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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Sep 16. 2019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걸어서 섭지코지 한 바퀴

집이 코앞인데 이상하게 정이 안 가던 곳 섭지코지.

이미 오래전부터 다녔던 곳이었고 난개발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건축물 때문인지 섭지코지로는 발이 가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에서도 섭지코지는 제외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얼마 전 섭지코지가 벵에돔 포인트라는 정보에 솔깃하여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뒤편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섭지코지.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곳.

섭지코지 북쪽 바다는 하얀 물보라와 파란 바다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벵에돔도 그런 뷰가 아쉬워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뒤편에 주차를 하고 시계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낚시를 던질 거라는 보장도 없으면서 루어낚싯대에다 새로 구입한 메탈 루어를 하나 매달고 왼손에 쥐었다.

트렁크를 닫기까지 한참을 머뭇거렸던 것 같다.

대체 낚싯대를 왜 가져가려는 걸까?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도 이 건물이 폐허가 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건물 주차장에 뭔가를 말리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걸 말리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올해 유난히 건조장이 많아졌다.


마침 바닷가에 이것을 꺼내 올리는 할망의 모습이 보였다.

수확이라기보다는 건져 올린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제법 많은 양이 바다로 떠밀려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난 하루방.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역시 물었다.

하루방은 대체 뭔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감태>라는 녀석이란다.


감태(학명 : Ecklonia cava)는 갈조식물 다시마목 미역과의 해조(海藻). 줄기는 원주상이며 충분히 자란 것은 1m 이상 되는 것도 있다. 중앙부가 좀 굵고 어릴 때는 속이 차 있으나 다 자란 뒤에는 중앙부가 비어 있기도 한다. 줄기의 상부는 차차 편평하게 되고 양측에서 우상엽이 나고 여기서 다시 호생한 우상의 소엽편을 낸다. 엽면에는 주름이 없다.

색은 갈색인데 건조하면 흑색으로 된다. 주로 제주도 일대 및 일부 남해안에 분포하며, 점심대의 수심 10m 내외의 깊은 곳에서 서식한다. 2-3년간 생장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전복의 주 먹이이기도 한 감태는 알긴산, 요오드 및 칼륨 등의 영양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 건강식품자원이다.

또한 감태에 후코이단과 플로로탄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이 성분들은 항산화 효과, 항암효과, 항염효과, 노화억제 효과 및 고혈압 억제 효과 등에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감태 [Kajime, 甘苔] (생명과학 대사전, 초판 2008., 개정판 2014., 강영희)    


불면증에 특효라고 한다.

가격이 나가니 돈이 된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감 확보에 나선 듯하다.



가던 길을 가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바다에서 감태를 걷어내던 할망이 그 무거운 것들을 등에 지고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역시 제주도 여자들의 생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나는 길에 들꽃이 예뻐서 사진 한 장 남겼다.



가슴이 확 터지는 제주바다는 사진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어딜 가나 나름의 매력을 풍기는 제주의 바다.



말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말이 살이 찐다는데 얼마나 찔까?

갑자기 엄청 궁금하다.



섭지코지의 아름다운 자연 그 이면에는 이런 흉물도 있다.

어지간하면 치워주면 좋으련만.

왜 이런 사소한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걸까?

이것도 사유물이라 손을 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행정명령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걸까?



길을 거닐며 눈에 띄는 나무와 풀을 촬영했다.

나무의 종은 모르겠지만 바람결을 따라 누웠다.

꽃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자랐어도 꽃인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온 두 명의 외국 여인들.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여기가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한계점이다.

더 이상은 절대 갈 수 없다.

주차공간도 부족하니 여기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 두 개의 사진으로 어떤 걸 느낄까?

왼쪽은 관광객에게서 양식장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오른쪽은 제주도 현지 주민에게서 제주를 지키려는 관서의 몸부림이다.

두 안내문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누가 무엇을 지키려 하는 것일까?

현지인들은 과연 제주를 지킬 생각은 있을까?

그냥 재산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돌탑들이 보였다.



그 옆 바위틈 사이에는 온갖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었다.



바위에 붙어 자생하는 식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하여 몇 컷 촬영했다.



큰 돌탑을 지나 산책로를 접어드니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아마도 반대편 주차장에서부터 넘어온 사람들이겠지 싶었다.



예쁘지 아니한가? ^^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식물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어른들이 화초에 유난히 정성을 들이는 이유가 그런 것일까?



미슐랭 가이드에 있는 식당이라고 한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가보겠지.



선녀바위라고 한다.

왜 그렇게 불리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선녀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



동영상인데 현장이 잘 전달이 됐는지 모르겠다.



정말 심각한 일이다.

사실 너무 많아서 사진에 담기도 싫어졌지만 한심하다 싶어서 한 컷 찍어 두었다.

대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렸을 거라고들 한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만은 않다.

각성해야 한다.



등대 위로 가는 계단 옆으로 이런 녀석이 보였다.

식물학자들이라면 잘 알 텐데......



등대 위에서 파노라마 뷰를 남겼다.

이렇게 보면 현장이 좀 전달될까 모르겠다.



등대에서 내려가는 길.

사실 섭지코지의 볼거리는 거의 다 끝나간다.

앞쪽의 협자연대와 붉은오름 정도가 남았다.

휘닉스 아일랜드야 볼 거 없고 ㅎㅎ

삼석총과 유민미술관을 지나친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다음에 흥미가 가면 가보련다.



등대 반대편에서 촬영했다.

선녀바위도 보인다.



이게 협좌연대다.

따지자면 봉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주도 전 지역에 널리 산재되어 있다.



붉은 오름이 보인다.

이곳 자체가 오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하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오름이라고 생각하면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을 떠올리게 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과자의 집인데 너무 오래전에 와본 기억만 있다.

색이 바래 흉물스럽다.



승마장 앞 가건물이다.

이것 역시 흉물스럽다.

개인 소유라 사법권이 없다고 하기 전에 국제적 관광지인 섭지코지를 이런 식으로 방치한다는 건 무책임 그 자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섭지코지 자연은 제주도 어느 곳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

다만 인공적인 폐해가 너무나도 크다는 게 문제다.

또한 관리 부실로 흉물스럽다는 건 국제적인 망신이다.



공용주차장 앞에 건축된 힐리우스.

여기 살고픈 사람 있으면 손 좀 들어보시라고 하고 싶다.



<X판 오 분 전>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곳이다.

관리 부실은 극에 달했다.

섭지코지는 이렇게 흉물이 되어가는 중이다.

예래동처럼 말이다.

그 아름다운 곳들이 모두 이런 식이다.

가끔 관광이나 여행을 목적으로 제주를 찾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제주의 이면적인 모습이다.


 

쓴 맛을 다시며 지나가는데 휘닉스 아일랜드 벽체에도 하자가 발생한 보습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국내 굴지의 기업이 관리하는 이 곳조차 이모양이니 누굴 탓할까 싶었다.



나오면서 몇 컷 촬영했다.

섭지코지 내 탈 것들이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족한 이 곳에 이런 게 무슨 의미일까?

걸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 넓은 주차장이 그냥 놀고 있다.

나라면 카라반파크로라도 활용할 것 같다.



이제 한 바퀴 다 돌았다.

다시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돌아왔지만 역시 섭지코지는 섭지코지다.

제발 더 이상 이 아름다운 섭지코지를 망가뜨리지 않기를.

지금 있는 시설물들이라도 경관을 해치지 않게 점검하여 유지보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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