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돈을 만져보면 생각의 틀이 바뀌나?

by 루파고

1,000원의 3배는 3,000원이다.

1억의 3배는 3억이다.

1,000억의 3배는 3,000억이다.

'0'이라는 숫자가 '억'이라는 단위보다 크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드라마 <재벌집막내아들>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걸 봤다.

대개의 사람들은 1,000원의 3배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0'이란 숫자가 하나씩 불어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단위가 커지면서부터 사람들의 간이 부풀기 시작하는 걸까?


유명한 부자들의 어록에 따르면 그들은 작은 돈을 쓰는 것에도 끔찍하게 집착한다.

숫자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내 통장에서 들고 나는 것에 대한 모든 이벤트의 값어치를 균등하게 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푼돈을 푼돈이라 하찮게 보는 시각을 고치면 돈을 보는 자세가 달라질까?


언젠가 길거리에 떨어진 50원짜리 동전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바쁜 길을 가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쳤던 건 50원이라는 가치가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등을 굽히고, 지저분한 동전을 집어, 세척을 하거나 하는 행위를 해야만 하는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거다.

이것 역시 내겐 돈을 돈으로 보지 못하는, 50원을 화폐로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간만 커진 탓인 게다.





이십 대 초반 설악산에서 100원에 환장했던 추억이 있다.

설악산 비선대에선 초코파이를 한 개씩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게 어쩜 그리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쉽게도 주머니엔 100원짜리 동전 하나만 달랑 있었다.

100원만 더 있으면 초코파이를 사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100원짜리 동전이 그렇게도 절실히 필요했다.

난 며칠이고 설악산 죽음의계곡과 설악골을 오르내렸고 며칠이 지나 비선대 근처를 지나다가 등산로 바닥에서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흙에 반쯤 묻힌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때 내 눈에 100원짜리 동전이 얼마나 크게 보였는지 모른다.

난 누가 먼지 주워갈까 싶어 냉큼 집어 들었고 묻어있던 흙을 옷에 비벼 닦아 주머니에 넣었다.

참고로 난 기름이 손에 묻는 게 싫어서 치킨도 잘 안 먹던 놈이었다.

아무튼 난 주머니 속 동전 두 개가 까끌거리며 비벼지는 그 느낌에 환희를 느꼈다.

드디어 비선대에서 초코파이를 사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상상만으로도 꿈결 같았다.

난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선배와 동기를 먼저 보낸 후 비선대 화장실로 향했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농담처럼 하는 말이었다지만 난 군대 가기 전이었는데 화장실에서 몰래 먹었던 그날의 초코파이는 일생의 그 어떤 것보다 추억이 강렬한 음식이 됐다.

100원의 가치를 그땐 그렇게 무겁게 느꼈음에도 지금은 왜 그러하지 못하는 걸까?

새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돈은 숫자도 중요하지만 가치와 용처가 더 중요하다는 걸 나잇살 몇 개 더 먹으며 새로이 새로이 느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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