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은 시준과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물론이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사연들을 설명했다. 사실 춘자의 취미생활이라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시준의 도움이 컸다. IT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시준에게 유튜브 방송 하나 세팅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지만, 컴퓨터라고는 워드프로세서와 파워포인트 그리고 좀 더 보태서 엑셀도 기껏 연산 정도로만 쓰는 민경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인터넷 검색 능력만 보면 수준급이긴 했다. 유튜버 전에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는 했지만 누구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인생의 진로 수정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하던 때였다. 그러다 유튜브 1인 방송이 인기를 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자신의 끼를 맘껏 발산해 보겠다며 무모한 자신감으로 나섰지만 시작부터 난감했다. 유튜버들의 콘텐츠를 검색해서 찾아보는 건 그야말로 손가락만 까딱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지만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완전히 다른 분야였던 것이다. 그래서 동창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찾아낸 사람이 바로 시준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말이라도 섞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민경을 바라만 보던 시준은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정성을 다 했다. 민경의 유튜브 방송국 세팅은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방송 첫날 민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색함을 느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며칠을 두고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나중에는 카메라 뒤에 거울을 설치하는 묘수도 생각해 냈다. 민경의 첫 방송은 오래된 고전 추리소설을 재해석하는 내용이었다. 오래 기획한 프로젝트였지만 검증 과정도 없었고 생각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 너무 많았다. 완벽한 실패였다. 부모님은 물론 친구, 먼 친척, 연락도 끊었던 사람들에게 마저 홍보 메시지를 보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던 친구들은 화가 날 정도로 혹평을 가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유튜브 방송 중단을 제안했다. 민경은 오피스텔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밤낮을 울었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오피스텔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전화가 와도 끊어버렸다. 오로지 문자메시지나 SNS로만 대응했다.
세상의 예쁜 건 죄다 좋아하고, 예쁜 것만 찾아대고, 예쁜 것만 사고, 예쁜 것만 먹고 마시던 민경은 이미지를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장 먼저 이름부터 바꾸기로 결심했다. 여차하면 본명까지 바꿀 기세였지만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지도 바꿀 결심을 했다. 일주일 동안 세상의 가장 촌스럽다는 이름을 죄다 열거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추려갔다. 액자 유리판 위에 노란 촌스러운 이름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인 후 생각의 필터링을 거쳐 하나씩 떼어냈다. 화장실 가다가도 떼고, 밥 먹다가도 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다가도 떼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도 떼어냈다. 수백 장에 달하던 촌스러운 이름들이 모두 떼어지고 남은 것이 바로 <춘자>였다. 춘자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두 번째 방송에서는 초기에 기획했던 틀을 조금 변형했다. 추리소설 한 편을 두고 빈틈을 찾아내는 콘텐츠다. 나름 소설의 흠잡기였다. 기획 단계에서는 나름 신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나마 구독 버튼을 눌러주었던 지인들마저 방송을 시청하지 않았다. 두 번째 좌절이었다. 하지만 민경은 여기서 쓰러지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민경이 아니었다. 완벽한 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촌스러움을 콘셉트로 하면서도 본연의 예쁜 모습을 어필하며 가벼운 듯한 외모와는 상반된 스마트하고 허를 찌르는 재치를 갖춘 캐릭터를 창조해 내는 것이 목표였다. 이때부터 민경은 춘자였으며 춘자가 곧 민경이었다. 인텔리 한 스타일의 세미 정장이나 공주도 아닌 것이 공주인 양 예쁘게 차려입던 드레스 코드를 춘자답게, 춘자스럽게 완성시켰다. 막장 추리 콘텐츠답게 코믹하면서도 촌스러운 드레스 코드를 입힌 탐정의 콘셉트부터 이름처럼 촌스러운 산골 처녀의 드레스 코드까지 다양한 패션을 구상했다. 춘자가 된 민경은 매일 밤 생각했던 의상의 찾기 위해 동대문 밤거리를 훑고 다녔다.
일주일 넘게 그렇게 지내다 보니 체중은 2킬로그램이나 줄어 있었다. 워낙 마른 몸이라 조금만 체중이 줄어도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이는 민경은 엄마가 해준 밥이 그리워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에너지 보충에는 엄마 밥만 한 것이 없다는 건 잦은 여행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이자 민경의 엄마는 말이 많아졌다. 갱년기라더니 순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수다를 떨던 엄마는 즐겨보는 드라마 시작할 시간이 됐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단 일 초도 놓칠 수 없다는 골수 애청자의 모습이었다. 민경은 구독자들을 그렇게 만들어야겠다며 엄마의 모습을 관찰했다. 특히 어떤 곳에서 가장 집중하는지 알아내기로 작정했다. 민경은 엄마에게서 몇 가지 눈에 띄는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되는 것, 그리고 절대 아닐 것 같은 것의 반전이었다. 민경은 최애 하는 추리소설에 그것들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다 민경에게 깨우침을 준 건 드라마가 끝난 후 엄마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 마디 때문이었다.
"미친년, 저런 썩을 년. 저 여자도 문제야. 나 같으면 저런 거 절대로 그냥 안 둘 텐데. 그냥 머리끄덩이를 잡아끌어서라도 남편 앞에 무릎을 꿇게 해야지."
엄마의 표현에 아빠는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인터넷으로 따지자면 엄마는 표독스럽지만 아주 솔직하고 직접적인 강렬한 댓글을 남긴 것이다. 아빠는 그 댓글을 지켜본 또 제삼자였다. 민경은 부모님 집을 빠져나와 곧장 오피스텔로 향했다.
*
"그래서요. 제가 궁금한 건 민경 씨하고 김시준 대표가 무슨 관계인지가 제일 궁금해요."
호현이 새우눈을 뜨고 물었다.
"한동안 시준이를 잘 부려먹었어요. 사실 알면서도 그걸 활용한 건 분명히 제가 잘못 한 건 맞아요. 인정해요. 시준이는 제가 마음을 열어줄 거라고 믿었지만 저는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저런 찌질이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찌질이요?"
"네. 찌질하니까요. 저 자식이 돈 좀 벌고 이름 좀 날리니까 잘난 척하며 사는데 속을 본 사람들은 어떤 놈이지 잘 알아요. 그런 놈이 그런 짓을 했으니 더 형편없어 보이는 거니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러는 건지 속 시원하게 설명 좀 해주면 안 될까요?"
호현은 모른 척 민경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부탁했다. 민경의 작은 손은 뜨거운 심장에서 나온 열기로 매우 따스했다.
"그건 오늘 회식 때 하는 거 봐서 하죠."
민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송국 출구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호현은 민경이 놓고 간 태블릿을 챙겨 뒤따랐다. '설마 나도 꼬봉인 건가?' 호현은 묘한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