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신나는 일이다.
이번 기획을 하면서 나의 한계점을 만나는 상황이 잦아졌다.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가둬버린 나를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새로운 일은 항상 신이 나서 숨차 오르게 한다.
꿈속에서도 일을 하는 신박한 경험을 누구나 겪었을 거다.
그런데 최근 자료 조사를 하면서 나의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을 새삼 깨우치며 어린 시절의 오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요즘이야 염색은 패션의 기본 중 기본이 된 미용 아이템일 뿐인 아주 대수롭지 않은 게 됐지만 당시엔 TV에서조차 염색을 한 연예인을 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내 동생이 파란색으로 부분 염색을 하고 나타난 거다.
그것도 집에 아주 당당하게 들어왔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녀석의 생각을 지금도 모르긴 하지만 문 앞에서 집에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엄청 고민을 하긴 했을 거다.
그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 식구들의 표정을 가히 상상할 순 있었을까?
엄마 입장에선 내 아들이 미쳤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엄마에게도 그때의 상황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생은 패션의 프런티어급 정도 되는 존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디 가도 항상 인기가 좋았던 녀석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 식구들은 동생의 그런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고 난 흉을 봤고, 동생은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그때 염색을 지우는 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동생은 뻔뻔하게도 학교에도 잘 다녔다.
대체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난 아직까지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고문에 가까웠을 선생님들의 그 꾸지람과 모진 매질(시대적 상황으로 봐선 아마 당했을 거다)을 감당하며 그 헤어 패션을 고수했던 녀석을 말이다.
당시에 만약 고리타분한 나 같은 사람에게 염색이란 걸 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까지 염색이란 걸 해본 적도, 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당시 관습의 틀이 지금과 같았다면 내 동생은 그런 상황에 놓일 일이 없었을 거다.
지금에 와서 보니 당시 나의 생각, 판단, 행동이 얼마나 한심한지 모르겠다.
틀에 갇힌 난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내 틀을 깰 수 있다면 진일보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스노보드가 스키장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던 것도 비슷한 결인 거다.
그나마 나는 EDM에 리듬을 타는 편이긴 하다. ^^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지 시대가, 세상이 변한 게 아닌 것이다.
세상의 문명과 이기가 발전하고 변화하는데 조선시대처럼 갓 쓰고 에헴 거리며 뒷짐 지고 다닐 것인가?
조총 쏘고 대포 쏘는 시대에 활 들고 창 들고 전쟁에 나갈 것인가?
세상에 따르지 못하는 건 오롯이 나의 문제인 거다.
세상을 탓할 게 없다.
항상 반성하며, 나를 누르고 개선시키려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새로운 벽을 자주 만난다.
그것도 매일, 매시, 매 순간 만나고 있다.
기획의 씨앗이 됐던 생각들은 파편이 되고 잘게 부서졌다가 때론 뭉치기도 하고 가루가 되기도 한다.
이런 필수 불가결한 과정들을 얼마나 길고 깊게 이어가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페스티벌이 될 거다.
안다! 어렵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