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고민

by 루파고

술자리를 파한 후 민경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미꾸라지처럼 자리를 빠져나갔다. 민경이 택시를 타고 사라지자 호현은 뒤꿈치로 보도블록을 툭툭 차며 걸었다. 민경은 시준과 정면 대결을 원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법적으로도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다루기 불편했다. 편법이란 건 언젠가 불법이 될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방송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여지가 많다. 한 시간 넘게 거리를 걷던 호현은 이번 회차에서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에 관련된 내용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한 호현은 어색한 지형지물 때문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기가 선 곳이 어딘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민경은 이번에도 역시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와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그 역시 방송에서나 만났던 춘자를 직접 만나자 복권을 맞은 듯 싱글벙글 환한 표정이었다.

"저도 언젠가는 춘자 씨를 태워다 드릴 날이 올 줄 알았어요."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춘자 씨 방송 즐겨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기사식당 가면 다들 춘자 씨 방송 얘기만 한다니까요. 언제 시간 되면 아무 기사식당 한번 들러 보세요. 모르긴 해도 아주 난리가 날 겁니다. 하긴 뭐 거기 아니라도 난리겠지만."

택시기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지 민경이 입을 열 틈을 주려 하지 않았다.

"아저씨, 이번 주제는 재미없었죠?"

갑자기 끼어드는 승용차 때문에 놀란 기사가 사과를 하는 틈을 타서 민경이 입을 열었다.

"재미요? 우리야 뭐~ 항상 재밌게 보긴 하는데, 이번 건 사실 좀 지루하긴 하더라고요. 돈비 같은 건 좀 맞아봐도 좋겠다는 이야기들은 하더라고요. 일종의 돈벼락 같은 거잖아요. 얼마나 부럽던지. 그런 행운이라도 생기면 며칠 운행 쉬고 놀러라도 다녀오는 건데 말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워낙 바빠서 어디 놀러 가려면 정말 큰 맘을 먹어야 하거든요. 어이쿠."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요철을 보지 못해 크게 출렁이며 또 이야기가 끊겼다.

"그냥 다른 주제로 넘어갈까 봐요. 생각했던 반응도 없고, 원래 이런 식으로 가려던 게 아니었는데. 이번 건 엉망진창이 됐어요."

"그래요.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돈 뿌린 사람들은 누구래요? 돈이 그렇게 많아서 주체를 못 할 거면 좋은 데 쓰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아저씨, 방금 좋은 데 쓰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대체 좋은 데가 어떤 곳일까요?"

"말해 뭐 합니까? 고아원, 양로원, 불우이웃 돕기, 독거노인, 구세군... 뭐 그런데 많잖아요. 나였으면 콱."

택시기사는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

"콱 다음은 뭔데요?"

민경이 물었다.

"콱. 그냥. 솔직히 말해도 돼요?"

택시기사의 질문에 민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솔직히 말입니다. 실컷 써보고 싶긴 하더라고요. 그 돈이 제 돈이었다면 말이에요. 사실 서민들이야 정말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사느라 여유 같은 건 사치나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도 춘자 씨가 부잣집 딸내미가 아니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우리나 춘자 씨나 다 같은 사람인데 춘자 씨는 그런 생각 안 해 봤어요? 사실 많이 부럽더라고요. 이놈의 택시 짓도 그만두고 그저 시골에 집 한 채 짓고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사는 거. 그 정도면 만족할 것 같거든요. 흥청망청 쓰는 건 관심도 없어요."

택시기사의 넋두리의 끝엔 어느새 집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


"어떻게든 만나봐야겠네."

씻지도 않고 침대에 벌렁 누운 민경은 멍하니 천장을 보다 말고 혼잣말을 했다. 호현은 핑계를 찾아서 대충 얼버무리고 빨리 다른 주제로 옮겨 타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민경은 벌써 종결짓기는 싫었다. 그들은 왜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일까? 그리고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그렇게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바닥이 날 텐데... 그럼, 돈을 뿌리는 건 끝나는 것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민경은 자신에게도 그런 돈이 생긴다면 어땠을지 상상했다.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민경은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어들이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 결코 합법적인 수익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프로그램을 접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갔다. 이쯤에서 접자는 호현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경은 구린 냄새가 폴폴 나는 걸 알면서도 멈추기는 싫었다. 시준에게 귓동냥해서 들었던 것만 해도 비트코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불법적인 용도로 다분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시준은 돈세탁용으로 비트코인만 한 것도 없다고 했다. 세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자고 일어나면 오르락내리락하는 비트코인의 수익성 하나만 보고 투자한 사람들이 한둘도 아니다. 시준 역시 어떤 식으로 돈을 벌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손에서 놓기 싫었다. 민경은 잡히지 않는 실마리를 찾으려 허우적거리는 스스로를 누르기 시작했다. 지금 상태로는 호현의 주장을 누를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호현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민을 좀 해 봤는데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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