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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ug 28. 2022

29. 남들은 피서 가는 거제도에서 땡볕 라이딩

반 초기화된 몸으로 무리했다

이번 라이딩은 나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함이 불러일으킨 참담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자전거를 타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거제도 라이딩을 실행에 옮기기 전 나는 카카오 맵을 열어 최대한 해안선을 따라 경로를 거리를 계산했다. 150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잠깐 고민을 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르고 있는 시점에 과연 온전하게 라이딩을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 정도 거리는 평소에도 부담 없이 달리는 편이라 고민을 털어버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라이딩 복장을 챙겨 입은 후 자전거를 차에 실었다. 부산에서 거제까지 한 시간 정도의 거리. 새벽이라 도로엔 차도 없을 것이고 내 목표는 해가 뜰 무렵 출발하는 거다. 혹시 몰라서 전조등까지 달았다. 어떤 변수가 생기면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으니까.


장복항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준비한 후 해가 뜨기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자전거 세팅하는 참에 날이 발고 말았다.



초반부터 칠천도는 코스에서 제외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의 한 수였다.

해가 뜰 무렵 바다 위는 호수처럼 물안개가 피었다. 물안개가 아닌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보이긴 했다. 역시 해안선을 따라 돌 땐 반시계 방향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완전 실수였다.



일찍 출발하니 뜨겁지 않아서 달릴 만했다. 역시 거제도는 조선의 도시였다. 10년 전쯤 업무 때문에 온 적이 있고 둘째 이모가 거제도에 살고 계시지만 멀리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나 먼지...



장평이다. 너무 오랜만에 온 걸까? 사실 예전에 왔던 곳이 거제도 어디였는지도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냥 생소함만 있었다. 추억 같은 게 없는 거제도는 내 기억 속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거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번 라이딩으로 거제도는 뇌리에 콱 박혀버릴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을 남겼다.



초반부터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초반엔 힘이 남아나니까. 겨우 150km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 걱정도 없었고 육지보다는 바닷가 라이딩이 시원한 편이라 좀 덥다 하더라도 달리는 데 지장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아침 무렵엔 구름도 많아 어쩌면 라이딩 내내 구름이 볕을 가려줄 거란 기대심도 있었다.



통영 쪽 가는 신거제대교는 사진도 못 찍고 지나쳤다. 뭔 정신인지... 벌써부터 힘이 들었던 걸까?



높지 않은 오르막을 잠깐씩 달리며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보이는 거제도.



거제식물원을 지나며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만약 누군가 함께 라이딩을 했다면 잠깐이라도 쉬어 가겠지만 혼자 라이딩을 할 땐 잘 쉬질 않는다. 항상 그게 문제를 일으키는 걸 알면서도 잘 쉬지 않고, 먹지 않고 달린다.



계곡이 나타났다. 이쯤에서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5년 동안 로드바이크를 타면서 정말 허벅지 근육이 탈탈 털려보긴 처음이었다. 힘이 들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아마도 근 한 달 정도 자전거를 타지 못했고, 체중은 3킬로그램 정도 불었으며, 잠은 별로 자지 못했고, 무더위에 땀은 바가지로 흘렸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여기선 길진 않지만 조금은 강한 편에 속하는 업힐이 시작됐는데 도저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근육 경련이 일어난 거다.

어쩔 수 없이 10분 정도 쉬다가 페달 밟기를 포기하고 끌바(바이크를 끌고 간다는 자덕들 표현)로 업힐을 올랐다. 이젠 10% 정도 되는 업힐을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만 거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덥기는 오죽 더워야 말이지.



이젠 힘들어서 사진 찍기도 싫고, 뭐라도 먹어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150km 여정 중에 겨우 90km 달려왔는데 이 지경이다. 가끔 카페가 나오면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막상 들어가려 하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나쳐 버렸다. 업힐이 나오면 고통이고 다운힐이 나오면 잠시 근육이 풀려 고통을 잊기를 반복한다. 낙타등처럼 구불구불한 업힐과 다운힐이 지속됐다.



지도에서 함목몽돌 해수욕장 초입에 있는 중국집을 발견하고 콩국수로 점심을 먹기로 작정하고 달려와 드디어 그 앞에 섰는데 두 명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정도야 참을 수 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뭐라도 먹지 않으면 중간에 탈진하고 쓰려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들어간 걸 확인하고 안쪽을 보니 4인 테이블이 비어 자리를 잡았는데 사장인 듯한 주인이 날 보더니 한 사람은 못 받는다며 나가라는 거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주인은 아까 기다리던 두 사람을 의식한 듯했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들어와 이미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 있었고 내 뒤로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는 머쓱한지 주문을 받더라.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지금 점심 먹고 잠시라도 쉬어야 나머지를 달릴 수 있겠기에 그냥 참고 말았다.

대신, 콩국수를 대충 쑤셔 넣고 튀어나오고 말았는데 기분 탓이다.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거다.



뭔가 좀 예뻐 보여서 찍은 사진인데 역시 영혼 없는 사진이라 가치가 없어 보인다. 정신력이 희미해졌던가?



그리곤 계속 달렸다. 학동흑진주몽돌, 망치몰돌 등 몽돌해수욕장이 많다. 거의 다 지나치며 달렸고 여긴 어딘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잠깐 멈춰 사진만 남기고 다시 달렸다. 아마 함목흑진주몽돌이었던 것 같다.



그냥 저 숲 안에 들어가서 잠 좀 자다 가고 싶었다. 기진맥진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체감하는 날이다. 봉크 같은 것과는 달랐다. 더위 먹고, 배는 고프고, 힘들 달리고, 물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동안 라이딩에 굶주렸다고 그 고픈 갈망을 채울 목적만 있었지 내 몸 상태를 잊은 데가 체력은 고갈이다.



바닥에 앉아 헬멧을 벗고 멍청하게 쉬고 있는데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헬멧 끈을 쪽쪽 빨았다. 소금기만 있을 끈에 뭔가 맛있는 게 있는 걸까? 한참 녀석이 하는 걸 지켜봤다. 동영상이라도 찍었어야 했나 싶었지만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았을 정도로 힘이 다 빠진 상태였다.



업힐을 오르던 중 만난 정자. 난 이참에 제대로 쉬어 보기로 하고 정자 위로 올라가 모든 걸 해체하기 시작했다. 해체라기보다는 해제 아니었을까 싶다. 무장해제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긴 했지만 바람마저 따뜻하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물도 거의 바닥나서 한두 번 쉴 때 마실 정도만 남기고 몽땅 들이켰다.

그 상태로 마루 위에 누워 삼십 분은 잔 것 같다. 기절이라고 보는 게 낫다. 아마 누군가 와서 자전거를 들고 갔어도 모를 정도였다.



도심을 지나다 보니 온통 조선소와 조선 관련 업체들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출퇴근용인 거다. 일요일이라 도로가 좀 한적한 편인 것 같지만 주중엔 대형 차량이 꽤 다닐 것 같았다. 거제도 라이딩은 무조건 주말 용인 듯했다.

장승포를 지날 땐 아예 사진이 없다. 소노캄거제 인근부터는 관광객들 차가 차가 어찌나 많은지 차 피해 다니느라 정신 놓고 달렸다.



여기 긴 업힐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끌고 갔어야 했다. 또 무리하다가 근육 경련으로 내려서 끌고 올라갔는데 경사가 만만치 않았다. 다리 상태가 멀쩡했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업힐은 아니었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 사진 한 장 남기고 다시 달렸다.



또 업힐에 올라 보니 해수욕장이 보인다. 조선소와 해수욕장이 이렇게 저렇게 공존하는 거다. 경사진 곳에 전망 좋은 펜션과 주택들이 여럿 보였다. 이런 조망권이라면 주택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30km 정도만 가면 되는 상황인데 산이 점점 많아졌다. 업힐과 다운힐이 계속 이어졌고, 경사는 8~13% 정도를 오갔던 것 같다. 다리가 풀려 10%만 넘어가면 어쩔 줄 모르는 상황도 있었다. 그럴 땐 무리하지 않고 내려서 끌고 가기로 했다. 한 번은 근육이 좀 풀린 것 같아 13% 업힐에서 무리했더니 바로 근육 경련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하지 않고 달리는 게 이번 라이딩을 마무리하는 길이다.



마지막 보급이다. 약 20km 정도 남았을까? 1년 전부터 마시기 시작한 레드불, 그냥 물보단 라이딩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거의 끝물이고, 여기서 10km 정도 남은 셈인데 정말 바닷물에 몸을 담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업힐이 없겠지 싶었지만 역시나 업힐은 꾸준히 있었다. 강한 업힐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어지간해서는 갈지자 라이딩을 하지 않는 편인데 도통 답이 없었다. 내려서 끌고 가는 것보단 나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 긴 업힐을 넘었고 그걸 넘고 나니 드디어 긴 다운힐과 평지만 남았다.



드디어 출발지에 도착했다. 차는 그대로 잘 있었고, 난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아주 징그럽게 힘든 라이딩이었다. 5년 전 처음 라이딩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기껏 140km 거리에... 원래는 150k가 목표였는데 여기저기 싹둑 잘라먹은 결과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ㅋㅋ



다음날. 밀면이 당겨서 아침 오픈 시간 맞춰 달려갔다. 당이 떨어지니 딱 맞는 음식이 머릿속에 가득 찬 거다.



다음부터는 내 몸 상태를 스스로 인정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매일 술 마시느라 곤죽이 된 몸이며, 한 달 가까이 라이딩을 하지 않아 반 초기화된 상태를 알면서도 무시한 결과였다.

어쨌거나 거제도 일주는 하긴 했다. 썩 맘에 들진 않지만...

원래의 나였다면 최대한 해안가를 더 파고들었을 거다. 남쪽 맨 끝 구간과 북쪽 맨 끝 구간을 모른 척 버리고 말았다. 다음에 제대로 한번 더 해봐야겠다. 누적 상승고도가 1,958m인 건 끌고 올라간 구간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2,300m 정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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