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쟁이의 로망, 알프스...
내가 오래전부터 쓰던 이메일 주소 역시 alps가 들어가 있다.
심지어는 비밀번호까지 산 이름과 높이를 조합해서 쓸 지경이니 말할 게 없지 싶다.
대체로 대부분의 산쟁이들은 이메일이나 휴대폰 번호를 산 이름이나 높이를 쓰곤 했다.
요트인들은 0470, 항공 쪽은 2626, 산쟁이들은 8848이나 8850 심지어는 1708까지.
이삿짐센터 2482, 의료 8275, 매매업 4989 이런 것과 비슷한 맥락인 거다.
난 서프로에게 아이거, 인터라켄에 다녀오길 바랐지만 토마스의 집에서 가기엔 너무 먼 거리라서 딱히 기대하진 않았다.
어릴 때 읽었던 <검은 고독, 흰 고독>이란 책이 기억났다.
당시엔 산악 서적 구하기가 쉽진 않았는데...
아이거 북벽 아래, 아이거 북벽을 오르던 청춘들의 묘가 있다고...
아무튼!!!
마침 서프로가 알프스 등산을 가기로 했다는 말에 오히려 내가 더 반가웠다.
산쟁이들로서는 딱히 목표로 삼을 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프스 산맥 어딜 가도 기가 막힌 스위스의 산야를 감상할 수 있을 거란 부푼 기대 같은 것이었다.
난 구글맵의 로드뷰를 통해 서프로가 있는 곳을 살폈다.
로드뷰로만 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해상도가 떨어지는 로드뷰 사진이지만 기껏 36인치 와이드 모니터로 봐도 아름다운 그곳을 서프로는 직접 눈에 담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서프로의 여행 코스 중 부럽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스위스의 알프스는 너무 강렬한 충격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산을 접고 자전거에 꽂혀 살고 있지만 다시 산을 향한 마음이 새싹처럼 새록새록 돋아나는 걸 느끼고 있었다.
참아야 한다. 이제는 사고 나면 안 되니까. ㅠㅠ
구글맵 로드뷰로 봐도 이렇게 멋있는데...
몇 시간을 걸었을까? 서프로는 알프스의 많고 많은 정상들 중 한 곳을 오르고 있다. 토마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문득 양동근 주연의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실수로 죽음에 이르게 한 일본 무인의 아들을 등에 업고 설산을 오르던 씬이 기억났다. 지금이야 푸른 초원인 알프스이고 체력이 담보인 서프로라 하지만 잘 올라가고 있는지 걱정은 됐다.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내가 서프로에게 농담 섞은 메시지를 보냈었다.
알프스 OO 서프로
서프로가 한참 등산 중일 때, 초강력 태풍이라는 힌남노는 제주도를 향하고 있었다. 타이완에 머물던 힌남노는 거친 속도로 한반도를 향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제주도를 거쳤다.
서프로가 했던 말처럼...
'힌남노 가면 서프로 온다'던 말을 점점 실감하게 된다.
이제 이틀 후면 제주도에 도착하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우리 노후는 엄마 소원이었던 스위스에서 살 거라고 생각하는 중이야.
꿈이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 역시 물이 귀할 땐 이런 식이었다.
샘 위쪽은 사람이 먹고 아래쪽은 소나 말이 먹는...
서프로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ㅎ
아침에 이미 잠든 서프로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줬다.
'알프스 OO 서프로'의 답을 준 거다.
아직 소녀 감성이 폴폴 나고 있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느꼈으니까.
알프스 소녀 서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