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의 군생활 기억을 소환했다.
나 또한 결벽증이 조금 있었다.
언젠가 어머니는 내가 등산을 다니면서 인간이 됐다고 했다.
너무 힘들기도 했고 선배들에게 어찌나 호되게 당했는지 나를 놓아버린 것이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군 생활이 어렵다는 느낌이 없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머니 친구들은 내 방을 보며 '이 집에 딸 있었어?'라며 놀라곤 했다.
방에 뭐 하나 흩어 놓는 법이 없었고, 뭐든 제 자리에 없으면 불안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약간은 그게 남아 있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법 인간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난 내 나름대로 그어놓은 선에서 뭔가 넘어서는 걸 인지하면 불안하다.
아마 요즘이 딱 그런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열망하던 일이 코 앞에 다가왔고, 성공이란 녀석이 눈앞에 가물가물한데 뭔지 알 수 없는 무언가 하나가 부족한 것만 같은 불안함이다.
내가 만든 결벽 안에 나 스스로가 갇힌 듯한 느낌이랄까?
어머니 표현으로, 그나마 사람이 됐다고 했을 정도로 결벽에서 멀어졌건만 내 안엔 그 녀석이 숨 죽인 채 살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 녀석이 다시 소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이 부족해도 이렇게 살았던 내 모습이 나 역시 편안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