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모험 제11화 - 왕따들의 반란

by 루파고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매미 소리가 귀를 때리던 학교 운동장이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음으로 꽉 채워져 버렸다. 여름방학 내내 함께 보냈던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한동안 떨어져 있다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이 오죽할까 싶게 아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중에 이목을 끄는 아이들이 있다. 동구, 석천, 의진, 진택이와 막내 성진이다. 학교 안의 누구도 이들이 우주의 평화를 지키는 독수리 오남매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설사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할 지라도 초록바위행성 사람들과 약속한 것처럼 독수리 오남매가 외계인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는 없다.

“어~ 저기 우리 학교 최고의 왕따들이 이제는 뭉쳐서 다니는데?”

“뭐야~ 동구는?”

“동구가 왕따들 데리고 왕따들한테서 대장 하나보다.!”

“동구도 왕따병 전염된 거 아니야?”

“왕따 가족이다. 크크크~”

독수리 오남매를 목격한 아이들은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그렇지만 용감한 독수리 오남매는 그런 아이들의 험한 장난과 놀림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만성이 된 것이기도 했지만 독수리들은 이미 아이들보다 자신감 넘치고 스스로가 왕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잔뜩 주눅이 들어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다니던 진택, 석천, 의진이는 이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걸었다. 너무도 당당한 독수리들의 모습에 아이들은 의아해했다. 자기들이 놀려대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방학 잘 보냈어?”라고 묻는 독수리들의 인사에 대꾸를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방학기간 중에 경수네 마을에 있는 귀신 우물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 귀신 우물에서 귀신이 나올까 무서워서 해가 지면 그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수리들의 용기는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특히 경수는 동구와 아이들에게 제압을 당하고 망신까지 당한 부끄러운 기억 때문에 앞에 나서지도 못했다.


개학식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모인 독수리들은 선생님에게 불려 간 동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우박사의 집에서 다음에 벌어질 신나는 모험에 대해 신이 나 있었다. 물론 밖에서는 그 이야기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한 것 때문에 오늘 반에서 있었던 일상적인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막내 성진이는 입이 간질거려서 힘들었지만 끝까지 참았다며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야! 왕따들! 뭐하냐? 어쭈 지금은 왕따 대장님이 안 보이네?”

독수리들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커 보이는 육상부 선배들이 독수리들 앞에 늘어섰다.

“우리는 왕따 아니에요. 동구는 이제 올 거구요.”

의진이가 쏘아붙이며 말했다. 그리고 육상부 선배들 뒤로 건너 마을에 사는 경수가 나타났다. 의진이는 경수가 육상부 선배들을 꾀어내어 온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방학 내내 각종 모험으로 단련된 독수리들의 담력은 겨우 그 정도의 위협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너희들이 왕따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없어. 그래도 우리가 너희를 왕따 놓으면 너희는 그냥 왕따인 거야. 알아? 저기 봐! 말도 똑바로 못 하는 저 어어어~ 하는 쟤 이름이 뭐더라? 그래그래~ 이름이 어버버지? 큭큭~”

육상부 선배들과 경수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웃었다기보다는 비웃었다는 표현이 맞는다.

“선배들! 지금 뭐예요? 이게 지금 선배들이 할 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나요? 부끄러운 줄 아시죠.”

석천이가 소리쳤다.

“뭐야? 이 자식 봐라? 이게~ 너 혼 좀 나볼래?”

“선배라면 선배답게 하시죠. 힘으로 윽박지르지 말고 정식으로 대결하는 건 어때요? 육상 하는 선배들이시니까 육상으로 대결해요. 어때요? 나랑 1킬로미터 뛰기 해 볼래요?”

석천이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선배들에게 대들고 있었다.

“어쭈? 얘 좀 봐라. 어이없네. 그래? 그럼 한 판 붙어 볼까? 그럼, 우리 내기해야지. 이렇게 하자. 네가 이기면 우리는 이제 왕따라고 안 하고 우리가 이기면 너희는 졸업해도 왕따야. 어차피 왕따겠지만. 병신들~”

육상부 선배들은 지들끼리 킬킬대며 웃었다. 의진이는 석천이 옆구리를 푹푹 찌르며 말했다.

“석천아. 어쩌려고 그래. 저 오빠 정말 잘 뛰어~”

의진이는 석천이가 매우 걱정스러웠다. 왕따를 떠나 매를 맞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사실은 서울에 살 때 육상선수였어. 아마 내가 저 선배들보다 빠를 거야.”

석천이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도. 너 아파서 운동 못하잖아.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의진이는 석천이의 병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 난 내가 쓰러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상관없어. 내가 꼭 이겨서 우리를 왕따라고 부르고 왕따 취급하는 걸 꼭 깨고 말 거야. 나 믿어도 돼. 내가 이래 봬도 쓰러지는 병만 없었으면 대표선수도 했을 거야. 대신 우리 아빠에게는 비밀이야. 우리 독수리 오남매를 위해서 이 한 몸쯤이야 희생할 수 있어.”

석천이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할까?”

육상부 선배가 말했다.

“지금 당장 해요. 나는 괜찮아요.”

“그럼. 우리 중에 제일 못 뛰는 사람이 상대해주지.”

“아~ 됐고요. 제일 잘 뛰는 선배가 나와야 할 거예요. 망신당하지 말고요.”

“뭐야? 간질병 걸린 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하여튼 지기만 해 봐라. 아주 박살을 내줄 테니까.”

육상부 선배는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쥐어 석천이 눈 앞에 흔들어댔다. 그러나 독수리들 누구도 선배의 그런 협박에도 불구하고 겁을 내지 않았다. 귀신 동굴에 비하면 이 정도는 겁날 것도 아니었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 시합을 구경하는 아이들이 벌써 백 명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석천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육상부 선배와 자신감에 넘쳐 보이는 석천이는 나란히 출발선에 자리 잡았다.

선배는 석천이에게 주먹을 들이대며 씩 웃었다. 그러자 석천이 역시 선배에게 어떤 느낌일지 모를 야릇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셋. 둘. 하나. 출발!”

신호와 함께 육상부 선배가 먼저 출발했다.

우와~ 두 사람이 출발선에서 튀어 나가는 동시에 아이들의 함성이 발사되었다. 운동장의 아이들은 육상부 선배와 2년이나 차이가 나는 석천이가 비슷한 속도로 뛰어나가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왕따 석천이가 육상부 선배와 경주를 하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라 불 보듯 뻔한 결과를 예상했지만, 그 예상과 반전된 현실에 모두들 그들의 경기에 집중했다. 한 바퀴째 돌아나간 둘은 거의 비슷한 속도에다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반 바퀴를 더 돌았다. 이제 한 바퀴만 더 돌아가면 결과는 나올 것이다. 육상부 선배가 점점 속도를 내는지 석천이를 조금 앞지르기 시작했다. 3미터 정도 차이가 났다. 이제 남은 거리는 마지막 반 바퀴. 200미터 정도 남은 것이다. 운동장의 모퉁이 코너를 뛰어나오면 나머지 100미터 직선 구간만 남았다. 직선 구간 초입부터 석천이는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직 힘이 남은 것 같았다. 육상부 선배는 석천이의 발소리를 눈치챘는지 뛰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거리는 1미터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육상부 선배도 마지막 남은 50미터 정도에 모든 체력을 쓸 각오로 뛰기 시작했다. 육상부 선배의 속도가 조금 더 빨리진 것 같다. 그렇지만 석천이의 속도가 더 빨랐다. 20미터가 채 남지 않았을 지점에서는 이미 석천이가 육상부 선배를 한발 정도 앞질렀다. 그리고 10미터 지점에서는 이미 결론은 나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석천이의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듯하더니 이내 육상부 선배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결승점을 통과했다. 누구도 둘 중 누가 우승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운동장은 아이들의 함성으로 메아리쳤다. 모두들 왕따 석천이의 실력에 놀라워했다. 삐쩍 말라 힘도 없고 약해 보이는 석천이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서울에서 아파서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시골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처음 전학 온 이후로 두 번이나 쓰러지면서 말라깽이에다 약해 빠진 석천이는 언젠가부터 왕따가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이상한 소문을 내면서부터였다. 석천이는 전염병이 있다는 둥, 죽을병에 걸려서 언제 학교에서 쓰러져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둥 하는 소문이 석천이를 왕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시합이 끝나고 육상부 선배가 석천이에게로 다가왔다. 독수리들은 선배가 석천이를 때리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런데 선배는 석천이에게 새까만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석천이라고 했지? 난 너랑 약속 지킬게. 그리고 미안했다.”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했다. 그저 육상부 선배와 1000미터 경주에서 무승부가 났을 뿐인데 선배가 더 멋져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선배는 동구에게 귓속말을 했다.

“너. 멋진 친구를 둔 것 같다.”

선배는 동구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다른 육상부 선배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떠났다. 동구는 선배가 남긴 한마디 외에 등 뒤에서 해 준 한마디가 털을 곤두서게 할 정도의 감동을 주었다.

“네 친구 석천이가 일부러 이기지 않은 거야.”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모두 떠난 운동장에 남은 독수리 오남매는 아직도 석천이의 경주에 감동한 듯 여운 속에 잠겨있다.

“석천아! 왜 그랬어?”

동구가 물었다.

“뭘?”

석천이는 동구의 질문에 모른 척 딴청을 부렸다.

“아까. 시합 끝나고 선배한테 이야기 들었어. 너가 이길 수 있었지만 일부러 이기지 않은 거라고 말이야. 왜 그랬어? 그냥 이겨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면 다음부터 너를 놀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석천이의 얼굴을 금세 홍당무가 되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사실. 내가 이긴 경기이긴 해. 그런데 만약 내가 이기게 되면 육상부 선배는 망신을 당하게 되잖아.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뛰고 대표로도 나가는데 나 같은 왕따에게 지고 나면 학교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난 어차피 이제 육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겨서 선배 마음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리고 어차피 잘 됐잖아. 이제 왕따 취급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석천이는 부끄러운지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석천아. 너무 멋졌어. 네가 운동을 이렇게 잘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 이젠 선배들이 널 얕잡아 보는 일은 없겠다. 부럽다. 조금……”

“나나나 나도 그래!”

“형! 정말 멋있었어. 짱이야!”

독수리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석천이의 행동에 감탄했다.

“난. 너의 그 배려심이 제일 멋진 것 같아. 나 같았으며 보란 듯이 이겨버렸을 것 같아. 선배들한테 그런 것까지 생각해 줄 수 있었던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네가 우리 친구라서 너무 고맙다.”동구가 말했다. 그리고 동구는 주먹을 쥐어 독수리들에게 내밀며 소리쳤다. 펜타! 물론 독수리들 역시 주먹을 합쳐 함께 소리쳤다. 펜타! 독수리들의 표정에는 감동과 자신감에 찬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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