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모험 제10화 - 진택이의 기억

by 루파고

우리 집 거실이다. 분위기가 처참하다. 텔레비전도 바닥에 쓰러져 있고 식탁도 엎어져 있다. 거실은 물론이고 주방까지 난장판이다.

“그래! 우리 이혼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방에서다.

철썩! 이건 분명히 자주 들어 본 소리다. 유치원에 다녀온 나는 집 앞에 서 있어야 할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혼자 집으로 들아왔다. 집 안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좀 심하게 싸운 듯했다. 엄마 아빠가 서로 이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나도 이제는 이혼이라는 게 뭔지 알고 있다. 벌써 거의 1년 가까이 이런 모습을 보아왔다. 처음엔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화가 치민 아빠의 모습도, 한쪽 뺨에 손자국이 새겨진 엄마의 모습도 난장판일 집안의 모습도 내게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그냥 ‘또 싸우시는구나’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나 스스로가 신기하다. 그렇게 무섭던 모습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역시나 엄마는 아빠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분에 차서 안방에서 뛰어나올 차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의 얼굴이 너무 멀쩡하다. 의외다. 그런데 엄마의 손에는 몇 달 전 가족여행 때 쓰려고 샀던 분홍색 여행가방의 손잡이가 쥐어져 있다. 여태 아빠랑 싸움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엄마가 짐을 싸서 나온 건 처음이다. 엄마 뒤로 아빠가 뭔가를 손에 쥐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이것도 가져가!”

그러다 아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서 있던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빠는 순간 멈칫하더니 잠시, 그것도 아주 잠시 굳어있었다. 그리곤 아빠는 손에 들린 상자를 엄마에게 던지듯 건네주었다. 차마 내 앞에서 던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의 보석상자였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애써 일부러 피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던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여행가방을 끌고 내게 오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엄마가 꼭 데리러 올게. 미안해. 꼭 올게.”

엄마는 내 두 손을 꼭 잡았고 다시 내 머리를 엄마의 품에 안아주었다. 엄마의 가슴은 따스하고 푹신했다. 영문도 모르고 그저 별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야 이 상황이 심각한 상황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폭포수 같은 양의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이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눈 앞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나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엄마! 가지 마! 어디 갈려고 그래? 가면 안돼!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그러면 되잖아.”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온 말이다. 이제 나는 엄마가 정말로 집을 나가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는 내 머리를 품에서 떼어내고 순식간에 현관문을 뛰쳐나가 버렸다. 내 손에 잡았던 엄마의 가방은 무참히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 쳐 버렸다. 바닥에 부딪힌 어깨가 아려왔다. 정말 아팠다. 모서리에 어깨를 찍힌 것 같다. 피가 많이 나는 것 같다. 아빠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는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어깨를 보더니 옷을 북 찢어버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어깨를 보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볼 수가 없었다. 왼팔로 눈을 닦고 오른쪽 어깨를 보니 피가 제법 흥건하다. 너무 아프다. 이제는 엄마가 집을 나가서 슬픈 마음에 나오는 눈물인지 어깨가 아프고 피가 난 게 무서워서 나오는 눈물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불안하게도 그렇다. 설마~라고 생각은 하지만 꼭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의 말은 강한 부정으로 다가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엄마는 두 번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유치원에 다녀왔다. 우리 집 텔레비전이 바뀌었다. 정말 크다.

“진택아. 아빠가 새로 사 왔어. 정말 좋지?”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방송을 틀어줬다. 엄마는 내가 아직 어린 애인 줄 안다. 또 뽀로로를 틀었다. 난 이제 공룡 나오는 게 더 좋은데. 역시 재미가 없다.

“뭐야? 당신이. 그러니까 그 돈을 어디다 썼다는 거야? 그게 당신 돈이야? 왜 그걸 당신 맘대로 써?”

나는 잠결에 아빠의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를 들었다. 꿈이 아니다. 재미없는 방송을 보다가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럼! 그게 내 돈이 아니고 뭐예요? 원래 내가 산 땅이고 그것도 우리 엄마가 준 돈으로 산 땅인데 왜 이제야 그걸로 문제를 삼는 거예요?”

엄마의 목소리다. 엄마도 화가 잔뜩 나 있다. 나는 그냥 자는 척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게 어떻게 당신 돈이야? 당신 명의로만 해 둔 거 아니야? 땅 판 돈 다 내놔!”

“다 썼어요.”

“무슨 소리야?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써. 거짓말하지 말고 내놔!”

“엄마 병원비 드렸어요. 은규 결혼비용 대 줬고요.”

“내 재산을 왜 당신 맘대로 누굴 줘? 그거 절도야! 당신이 도둑이야? 왜! 내 돈을 마음대로 줘? 미친 거 아니야?”

“원래 엄마가 나한테 준 돈으로 산 땅이고 다시 팔아서 돌려준 게 왜? 그게 왜 잘못이에요?”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엄마의 고성은 귀가 아플 정도로 따갑다.

“이게~ 미쳤구나. 미쳤어. 당신이 나한테 처가에 보태자고 말을 했으면 내가 반대했겠어?”

“퍽이나~ 그랬겠네요. 사업한다고 이 땅마저 팔아서 다 써버릴 것 같아서 내가 미리 정리한 건데 내가 당신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

“참나. 미치겠네. 내가 사업하는 데 좀 돌려쓰고 드려도 되는 거잖아. 그러면 내가 반대라도 했을 것 같아?”

“만약, 그래서 그것마저 날려먹으면 당신이 어디서 돈을 만들어서 줬겠어요? 지금도 있는 거 없는 거 다 팔아서. 작년에는 읍내에서 이상한 여자한테 돈 다 뜯기고, 이것도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아요? 아무튼 이제 돈 없어요. 다 줘 버렸으니까!”

엄마의 말이 끝나고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폭력까지 쓰는 거예요?”

“당신이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내가 분명히 그건 헛소문에 오해라고 했지? 당신은 남편이 밖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모르니까 아주 막말을 하는구나. 아주 미쳤어. 미쳤어.”


이후로도 엄마와 아빠는 같은 일로 자주 싸웠다. 그러나 엄마는 끝내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의 것일지도 모르는 돈을 내놓으라고 했고 엄마는 이미 다 줘 버리고 없다고 했다. 나는 아빠의 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엄마는 왜 아빠에게 허락도 없이 돈을 외할머니와 외삼촌에게 다 줘버린 걸까? 아빠에게도 조금 나눠줬다면 아빠도 좋아했을 텐데. 그래도 아빠는 엄마를 때리면 안 된다. 선생님은 친구들과 다투더라도 절대로 폭력을 써서 친구를 때리거나 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엄마 아빠는 정말 그걸 모르는 걸까?


엄마가 집을 나간 지 두 밤이 지났다. 엄마는 전화도 한 통 없다. 휴대폰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빠가 아침마다 포스트에 우유를 부어서 주신다. 맛있다. 하지만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이 더 좋다. 매일 밥 먹기 싫어서 짜증내고 그랬는데 지금은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다. 아빠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아빠는 아침밥을 드시지 않고 내가 포스트를 떠먹는 모습을 보고 있다.

“진택아. 내일부터는 아줌마 한 분이 와서 밥 차려줄 테니까 오늘까지만 포스트 먹자.”

나는 엄마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빠는 벌써 포기한 것 같다.

“아빠! 엄마는 언제 와요?”

아빠는 말이 없다. 아빠는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택아. 이제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이제 아빠랑 둘이서만 살아야 해!”

“싫어요. 엄마가 꼭 다시 돌아온다고 했어요. 약속했는데……”

나는 아빠의 옆모습에서 아빠가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

나는 사실 정말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무섭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꼭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엄마는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꼭 돌아오실 거라고 믿기로 했다. 나 스스로와 약속했다. 전화는 네 번 왔었다. 잘 있냐? 보고 싶다! 엄마가 꼭 데리러 올 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말뿐이었다.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다니면서부터 아빠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다. 멀쩡하게 들어오는 날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날조차도 아빠는 집에서 술을 마셨다. 언젠가부터 나는 아빠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거야. 아니! 내가 미운 걸 거야. 엄마가 와서 나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오지 않아서 화가 났을 거야.


오늘, 드디어 아빠는 오랜만에 일찍 들어왔다. 아니! 그 전에도 일찍 들어오셨지만 나는 아빠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잠들어 버렸을 테니 그건 장담할 수 없다. 아빠에게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 아마도 날이 밝을 때부터 술을 드신 것 같다. 가끔 그런 적이 있어서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주방에서 또 술상을 만들고 계시는 아빠에게 갔다. 할 말이 있지만 평소에 아빠와 마주칠 일이 너무 없으니 오늘이라도 말씀드리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아빠~”

나는 조심스럽게 아빠를 불렀다. 아빠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술에 취해서 그러신 것 같다.

“왜? 진택아~”

아빠의 목소리는 왠지 편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용기를 냈다.

“아빠!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 다시 집에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아빠가 엄마한테 돈 달라고 안 하면 엄마가 집에 다시 돌아올 거예요. 엄마가 돈 없다잖아요.”

나는 나도 모르게 울기 시작했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터져버린 것 같다. 아빠는 갑자기 크게 화를 냈다.

“너 까짓게 뭘 알아? 엄마? 엄마 같은 건 없어. 엄마는 이제 집에 못 와. 너한테 이제 엄마 같은 건 없어. 알아? 빨리 들어가서 자!”

아빠는 내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나는 귀를 막고 소리쳤다.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엄마가 꼭 온다고 했단 말이야.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보고 싶단 말이야. 엄마 못 오게 하면 아빠도 미워할 거야. 나도 엄마 따라갈 거야.”

나는 울먹이면서도 끝까지 할 말은 다 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난 아빠가 엄마와 화해하고 엄마가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부탁을 하고 싶었다. 아빠가 밉거나 엄마를 따라서 나가겠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물론, 요즘엔 아빠가 너무 밉다. 나는 아빠가 맛있는 거 안 사주셔도 좋고 읍내 장터나 공원이나 축제 같은데 데리고 놀러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아빠하고 엄마가 예전 같이만 돌아와 주면 더 착한 진택이가 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내 울음을 조절할 수가 없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내 울음소리뿐이다. 아빠는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울었다. 이제는 오기가 나서 더 울게 되는 것 같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울지 마!”

“들어가!’

“저리 안가?”

“시끄러워! 이 자식아!”

아빠의 목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아빠의 목소리는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아빠가 무서워서 울음이 났다. 아빠가 내 두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시! 끄! 러! 웟!”

아빠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정말 무섭다. 엄마가 더 보고 싶다.

“엄마~ 보고 싶어~”

나도 모르게 엄마를 찾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와서 아빠에게서 나를 구해줄 것 같다. 순간 나는 머릿속에 하얗게 변하는 것을 알았다. 왼쪽 뺨이 불에 덴 듯 뜨겁게 아팠다. 아빠의 커다란 손이 나의 뺨을 세게 때린 것이다. 나는 아빠를 보고는 눈을 다시 질끈 감아버렸다. 무서웠다. 아빠의 그 큰 손이 다시 내 뺨을 때릴 것만 같았다. 이를 악물고 아빠의 손을 기다렸다. 아빠의 손은 다시 나를 때리지 않았다. 잠시지만 멈추었던 울음이 이제는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이기 시작했다. 졸리다. 무서운데 너무 졸리다.


잠시 눈을 떴을 땐 아빠가 내 방에 나를 눕히고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내게 동화를 읽어주실 때 앉으시던 의자다.

“미안하다. 진택아. 아빠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야! 아빠도 엄마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빠는 용기가 없어.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가 때리고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 아빠도 엄마가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그런데 나는 아빠가 이런 말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아빠는 나를 때렸다. 내가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아빠의 폭력에 나는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날은 엄청 맞은 것 같다. 나도 아빠에게 정말 많이 대들었다. 나는 아빠가 싫다. 무섭다. 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 손이 떨린다. 엄마가 보고 싶다. 아마도 아빠가 엄마를 돌아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찾아왔다. 그런데 엄마의 손에는 집을 나갈 때 손에 끌려나갔던 여행가방이 없다. 불안하다. 학교를 다녀온 사이에 엄마는 집에서 아빠를 만나려고 했던 것 같다. 엄마와 나는 다시 현관문 앞에서 만났다. 그것이 더 불안하다. 그리고 안방에서는 아빠가 뭔가를 들고 나왔다. 이미 엄마와는 약속이 된 것이라는 증거다. 아빠의 손에 들린 것…… 이번에는 엄마의 보석함이 아니다. 도장이다. 이번에는 정말 이혼을 하려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봤다. 이혼하려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말이 바로 이런 느낌인가 보다. 어떻게든 말려야 한다. 엄마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엄마의 눈에는 분명히 그날처럼 눈물이 나고 있을 거다. 나는 제발 엄마가 미안하다고, 아니 미안했다고 엄마가 다시 집에 들어올 테니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고 말하기를 빌었다. 나는 현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가 나가는 걸 막을 생각이다.

“이제 우리 이혼이군.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아빠는 엄마를 설득하려고 하는 것 같다.

“아니요. 절대 그 돈은 돌려줄 수 없어요. 진택이를 제게 준다면 생각해 볼게요.”

엄마는 나를 데려가고 싶은 것 같다.

“난 그…… 그게 아니고……”

아빠는 왜 끝까지 말을 하지 못할까?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엄마를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가지고 아빠와 거래를 하려고 한다. 난 아빠가 미웠지만 이제는 엄마가 더 밉다. 연락도 없이 살다가 몇 년 만에 찾아와서 이혼을 목적으로 찾아온 엄마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미. 양육권은 포기한 거잖아. 이제 와서 말 바꾸지 말라고. 이미……”

아빠는 뭔가 더 하려고 했던 말을 얼버무렸다. 그 이유가 뭘까?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내게 눈을 마주쳤다. 엄마는 내게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진택아. 엄마가 미안해. 우리 진택이를 데리러 왔는데 아빠는 허락을 하지 않네. 그리고 진택이 너도 엄마보다는 아빠랑 사는 게 더 좋을 거야. 대신 엄마가 가끔 진택이랑 놀 수 있을 거야. 그건 아빠가 허락했어.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연락해. 아빠한테 엄마 전화번호를 남겼으니까.”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너무 꼭 안아서 조금 아프지만 잠시라도 행복했다. 엄마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엄마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엄마는 나보다 더 슬픈 것 같다.

“미안해!”

엄마는 말했지만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미웠지만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다. 엄마의 진심은 뭘까? 엄마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어찌 된 일인지 엄마가 다녀간 이후 아빠는 술을 끊었다. 당연히 나는 아빠에게 매 맞는 일은 없었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나를 만나러 온다. 나는 그저 그걸로 만족한다. 엄마가 아예 만나주지 않던 3년 동안에 비하면 지금은 더 행복하다.


진택이의 손에 들린 기계에서 처음 보았던 파란색의 빛이 강하게 반짝이더니 모두와 연결되어 있던 빛의 고리가 풀어졌다. 진택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택이의 기억 여행은 이제 끝이 났다. 진택이는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은 진택이의 기억을 함께 지켜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택이의 눈물은 의진이와 성진이까지 눈물 흘리게 했다. 우박사의 표정 역시 상기되어 있었다. 다들 소강상태의 분위기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자~ 여행은 어땠나? 즐거운 기억인지 어려운, 힘든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진택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까?”

진택이는 이제 거의 안정된 것 같았다. 가끔 훌쩍이는 정도다.

“저 이제 준비됐어요. 박사님!”

진택이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너희들.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아니? 느낌이 어때? 얼마나 걸렸을 것 같아?”

우박사가 독수리들에게 물었다.

“음~ 한 두세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의진이가 먼저 대답했다.

“글쎄~ 그럴까?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걸린 것 같니?”

우박사는 독수리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동구는 5시간. 진택이는 1시간. 성진이와 석천이는 4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 이 기억 여행을 시작한 게 8시 25분이었고 지금은 8시 37분이다. 너희들의 여행을 마친 시간은 8시 29분이었어. 여행을 준비하던 시간을 빼면 사실 너희들이 실제 기억 여행을 한 건 기껏해야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거야.”

우박사는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독수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자~ 이제 우리 번개박사님께 인사드리고 가자. 너희들도 내일 개학해야 하니까 일찍 들어가고 내일 4시까지 내 집으로 오려무나. 우리 오늘의 기억 여행을 내일 토론해보자. 나는 여기서 일 좀 봐야 하니까 오늘은 너희들끼리 가야겠구나.”독수리들은 번개박사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지하계단을 통해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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