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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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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Dec 04. 2021

추억 소환 1, 눈싸움을 가장한  돌싸움

어릴 땐 겨울만 되면 어찌나 눈이 많이 왔는지 한번 내리면 30센티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하니 놀거리가 다양하지 않던 그 당시엔 눈만 오면 온 동네 아이들이 골목을 차지했었다. 요즘처럼 승용차가 많지 않아 아이들이 골목을 누려도 교통사고 같은 걸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눈이 쌓여갈 즘이면 동네 골목엔 온통 눈사람이 세워졌다. 어린아이들은 작은 눈사람, 마침 부모님이 집에 계신 집엔 어른 키만큼 큰 눈사람도 세워졌다. 여기저기 눈을 굴리고 다니는 아이들은 여기저기 넘어지고 굴러다녔다. 깔깔거리며 어떤 눈사람을 만들어낼지 각자의 상상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다 보면 눈싸움이 시작됐고 별 이유 없이 두 편으로 갈려 눈이 날아다녔다. 지금껏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보아도 두 패로 편이 갈려진 까닭을 알 수 없지만 그걸로 인해 네 편과 내 편으로 선이 그어지거나 하진 않았으니 눈싸움은 그저 놀이였을 뿐 어떤 편을 가르는 행위의 연장은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길게 난 넓은 주차장에서 옆 동에 사는 같은 반 친구와 얼굴만 알고 지내던 동네 꼬마 두 명과 함께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 녀석들은 아무리 눈을 뭉쳐 던져도 잘 나가지 않았다. 친구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녀석들은 모두 내 사정권에 있었기 때문에 눈덩이를 피할 수 없었다. 한참을 허탕 친 친구는 잠시 휴전을 신청하더니 내게 묘한 제안을 했다. 눈덩이 안에 돌을 넣어서 던지자는 것이었다. 맞으면 아프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전혀 상관없을 거라며 굳이 고집을 피웠다. 그리고 다시 눈싸움이 재개된 후 내가 던진 돌눈덩어리는 녀석의 정수리에 명중하고 말았다. 하얀 눈 위로 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난 순간 겁이 덜컥 났고 친구에게 달려갔다. 쓰러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머리가 찢어진 것이다. 피가 꽤 나는 걸로 보아 많이 찢어진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 가려 알 수도 없었고 빨리 집으로 데려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집엔 녀석의 엄마가 계셨고 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집으로 내달렸다. 어쨌건 내 돌눈덩어리에 맞아 사고가 난 것이라 겁이 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자 녀석이 자기 아버지를 대동하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머리엔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머리가 찢어져 꿰매는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나 역시 두 어른들을 앞에 두고 사고의 연유에 대해 설명했다. 친구 역시 사실에 동의했다. 녀석은 제 아버지에게 낚여 돌아갔다.

사실상 녀석의 제안으로 시작된 위험한 놀이였지만, 나 역시 동조했으니 나도 동범인 것이다. 사고란 사고가 났으니 사고인 거다. 사고를 쳤지만 드러나지 않고 넘어가면 끝날 일이지만 요즘처럼 민감한 시기, 불거지는 많은 사고들을 보면 영원히 비밀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릴 때 학교 야구부 선생님이 우리 집에 찾아와 야구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를 서른이 넘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당연히 거절을 했지만 선생님은 그러고도 몇 번을 더 찾아오셨다고 들었다. 운동선수를 하게 된 것도 취미에 불과했지만 수영, 테니스, 스케이트 세 개 종목의 도 대표를 하는 아버지 영향이었을 것 같다. 주말이면 집에 붙어있을 리가 없었으니 아들이 운동을 하는 걸 좋아할 리 없었을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제법 잘 던졌으니 야구부 선생님이 집까지 찾아왔을 텐데, 내 돌눈덩어리에 맞은 녀석은 운이 없었던 거다. 어릴 때 동네에서 야구 못 한다고 볼보이나 시키던 녀석은 프로팀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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