는 한라산 동쪽의 오름들이 툭툭 튀어 올라오는 듯 보였다.
생각했던 대로 자전거로 오르기엔 상당히 가팔랐다.
짧은 구간 두 차례 업힐 라이딩을 시도했지만 기어비가 맞지 않아 헛바퀴를 구르거나 제대로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그냥 등산이나 마찬가지였다.
두산봉 정상까지는 불과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정상은 소를 키운다고 들었는데......
정상은 시작부터 소똥 천지다.
소똥 피하는 게 업힐보다 더 힘들었다.
뭔 소똥이 그리도 많은지......
소는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 좁은 능선길에 집중적으로 똥을 눈 것 보면 소들도 편한 데서 일을 보고 싶었던 듯했다.
소똥을 피하느라 멈춰 세울 정신도 없었다.
좁은 길에 소똥을 몇 번이나 밟을 뻔했다.
이미 말라버린 소똥은 밟긴 했다.
전망대에서 사진 몇 컷 촬영하고 바로 정상을 탈출하기로 했다.
은은하게 코 끝을 풍기는 소똥 냄새가 너무 시골스러워서 곤혹스러웠다.
지미봉 방향으로 다운힐이 시작됐다.
뜨헉!
경사도가 만만치 않은 다운힐이다.
사실 MTB랍시고 타면서도 오프로드를 달린 경험은 그다지 없다.
특히 산악에서의 경험은 전무한 거나 마찬가지.
기껏 동영상이나 본 게 전부인데 너무 무모한 짓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잡았다.
브레이크가 귀곡성을 울려댔다.
브레이크 패드에 오일이 묻은 것이다.
빨리 갈아드렸어야 했는데 몸서리쳐지게 하는 브레이크 소음에 귀가 다 멀 지경이었다.
브레이크 접지력은 그나마 디스크 브레이크라서 다행인 듯했다.
일반 브레이크라면 깨져 나갔어도 할 말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올랐던 것이다.
두산봉을 등산할 땐 몰랐지만 하염없이 이어지는 다운힐에 브레이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추석이라 그런지 돌담 안 봉분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두산봉 뒤쪽으로 묘지가 꽤 많이 있었다.
밤에 오면 살짝 겁이 날 지도 모르겠다.
숲 속 길을 따라 다운힐과 업힐이 이어진 후 나타난 모습.
아주 장관이었다.
멀리 역광으로 보이는 오름들의 위용은 딱히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경사진 곳의 너른 들판도 넓게 트여 가슴을 트이게 했다.
짧지만 다시 업힐이 시작됐다.
자전거를 함께 세워 사진을 촬영하니 제법 멋진 경관이 연출되었다.
역시 제주는 날씨가 생명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어서 그런지 보기 드문 멋진 광경을 펼쳐 주었다.
쉬는 동안 주변 동영상을 촬영했다.
삼각대 같은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손각대로 성의 없이 촬영한 거다.
이번에도 역시 귀곡성을 내며 긴 다운힐이 이어졌다.
신나서 소리를 지를 판이었는데 브레이크의 비명에 내 목소리가 눌려버렸다.
내려오면서 한 손으로 촬영하는데 불안불안.
어지간하면 촬영은 멈춰 서서 하는 걸로.
지미봉이 조금씩 가까워져 왔다.
큰길을 만나 4거리를 건너 환상자전거길 방향으로 향했다.
곧 바다를 만난다.
마을 사이를 가로질러 휠체어 구간이 나타났다.
마을을 지나 바다 냄새가 날 즈음이다.
그렇게 지나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향에서는 처음 보는 유수지다.
오리와 백로들이 편안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 동영상 하나. ^^
드디어 환상자전거길과 합류된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자잘하게 분리되는 구간을 제외하고는 환상자전거길과 비슷하다.
종달리를 지나 시흥리로 들어서는 구간이다.
여기 앞바다에는 조개가 많다.
어머니와 함께 나가면 엄청나게 캐서 돌아온다. ^^
가끔 길을 다니다 보면 이 팔각정에서 고독을 씹는 여행자들을 흔히 보는데 나도 한번 흉내나 내볼까 싶었지만 갈 길이 아직 멀고 해가 지기 전에 올레길 1코스를 마무리해야 하는 까닭에 그냥 사진만 찍고 지나치고 말았다.
이제 성산이 코 앞이다.
문제는 두산봉 정상에서부터 앞바퀴 바람이 절반도 안 된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쿠션은 그만큼 좋긴 했지만 고속주행이 어려웠다.
마침 도장 찍는 곳에 자전거 바퀴 바람 채우는 기계가 있다는 것을 지난번 환상자전거길 당일 종주 때 알게 되었다.
멍청하게도 고산에서부터 김녕까지 소방서, 카센터 등등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일요일이었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자전거 관련 업소들은 어디에도 문을 열지 않았었던 것이다.
조금만 영리했다면 자전거 투어 업소에 들렀을 것인데 머리가 나빠서 거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튼 낑낑거리면서 김녕해수욕장에 있는 도장 찍는 곳에 도착해서야 자전거 바람 넣는 기계가 있는 것을 발견했었는데 그마저도 고장 나서 작동이 안 됐다.
다행히 반대쪽에서 자전거 여행 중이었던 대학생들 덕분에 타이에 공기압을 채울 수 있었다.
집에서 미리 챙겨 나오지 않은 불찰이 제일 크다.
아무튼 이번에도 마찬가지.
집에서 가까운 코스라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잘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퍽이나 그럴까 싶지만.
성산항 로터리로 진입했다.
환상자전거길은 올레길과 반대편이다.
나는 지도를 보고 성산항 쪽으로 향했다.
낚시하러 가끔 갔던 성산항 화물차 주차장길로 접어들었다.
눈에 익은 길이다.
오른쪽으로 가파른 업힐이 시작됐다.
기어를 다 털고 흙과 풀이 잔뜩 자란 오프로드를 오르기 시작했다.
뒷바퀴가 헛돌고 앞바퀴가 들리는 상황에다 앞바퀴 중심이 좌우로 쏠리며 나 같은 MTB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코스라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어떻게 해서든 올라가야지.
이 언덕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멀리 우도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산 일출봉도 위용을 드러냈다.
MTB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성산항 우측으로 높은 물보라가 보였다.
이런 날씨에는 낚시를 피해야지.
언덕 위에 있는 이 리조트는 정말...
돈만 있으면 내가 사고 싶다. ㅋ
점점 성산 일출봉이 가까워진다.
올레길 1코스도 거의 끝나간다는 이야기다.
광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곧 내 벵에돔 낚시터도 나온다.
지도를 보지 않고 일출봉 주차장까지 간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되돌아간 나는 올레길 코스를 찾아 접어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업힐을 오르려던 나는 앞쪽에 길을 가는 관광객들에게 민폐를 주기 싫어서 자전거를 끌었다.
오르는 길에 예쁜 하얀색 꽃을 보았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저기가 유명한 한치 포인트라던데, 내년 시즌에 한번 도전해 보리라.
일출봉이 저녁 햇빛을 따사로이 받는 것 같다 싶어 반대편을 보았더니 태양이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역광이라 더 심하게 느껴지겠지만 해가 지려면 30분 정도 남은 것 같았다.
빨리 광치기까지 가야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거다.
나의 벵에돔 낚시터에 사람들이 많다.
이제 거의 만조가 다가오니 벵에가 물기 시작할 때다.
여태껏 왜 이 길을 몰랐을까?
광치기 해변을 걷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여긴 제주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느낌이 있었다.
사계 해변이 이곳과 비슷한 느낌일까?
각기 독특한 색깔을 지닌 제주의 구석구석이 다시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라산의 실루엣이 주변의 많은 오름들과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
이런 게 제주의 멋스러움 아닐까?
장엄함이란 게 느껴지는 일몰이 아닐까 싶다.
바다 아래로 떨어지는 일몰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광치기 해변, 터진목이다.
4.3 때 여기서 엄청난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그들의 영혼은 이 풍경으로 대신 위로받았을까?
이것으로 올레길 1코스 MTB 라이딩을 마쳤다.
업힐도 많고 등산 코스도 있고 사진 촬영도 많이 해서 시간은 오래 걸렸다.
시간 줄이는 걸 목적으로 MTB 라이딩을 시도한 것이 아니므로 시간에는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저 올레길을 MTB로도 갈 수 있을까 궁금했던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나머지 코스는 언제 다 돌 수 있을까?
올 해가 가기 전에 모두 돌고 한라산 생막걸리나 한 잔(사실은 몇 병) 마셔야겠다.
집에 돌아오는 중에 어머니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식사 준비가 거의 끝났는데 어디냐는 것이다.
집까지는 대략 5분 정도 남았을까?
집에 도착해 씻는 동안 상이 차려졌다.
물 대신 500ml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숟가락을 들었다.
소박해 보이지만 청국장과 반찬들은 모두 이유 있음이다.
1. 제주산 갈치와 삼치구이
2. 제주에서 직접 담근 된장을 기반으로 한 청국장인데 내용물은 제주산 조개와 삿갓조개
3. 제주산 콩잎으로 직접 콩잎장
4. 제주 집에서 직접 키운 라오스 오이지(라오스에서 사온 씨앗)
5. 멀리 고산리에서 직접 뜯은 톳나물
배가 터지게 먹고 이렇게 후기가 쓰여졌다.
GARMIN 기록을 캡처했다.
다음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