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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Apr 10. 2023

부산 영도 바닷가 걸어봤니?

일요일 아침, 경주에서의 막무가내 솔로 캠핑을 정리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10시경이었고, 라이딩 복장을 벗어던지고 간단한 등산복 차림으로 다시 집을 빠져나왔다.

씻지도 않고 겨우 양치질만 하고서 말이다.


날이 너무 맑아 그냥 보내긴 아까운 날이었다.

부산 영도의 관광 인프라 조사 겸 주말 나들이객들의 동태도 살필 요량으로 영도 남쪽 바닷가 라인을 따라 걸어보기로 작정했다.

영도는 내 소설 <차도살인>에도 배경으로 쓴 곳이다.



남항대교 주차장에 차를 놓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자외선이 강해 여차하면 그렇지 않아도 시원찮은 얼굴이 더욱 몹쓸 지경이 될 테니까.

남쪽 끝 방파제에 올라 사진 몇 장을 찍고 시작했다.

멀리 수평선 근처 위로 둥둥 떠 있는 화물선들이 떼 지어 모인 듯이 보였다.



뒤를 보니 남항대교와 부산 송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도절영산책로가 시작되는 곳엔 카페 하나가 있다.

사람이 많지는 않은 듯한~



본격적으로 절영산책로를 걸으며 뒤를 돌아보니 멋진 풍경이 나를 따라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앞만 보며 걸을 게 아니라 뒤도 돌아보며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파란 페인트를 칠해 놓은 바닥이 못내 아쉽다.

이렇게 유치하게 조성하느니 모던하게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주도에서 넘어온 해녀들이 부산에 자리 잡았다.

물질에 뛰어났던 그녀들은 척박했지만 해산물이 풍부한 부산 바닷속에서 삶을 건져냈다.

부산을 배경으로 했던 영화엔 영도가 자주 나온다.

특히 70~90년대 부산의 영도엔 위와 같은 해녀 포장마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절벽 위에 어떻게들 집을 짓고 살았던 건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저 위에 선 건물들은 부산 영도의 유명한 카페거리가 되었다.

위와 아래가 전혀 상반된 모습이라니.



전엔 어떤 용도로 썼던 터널인지 모르겠지만 백여 미터 정도 되는 긴 터널이 있다.

서울에선 양평 쪽으로 나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터널인데 부산에선 꽤 귀한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전과 다른 풍경이 시작됐다.

사람의 손을 타긴 했지만 그래도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도색된 촌스러운 길보다는 훨씬 좋더라.



이번 도보여행은 가급적 최대한 해변으로 난 길을 걷기로 했기 때문에 길이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바다로 향했다.

도중엔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나도 낚시도구 챙겨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제주에선 짬만 나면 낚시를 다녔는데 부산에선 왜 심적인 여유가 없는지 모르겠다.



무허가인 듯한 해녀의 집이다.

길이라고 해 봐야 내가 걸어온 길이나 가파른 경사로 낸 길이 전부일 텐데 여기까지 와서 영업을 하는 할머니도 대단하다.

언젠가 찾아볼 생각도 있다.



낙석으로 위험해 보이는 침식구간이 정비되고 있었다.

주인 없는 작은 중장비들이 휴일을 만끽하는 모양이다.



날이 좋아 더욱 그래 보였겠지만 어딜 봐도 그림, 그냥 모두 그림 그 자체였다.

필터 없이 촬영된 사진임에도 바다색과 하늘색이 묘하게 차이를 주고 있었다.



그림 같은 해안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인위적인 돌담과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촌스럽게 페인팅된 길보다는 이게 훨씬 정감 가더라.



출렁거리는 긴 다리를 건너며 울렁증을 즐겨본다.



남항대교에서 중리까지 가는 길엔 이런 풍경이 끝도 없다.

연인과 함께라면 이 길이 긴 줄도 모르고 걸었을 것 같다.

도중에 만난 노래미낚시터는 출입이 통제됐다고 안내한다.

처음 간 길이라 그런지 오히려 이게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루어대 하나 챙겨 나왔으면 하는...



잘 보니 대마도가 보이더라.

제주도에서도 가끔은 대한민국 본토가 보이곤 하는데 비슷한 느낌일까?

그래서인지 부산사람들은 대마도를 제주도보다 쉽게 오간다고 하더라.

아마 나도 조만간 대마도에 다녀오게 되지 않을까 한다.

유명한 대마도 캠핑이라도?



때 늦은 철쭉도 더러 보였다.



동백꽃이 끝물이다.

그늘이 심한 곳엔 아직 동백이 한창이다.



풍경을 감상하며 열심히 걷다 보니 드디어 중리 해변이다.

여긴 몇 번 와본 곳이기도 하다.

그중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왔었다.



어민들의 어구 보관창고인 모양이다.

수십 년은 됨직하다.



결국 난 여길 지나치지 못하고 점심을 먹었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했지만 저들처럼 나도 여유를 누려볼까 싶은 생각이었던 거다.

불과 전날 밤엔 계곡에서의 멋진 캠핑을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태종대로 가는 길, 숲으로 난 코스를 타고 가는데 초록초록한 들풀과 들꽃들이 나를 성가시게 한다.

이맘때면 난 콧구멍에 바람이 들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곤 했었는데 그런 방랑벽이 뜸해진 이유를 따져보니 아마도 자전거를 타면서부터였던 듯했다.

자전거를 타면 여행을 가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기존 등산로가 끊겼다.

지금 중리해변에서 태종대 방향 감지해변까지 이런 도로가 신설되고 있다.

어리둥절해하는 날 보던 공사장 아저씨가 그냥 도로 타고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등산로가 끊긴 모양이다.



공사 중인 도로를 따라 걸으며 보는 풍경이 멋들어진다.

아마 이 도로가 개통되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할 것 같다.

이 멋진 풍경에 어찌 속도를 낼 수 있겠냔 말이다.



여 위에서 홀로 낚시 중인 분이 있더라.

저기까지 어떻게 가셨을까?



감지해변은 지난 태풍 때 초토화 됐었다고 한다.

재정비되면 다시 많은 인파가 몰릴 것 같다.



이제부터는 공도 옆으로 난 인도를 타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태종대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꼬마열차라고 해야 하긴 좀 큰 철도 없는 열차가 운영되고 있다.



바닷길을 걷다가 이런 길을 걸으려니 밋밋한 게 재미가 없더라.

오래된 숲길에 난 도로 옆을 걷는 느낌 정도?

그냥 별생각 없이 긴 오르막길을 올랐다.

아직 봄이라 덥지 않아 다행인데 여름엔 아주 죽어날 게 분명하니 여름이 되면 자전거 타고 또 와야겠다.



간단하게 유명한 태종대 구경도 좀 해 줬다.

예전엔 태종대가 왜 유명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념적인 곳이니만큼 사진 몇 장 박아주고 바로 떠났다.

길고양이인 듯한 녀석들이 제법 많던데 사람 손을 많이 타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내려가는 길에 태종대 포토존이라 해서 들어가 봤더니 신라 태종이 바다를 보며 화살을 쐈다는 곳이란다.

옛날엔 어땠는지 몰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아 사진만 남기고 떴다.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태종사가 있다.

작은 암자 같은 곳인데 어차피 가는 길이니 들러 가도 나쁘지 않다.



이제 태종대까지 한 바퀴 다 돌았다.

해안길에 비하면 밋밋한 코스지만 어쨌건 작정했던 영도 남쪽 해변 따라 걷기 코스는 완료했다.


거의 12km 정도 거리에 누적 상승고도는 386m

좀 천천히 걸으며 점심도 먹고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3~4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다.

스마트폰으로 스트라바를 작동시켰더니 배터리 소모가 커서 여기서 멈췄다.

만약 보조배터리라도 갖고 갔었다면 아예 영도 한 바퀴 다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어쩌면 배터리가 날 살린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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