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B로 올레길 종주하기_제2코스

가장 힘든 건 첫 발을 떼는 것이다

by 루파고

1코스를 시작하니 2코스는 별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어제는 즐거운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나의 자전거 소설 <로드바이크 시즌1-자전거 도둑> 편을 출판하시겠다는 연락이었다.

요즘 업무가 바빠서 별로 신경도 못 쓰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좋은 소식이었다.


요즘 벵에돔 낚시에 푹 빠져 사는지라 자전거에 대한 열의가 좀 식긴 했는데 올레길 덕분에 다시 에너지가 솟기 시작했다.

오늘 2코스를 계획하고 어제는 일찍 자고 싶었지만 어제저녁에는 성산 일출봉 아래 낚시 포인트에서 자주 만나는 벵에돔 낚시 고수인 조사께서 60센티는 되는 잿방어를 주셔서 회에다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말았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일 게다.

아무튼 아침 7시에 간신히 일어나 MTB를 탈 준비를 했다.

역시 문지방령이 가장 높다더니 어떻게든 라이딩복을 주워 입고 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간신히 문지방령을 넘고 만다.


광치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까 싶었는데 거기까지 자전거를 차에 실었다.

나중에 서쪽 지역의 올레길을 다니려면 항상 이런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먼 위치의 올레길은 가급적 하루에 몇 코스 이상 다녀야 하겠다.


반갑다. 광치기.

오늘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2코스 시작 부근에는 2코스의 우회로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오리지널 코스로만 돌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우회로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올레길 2코스 입구는 도로공사로 인해 어지럽다.

초반부터 이리저리 헤매다 간신히 올레길 초입에 들었다.



꼭 서해안 염전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멀리 주택이 하나 보이고 가까이 갈수록 개 짖는 소리가 커져갔다.

6개월 정도 된 강아지들이 신이 났는지 나를 따라온다.

혹시라도 허벅지라도 물면 어쩌나 잠시 고민했지만 영역을 넘지 않으려는 듯, 더 이상은 따라오지 않았다.



둑길을 한참 달리자 수로와 연결된 둑이 보였다.

수문을 통해 바닷물이 유입되고 오다가 본 양식장의 물을 이렇게 유입시키나 싶었다.



데크로 조성된 길이 잠시 이어졌는데 나름 운치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편 같았다.



데크길을 벗어나니 말 두 마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번엔 말똥 천지다.

1코스 두산봉 정상에서 소똥을 피하며 달렸던 기억이 났다.

말똥은 냄새라도 덜 하지......



정말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났다.

길이 없다고 봐야 하는 거다.

이게 정말 올레길이 맞을까, 고민했던 나는 올레길 표식을 보고서야 안심했다.

미처 지도를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른 시간이라 선선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열이 나고 있었다.

지나는 길에 버섯도 발견해서 사진을 남겼다.

멋을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숲길을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자전거 페달이 잘 안 구른다.

체인이 절그덕거리며 빠질 듯했다.

이상하다 싶어서 자전거를 살펴보니 아까 발에 걸렸던 넝쿨이 스프라켓과 드레일러에 걸려 마구 엉켜 있었다.

넝쿨이라 질겨서 잘 빠지거나 끊어지지도 않았다.



워낙 자주 다닌 곳이라 이색적이지 않은 곳.

오조리다.



오조리 감상소, 지난 6월 서울 자전거 동호인들과 함께 환상자전거길 일주 때에도 공사 중이었던 곳.

아직도 공사 중이다.

무슨 대단한 예술작품을 만들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식산봉 입구다.

바오름이라고도 한다.

고도는 60m.

정말 뒷산 수준이다.

문제는 시작부터 경사가 아주 세다는 거다.

난 그래서 초반부터 끌바로 시작했다.



바오름 정상에 있는 전망대다.



아래 묘를 보니 그 자손은 자자손손 복을 누리리라 싶다.

그래서일까?

어느 오름에 가도 묘는 있다.

일부 오름에 묘를 쓰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바오름을 거의 내려오니 다시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오조리 마을 쪽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 달리는데 기분이 아주 달달하다.

데크를 달릴 때 나는 소리는 아주 경쾌하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

내게 먼저 인사를 했는데 미처 답을 할 겨를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그 사람은 얼마나 무안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찌할까?

차라리 크게 소리라도 질렀어야 하나 싶다.



마을에 접어드니 쪽지물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여기에 올레길 여행자들에게 반가울 수밖에 없는 화장실이 있다.

올레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간에 화장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들은 낭패다.

나 역시 이 날 급똥으로 아주 난감했는데 마침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 말고.



오조리는 성산 일출봉이 잘 보이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 이색적인 가게도 제법 많다.



짜잔!

이제부터 거의 아마존이다.

길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거의 수풀을 헤치며 자전거를 타거나 끌었다.

70% 이상은 끌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숲을 헤치며 가다니...

아까 우회로가 왜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긴바지를 입지 않아 찔레 가시에 다리가 긁혀 쓰라렸지만 들국화가 예뻐서 참았다.

거의 곶자왈이다. ^^



그 와중에도 이렇게 사진을 다 찍었다는 게 용하다.

MTB를 밀고, 들고 다녔다고 봐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앉으면 바로 일어서야 했다.

나무는 낮고 옆으로 기운 가지에 얼굴을 긁히기 일쑤였다.

돌다리 몇 개를 건너니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존에서 문명을 만난 느낌일까?



말똥을 피해 나오니 길을 막혔고 무너진 담벼락 사이라 좁은 통로가 보였다.

이제 문명의 세계다.



4차선 대로도 건너고 열심히 달렸다.

잘못된 길로도 엄청 달렸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대수산봉.

오름이다.

정말 가파르다.

업힐은 거의 끌바로 끝장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다운힐을 기대하며 오르긴 했다.

숲이 우거져 피톤치드가 폐로 침투하는 듯했다.

업힐은 기나길고 마주 내려오던 한 여인은 나를 두려워하며 멀찍이 피했다.

내가 그렇게 생겼나?

산적 정도로 봤을 것 같다.



열심히 오른 보람이 있었다.

섭지코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더니 그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섭지코지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수산봉은 137m다.

겨우 이 정도 오르고도 이런 멋진 뷰가 펼쳐지는데, 여기에 군산오름 같은 녀석이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이제 미친 다운힐이다.

신나게 달려 내려가던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에 휩싸였다.

올레길 표식이 없어진 것이다.

아무리 내려가도 보이지 않았다.

급브레이크를 밟고 지도를 보니 역시 벗어났다.

대체 어디서 놓친 걸까?

자전거를 밀고 다시 정상 부근에 올라오니 산불초소 뒤로 올레길 표식이 보였다.

이런...

하지만 그래도 다운힐이다.



사고 발생!

다운힐에 심취했던 나는 돌부리도 피하고 나무뿌리도 피하고 꼬불꼬불 오솔길을 이리저리 다운힐.

헉!

순간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었다.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가며 자전거는 나를 누르고 나도 모르게 바닥을 굴렀다.

그런데 바닥이 폭신하다.

한강에서 로드바이크를 탔다면 포장도로에다 마구 비벼진 피부가 어땠을까?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허탈한 웃음이 아니었다.

언젠가 동영상에서 보았던 앞구르기를 내가 이 곳에서 시전 한 것이다.

한참을 웃다가 미친 건가 싶어 다시 다운힐을 달렸다.

MTB의 매력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었다.

로드바이크가 먼 곳으로의 여행이라면 MTB는 산악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예쁜 제주 묘도 지나고 수풀 우거진 오솔길도 지났다.

길이 너무 예뻐서 동영상을 찍으려 했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껴 바로 꺼버리고 말았다.




다시 한참을 달렸다.

이젠 시멘트 포장된 도로와 비포장 도로를 교차하며 2차선 아스팔트 도로도 건넜다.

올레족 4명이 사진을 찍는 모습도 마주쳤다.



다시 한참을 달리자 홀로 올레길을 걷는 사람을 지나쳤다.

아까 못한 인사라도 할까 싶었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람을 지나쳐 불과 300m도 지나지 않아 챙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페달이 떨어져 나갔다.

작년 7월에 제주도 환상자전거길 당일 종주할 때도 애월 다운힐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었는데 또 이렇다.

마침 툴을 가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여기서 2코스를 마무리할 뻔했다.

크랭크에 페달을 조이는데 아까 지나쳤던 올레족이 나를 스쳐간다.

쌤통이라는 듯.

그 역시 내게 인사는 없다.

너무 차가운 것 아닌가?



자전거를 수리하고 신나게 달렸다.

농지 사이로 제주스러움이 가득한 돌담과 돌담이 있고 그 안에 농로가 있다.

그중에 올레길을 낸 것이다.

일꾼들을 태운 트럭 한 대와 좁은 길에서 마주쳤는데 자전거조차 피할 공간이 없다.

간신히 트럭을 보내주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짧은 업힐과 다운힐이 이어졌다.

예전에 해가 뜨기 전에 1100고지 업힐을 시작해 차도 다니지 않는 도로 위를 다운힐 하면서 혼자 미친 듯이 소리치며 달렸던 기억이 났다.

그만큼은 아니어도 나 혼자만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드디어 혼인지가 나타났다.

올레길 2코스도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증거다.

이곳은 알기는 했어도 방문은 처음이다.

혼인지가 이렇게 큰 규모인지 몰랐다.

온평리는 혼인지 마을이라고 하던데 소풍 삼아 도시락 싸서 가보는 것도 좋지 싶다.



기와건물과 예쁜 호수를 지나 혼인지를 빠져나오려던 나는 갑자기 뱃속에서 이상한 신호를 보내는 것을 감지했다.

억지로 가스를 뿜어 내었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화장실!

내 머릿속엔 세 글자로 된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혼인지에는 화장실이 있을 거라는 믿은 그 자체는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내 눈 앞에 화장실이 보인 거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화장실 안에 주차를 하고 바로 튀어 들어갔다.

마침 자전거 복장이라 져지를 벗어야 했고 빕의 어깨끈을 내리는 순간까지 머리는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변기에 엉덩이가 붙기 바로 직전 뇌는 신체의 조절끈을 놓아버렸다.

만약 혼인지가 아니었으면 난 어디에서 어떤 모양새로 일을 보았을까?

천만다행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일을 보고 나오는데 지난번 1코스에서 만났던 꽃이 보였다.

샤프란!

내가 활동하는 밴드 회원이 알려준 그 꽃!

왜 그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서비스로 아직 지지 않은 수국도 있다.

사진을 찍는데 혼인지 관리인인 듯한 여자분이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기분이 묘하다.

내가 급한 일을 치른 것을 아시는 걸까?



온평리 바닷가 마을로 접어들자 재미난 조형물이 입구에 놓인 주택이 있어 촬영했다.

여기서도 다운힐에 맛들려 길을 잘못 접어들어 되돌아오는 상황이 연출됐다.

문주란을 줄지어 키운 것도 눈에 띄었다.



드디어 온평리 환해장성이다.

문화유산으로 뭔가 조성하는 듯 보였다.



용천수공원쉼터도 지나치며 구경하다 보니 앞에 3코스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일과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다음 코스도 미리 점 쳐본다. ^^

3-A코스를 먼저 할까? 3-B코스를 먼저 할까?

하루에 두 코스를 다 뛸 예정이다.

어차피 짧으니까.

정보에 의하면 3코스가 1,2코스보다 예쁘다고 하니 다음에 제주 내려올 때 달려보기로 한다.

MTB기술을 좀 배우고 와야 오늘처럼 앞으로 처박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사부님~





집에 돌아와 세차를 했다.

해야만 했다.

넝쿨과 흙이 뭉쳐 잡소리가 장난 아니고 브레이크 패드에 흙이 들어갔는지 제동력도 떨어졌다.

게다가 이건 어머니 자전거다.

S사이즈라 너무 작아서 싯포스트만 안 부러질 정도까지 빼고 타는 거다.

나중에 내 거 한 대 내려다 놔야겠다.



바닷가에는 문주란 꽃이 활짝 피었다.

이미 진 꽃은 씨앗을 품고 있었다.

문주란은 집에서도 키웠었기 때문에 이 꽃이 꽤나 반가웠다.



이번 일주일의 연휴 동안 잡은 벵에돔과 잿방어, 숭어가 잘 마르고 있다.

이게 벌써 세 번째니까 양은 꽤 된다. ^^




올레길 제2코스 MTB 라이딩 결과다.

고도 편차가 있으니 참고하면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