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모험 제12화 - 화해 작전

by 루파고

오후 4시. 역시 독수리들 모두 우박사의 집 거실에 모여 앉았다.

“어제 진택이의 기억 속을 들여다본 기분이 어떻니? 아마 진택이는 발가벗은 알몸을 보여준 것처럼 부끄러울 수도 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택이가 부끄러울 수도 있는 자신만의 기억을 공유한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야. 일단, 진택이의 용기에 칭찬하고 싶구나.”

우박사의 말에 독수리들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모두들 박수를 치며 진택이를 칭찬했다.

“뭐…… 그~ 그그 그냥 아무것도~”

진택이가 부끄러운 듯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진택이 기억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니? 그리고 진택이도 잊었던 기억들이 많이 생각날 것 같은데 말이야. 내 경험에는 그랬다. 잊혔던, 존재조차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자극을 받아서 강하게 치밀고 올라오더구나. 난 며칠 동안 아주 정신없었지. 자꾸 옛 기억들이 생각나서 말이야. 아마도 진택이는 너희들이 보았던 기억 외에 다른 것들이 생각나서 좀 힘들 수도 있을 거야. 기억들은 대체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들이 주로 생각나거든. 그리고 너희들이 보았던 진택이의 기억은 진택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약간씩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왜냐 하면 모든 건 자기의 시각으로 보는 관점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너희가 이 집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보는 건 다르단다. 절대 같을 수가 없어. 누구는 벽시계를 보고 누구는 책장을 보고 누구는 벽지를 보고 또 누구는 액자를 볼 거다. 그게 아니라 모두 저 그림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은 각기 다르단다. 방금 말한 것처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야. 관점이라는 단어가 그래. 보는 곳이 다르다는 거야. 자~ 실제로 테스트를 해 볼까? 저 그림을 보자. 1분간 집중해봐! 시작!”

우박사는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넓고 푸른 초원에 나무 한 그루와 누렁소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그림이다.

“자! 1분 지났다. 이제 너희들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해봐라!”

“황소가 정말 행복해 보여요.”

“저는 황소가 외로워 보이는데요.”

“저는 그냥 여유 있고 조용하고…… 음~ 아름다운 풍경 같아요.”

“저는 황소가 외로워 보였어요.”

“저는 그그그 그냥…… 조용하고~ 음…… 아아아 아름다운 풍경 가가 같아요.”

“황소가 먹는 풀은 뭘까 생각해봤어요.”

“황소보다 제게는 나무가 더 눈에 띄던데요.”

독수리들은 모두 한두 마디씩 의견을 말했다.

“봐라! 모두 같은 그림을 봤지만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왔지? 그걸 보고 관점이 다르다고 하는 거야. 왜 이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거냐 하면 너희들이 본 진택이의 기억은 모두 다른 걸 봤다고 말하는 거야. 그건 즉,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너희들이 진택이의 기억을 가지고 토론을 하다 보면 진택이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초록바위행성 사람들은 그 기계를 이용해서 서로 간의 다툼을 해소했고 그 덕분에 모두가 죽거나 다칠 수 있었던 큰 전쟁도 막아낼 수 있었어. 그만큼 대화는 중요한 거야. 대화란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자신의 주장도 굽힐 줄 아는 게 제일 중요해. 그들은 그런 자세를 기준으로 하고 같은 기억을 가지고 서로 기억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서 서로 다른 관점을 인정하고 이해해서 충분한 대화를 이끌어 낸 거야. 그게 결국 모든 불화를 없앨 수 있게 된 거야. 내가 지금 말한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지?”

우박사는 아직 어린 녀석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독수리 오남매는 어렴풋이라도 우박사의 말을 이해했다. 여름방학 동안 독수리들은 꽤나 많이 성숙해져 있었다. 물론 성진이는 형과 누나를 그저 따를 뿐이지만……

“내가 진택이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진택이 넌 지금도 엄마 아빠와 다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니?

우박사는 진택이를 보며 말했다.

“네!”

“진택이가 말을 더듬게 된 건 분명히 아빠에게 잘못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엄마에게도 책임이 있어. 물론 그건 어른들의 문제이기는 해. 그런데 진택이 엄마 아빠는 어디부터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신 게 아닐까 해. 돈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진택이 네가 모르는 문제점이 있는 거야.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서로 다른 곳을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게 싸움이 된 걸 거야. 쉽게 말하면 이런 거야. 동구하고 의진이가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는데 동구는 오른쪽을 보고 있고 의진이는 왼쪽을 보고 있었어. 동구가 의진이더라 ‘저기 멋지게 생긴 우박사님이 있어!’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런데 의진이는 계속 왼쪽만 쳐다보면서 ‘우박사님이 어디 있냐’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있어. 같은 차를 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기 때문에 동구가 본 멋진 우박사님을 의진이는 볼 수 없었던 거야. 결국 그건 싸움이 될 수도 있어. 왜냐고? 동구는 정말 봤으니까 봤다고 주장할 것이고 의진이는 정말 본 적이 없으니까 못 봤다고, 동구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겠지. 둘 다 절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그런데 문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는 거야. 같은 차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데 말이야. 이해되지? 진택이 부모님도 비슷할 것 같아. 두 분은 부부라는 같은 차를 타고 가고 있지만 같은 곳을 보지 못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아. 결국 대화는 되지 않고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다 보면 그건 싸움이 되고 마는 거야. 두 분의 문제는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전부터 다른 무언가로 틀어져 있었던 거야. 가능만 하다면 두 분에게도 초록바위행성 사람들처럼 그 기계를 이용해서 오해를 풀면 좋겠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박사는 독수리들을 둘러보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 그건 진택이의 기억을 공유한 너희들이 도와주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너희는 독수리 오남매니까. 형제잖아. 그렇지? 나도 너희들을 도와줄 테니까. 진택이 부모님이 다시 화해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힘써 보자구. 어때?”

“네! 박사님. 저희는 진택이를 도와서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만들 거예요. 너희들도 그렇지?”

“그럼. 당연하지!”

동구의 말에 모두들 흔쾌히 답했다.

“고마워! 얘들아!”

진택이가 말했다.

“어?”

의진이의 탄성에 진택이를 제외한 독수리들은 같은 생각을 했다.

“진택아. 너 말 안 더듬는 것 같아.”

“응? 아아아 아닌데…… 그~ 그럴 리가.”

“아니야! 너 분명히 아까는 말을 안 더듬었어. 그렇죠? 박사님?”

의진이가 우박사에게도 확인을 구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듣기에도 잠깐이지만 또박또박 부드럽게 말을 한 것 같은데?”

“저저저~ 정말요? 그런데 지지지~ 지금은……”

“아냐! 안 그래도 너 요즘엔 예전보다 말을 조금 더듬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형. 진짜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성진이 역시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것을 보니 틀린 말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진택이는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용기가 생겨서 소극적인 성격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말을 더듬는 건 소심하거나 심한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경우가 많아. 진택이의 경우도 선천적인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거야. 좋아지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은데?”

“박사님! 어떻게 하면 진택이 부모님이 한 곳을 보게 해서 화해하시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동구가 말했다.

“글쎄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어려운 문제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야.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야 돼. 그런데 진택이네 부모님의 경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어. 봐라! 일단 지금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은 오해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찾아내는 거야. 그건 진택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진택이가 실마리를 찾아내야겠지. 내가 설명했듯이 두 분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계셨던 거니까. 참 그리고 자존심이랄까?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툼이 나는 경우도 많아. 내가 보기엔 진택이 부모님은 돈 때문에 생긴 문제만은 아닐 것 같아. 물론 돈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만 실제 원인은 다른 것 같다.”

“저~ 호호호호 혹시 아빠 여자 친구 무무 문제는 아닐까요? 어 어제 기억이 나나 났는데요. 예전에 엄마가 아아아 아빠 여자 친구 무무무 문제로 싸운 적이 있었어요.”

진택이는 오랜만에 길게 말을 했다. 진택이가 길게 말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는 편이었다.

“응~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혹시 진택의 기억 속에 아빠가 엄마 말고 다른 아줌마들 만나고 그런 적은 있니?”

우박사의 질문에 진택이는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그럼. 혹시 엄마가 말했던 아빠 여자 친구가 누군지 혹시 알고 있니?”

“미~ 미용실 아줌마요. 사장님이요.”

“저도 그 아줌마 알아요. 아줌마 아들이 성진이랑 같은 반이에요.”

의진이는 진택이가 말하는 아빠의 여자 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의진이는 얼마 전 놀러 온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진택이 아빠가 미용실 사장 아줌마와 사귄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이야기였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의진이가 거실을 지나면서 흘려들었던 말인데 왠지 진택이네 부모님의 오해에 그런 게 문제였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박사님. 제가 얼마 전 저희 집에서 아주머니들이 하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게 있는데요. 잘은 모르겠지만요 진택이네 아빠하고 미용실 아줌마가 사귄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대요.”

의진이는 진택이 마음을 다칠까 염려되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려대로 진택이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미안해. 진택아! 괜히 말한 건가 봐. 안 그래도 너가 기분 나쁠까 봐서. 에잇~ 그냥 말하지 말걸 그랬나 보다.”

의진이는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아냐! 괜찮아. 도도도 도와주려고 한 건데.”

진택이는 진심이었지만 의진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진택아. 나도 할머니에게서 그 이야기 들은 적 있어. 나는 좀 더 자세하게 말할 수 있는데 의진이가 말한 것보다. 그런데 내가 말해도 될까?”

동구 역시 진택이 마음이 다칠까 염려되어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

“아냐! 말해주는 게 조조조 좋을 것 같아. 그래야 엄마 아빠가 오오오 오해하는 게 뭔지 아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진택이가 괜찮다고 하니까 너희들이 알고 있는 걸 이야기해 주면 우리가 진택이를 도와줄 수 있지 않겠어?”

“동네 사람들이 헛소문을 퍼뜨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는 못된 여편네들이라고 하셨어요.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도 진택이네 집이 잘 사니까 아줌마들이 이상한 소문을 퍼뜨린 것 같다고요. 부러우니까 질투가 나서 그런 거라고 그랬어요. 진택이 아빠하고 미용실 아줌마는 초등학교 동창이래요. 진택이 아빠는 초등학교 동창회 회장이고요. 그런데 미용실 아줌마네 엄마가 많이 아파요. 미용실 아줌마네 집은 원래 굉장히 부자였대요. 진택이 아빠도 그렇고 진택이 아빠 친구들도 미용실 아줌마네 부모님께서 장학금도 주고 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대요. 그런데 미용실 아줌마네 엄마가 아프셔서 동창들끼리 돈을 모아서 수술비를 만들어 드리기로 했대요. 아줌마네 집은 오래전에 망해서 돈이 별로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있었대요. 그래서 두 분이 자주 만나고 하니까 아줌마들이 바람피우는 거라고 이상한 소문을 낸 거래요. 그리고 얼마 전에 미용실 아줌마가 그 소문을 듣고서는 난리가 났었대요. 왜 거짓말을 하고 다니냐 하고요. 할머니는 아줌마들이 할 일이 없으니까 쓸데없는 말들이나 하고 다닌다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랬구나. 동구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마도 진택이 부모님의 싸움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진택이 엄마가 충분히 오해했을 수도 있지.”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까. 언젠가 한 번은 엄마 아빠가 싸우면서 이런 말을 들은 것 같긴 해요. 왜? 그 돈을 받아서 그 여자 다 갖다 주려고? 우리 엄마 병원비보다 그 여자가 더 중요하냐고 엄마가 소리쳤었어요. 저는 이제야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동네에서 그 소문이 돌았을 정도라면 엄마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화해하지 않고 계시는 이유가 뭘까요? 아빠도 당연히 알고 계실 텐데 말이에요.”

진택이는 한마디 말도 더듬지 않고 청산유수처럼 말을 자연스럽게 쏟아내었다. 물론 진택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박사와 독수리들은 입을 벌린 채 멍청한 표정으로 진택이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왜? 왜? 왜? 왜?”

진택이는 영문을 몰라 자신이 무슨 말실수라도 했을까 염려되었다. 금방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지만 자신이 실수한 것은 분명히 없었다.

“진택아. 너 방금 한 번도 더듬지 않고 말했어!”

의진이가 먼저 말했다.

“맞아. 형. 정말 하나도 안 더듬었어.”

성진이가 한마디 보탰다.

“정말? 내내내 내가?”

“지금은 다시 조금 더듬었지만. 분명히 한 번도 더듬지 않았어. 아마도 너의 더듬는 문제가 고쳐지는 것 같아.”

동구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진택이는 자신감도 많이 회복되고 해서 정상이 되고 있는 것 같구나. 좋은 증상이야. 그건 차츰 좋아질 것 같으니까 지켜보기로 하고 진택이 말대로라면 이제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진택이 부모님을 화해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 자~ 일단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두 분이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드는 일이고, 그다음엔 잘못 알려진 사실을 다시 제대로 일깨워 드리는 거야. 이미 알고 계신다면 더 쉬울 거야. 이젠 두 분의 자존심을 버리게 만들어야 된다. 서로 오해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화해를 하지 않으셨다는 건 아직도 서로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있는 것 밖에 안돼. 이럴 때 자존심은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두 분은 알고 계실 거야. 거기서 너희들이 진택이를 어떻게 도와줄지는 연구해봐라. 이벤트를 해 드리던지 해도 되고 말이야.”

“네. 어차피 2주 있으면 엄마가 오는 날이에요.”

진택이는 이번에도 역시 말을 더듬지 않았다. 모두들 축하해주었다. 사실 진택이의 말 더듬는 증세는 초록바위행성의 기억 여행 기계 덕분에 나아진 것인데 누구도 그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진택이는 여름방학 동안 독수리 오남매의 모험 덕분에 소극적인 성격이 많이 고쳐졌고 용기 있는 녀석이 되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자. 그럼 오늘은 누가 기억 여행을 해 볼까?”

“제가 할게요.”

우박사의 말에 동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래? 동구가 꽤나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그럼 이번엔 동구가 왜 그렇게 기억 여행을 하고 싶은 건지 미리 좀 물어봐도 될까? 어떤 기억 여행을 하고 싶은지도 알고 싶은걸?”

“저는요. 아빠를 만나고 싶어요. 아빠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사실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아빠 사진을 봐도 그래요. 그냥 아빠와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게 어디서 뭘 하다가 찍은 사진인지를 어렴풋이 기억이 나긴 하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기억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가끔은 제가 저 스스로 너무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아빠를 기억하려고 하는데 기억나지 않는 게 말이에요. 어릴 때 아빠랑 예천천문대에도 와봤었는데 아빠랑 뭘 했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래서 아빠한테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엄마도 마찬가지고요……”동구는 이제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동구는 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하지만 동구의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씩씩한 동구였지만 일찍 돌아가신 엄마와 아빠가 정말 그리웠던 것 같았다. 동구 옆에 앉아 있던 석천이는 동구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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