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긴 터널을 어렵게 벗어난 친구를 만났다.
캠핑트레일러를 하나 구입했고 한적한 장소에 정박해 두고 일주일의 절반을 거기서 기거한다고 했다.
경영하는 호텔도 있고, 가정불화도 없는 멀쩡한 집을 두고 왜 그렇게 지내냐 했더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에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일주일에 며칠 씩 함께 캠핑을 한다며 히피족 아닌 노마드 같은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은 진심 그 자체였다.
만약 상황이 허락했다면 나도 하루 정도 함께 머물고 싶었다.
하필이면 항상 싣고 다니던 캠핑 장비를 다 내려놓고 온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녀석의 안식처를 침범하는 건 딱히 내키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심지어 우울증까지 왔을 정도였다는데 난 녀석의 그런 상황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젠 지난 일이라며 쉽게 말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내려놓고 다스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이상한 충동을 느끼며 어려운 기간을 버텨왔다.
녀석은 금세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무려 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속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내면의 성장을 했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니라면 절대 어려운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녀석은 말했다.
"난 똥을 치우는 일을 했던 것 같아!"
무슨 얘긴가 들었더니 코로나로 인한 장기 불황을 겪으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게 됐다고 했다.
내가 싼 똥 치우고, 남이 내 길 앞에 싼 똥 치운다는 말이다.
녀석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난 내 똥을 치웠나?
내가 갈 길 앞에 누군가 싼 똥을 치울 생각을 했던가?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쳤다.
책임감, 의무감 등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새삼 느껴진 거다.
그리고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며 전 아내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먼지 같은 기억이었다.
"니가 싼 똥 니가 치워!"
한창 사업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아내에게서 의리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야 돌이켜 보면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는 게 맞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의리를 탓할 게 아니었다.
아무튼 우린 명심해야 한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
이 얼마나 도덕적인 멘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