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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01. 2022

제주도 휴가에 징그러운 아로니아 수확

살벌한 쌍살벌에게 쏘여가며

휴가 둘째 날, 아직 휴가에 길들여지지 않은 몸은 때가 되자 눈이 떠졌다.

창 밖 세상은 해가 쨍하다.

태풍 영향권이라고 들었는데 태풍 전 마지막 햇살인 거다.

내가 눈을 뜬 걸 목격한 엄마는 서랍에서 긴바지를 꺼내 던져주며 아로니아 따러 가자고...

휴가 때마다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코스다.

올 때마다 감자, 더덕, 귤, 무, 당근 등 온갖 농산물을 하러 다닌다.

물론 대부분 서울로 택배를 보낸다.

일부를 제외하면 내 차지라는 거다.

이런 행위가 싫거나 한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휴가 와서 좀 쉴 만하니 일부터 하자 하니...

땀 내고 들어와서 씻으라며 얼굴에 물칠 할 여유도 주지 않는 엄마. ㅋㅋ



그렇게 쫄래쫄래 따라와 무의식적으로 가지를 훑는다. 훈련된 병사처럼...


첨엔 성의 있게 따다 보면 엄마와 경쟁이 붙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훑어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조교의 시범을 따를 수 있는 병사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 못해 비오듯 흘러 떨어지는 땀방울을 감당할 수 없어 안경도 벗어 던지고 경쟁했지만 역히 참담한 패배다.



일단 열매가 제대로 열린 나무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태풍에 열매가 떨어질 걸 생각하면 오늘 수확을 많이 해야만 한다.



거의 20kg 정도 수확했다.

그것도 화장실이 급하니 그만하고 들어가자고 해서 이 정도이다.

만약 작정하고 수확했다면 100kg는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약속도 있고 해서 빨리 들어가야 씻고 길을 나설 수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엄마의 목표량을 눌러놔야 했다.

게다가 박자도 잘 맞게 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태풍의 영향이...



일은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벌써 판은 벌어져 있었다.

빨리 선별하고 정리해서 세화장에 가야 한다고...

하지만 난 약속이 있어 세화장은 오후에 가자고 미루고 남은 시간 동안 이 선별 작업을 마쳐야 한다.

은 점점 빨라진다.

단순노동을 싫어하는 나는 의외로 단순노동을 잘한다.

난 나의 그게 너무 싫다. ㅠㅠ



아로니아 따다가 쌍살벌에게 당했다.

미처 벌집을 발견하지 못한 거다.

다행히 벌집 주위에 있던 쌍살벌들이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백여 마리는 충분히 넘어 보였다.

오죽 놀랐으면 사진도 안 찍었을 정도니까.

에프킬러가 있었다면 처리했을 건데 니들도 운 좋았다 싶어 멀찍이 떨어져 다른 나무를 공략했다.

그런데 처음엔 그냥 따끔하고 말았는데 점점 부풀어 오른다.

(벌써 삼 일째 이 모양이다. 며칠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오후에 돌아와 선별된 아로니아를 약 내리는 집에 맡기고 한 박스는 제주 집에 한 박스는 사무실로 보내달라고 했다.

며칠이 지난 오늘 아침도 그렇게 같은 패턴이 이어졌다.

눈을 뜨기만 기다리신 듯...

엄마는 내가 일어난 걸 어떻게 알았는지 당장 아로니아 따러 가자며...

역시 얼굴에 물도 못 바르고 튀어 나갔다.



오늘도 열심히 같은 패턴의 작업이 진행됐다.

아로니아 농장 감금 노동자 ㅠㅠ


요즘 이런 장갑 덕을 많이 본다.

엄마는 장갑도 쓰지 않으셔서 손이 시커멓다.

누구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어떻냐며 이젠 완전히 농촌 사람이 다 된...

하지만 그렇게 해서 지인과 이웃들 나눠주는 삶이 즐겁다 하시니 말릴 이유가 없다.



이번엔 집에서 즙을 내서 한 잔 주신다.

쓸쓸하며 떫떠름한데 나쁘지 않다.

맛을 품평하니 제주귤꿀 한 숟가락 퐁당.

달달하니 조오타!

이게 수확의 즐거움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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