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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원

by 루파고
이건희의 1만 원과 너의 1만 원이 다른 차이를 설명해라



내게 이런 숙제를 준 사람이 있다.

없던 고민이 생겼다.

당장 현찰 1만 원이 없는데 나의 1만 원을 고 이건희 회장님의 1만 원과 비교하라니...

1만 원이든 1천 원이든 돈은 쓰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 내게 짜장면을 사준 선배가 나중에 해준 말이 있었다.

여럿이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마지못해 내게 짜장면을 사주긴 했지만 내가 짜장면을 먹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고.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동아리에서 나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난 15명의 동기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숫자 단위를 떠나 돈은 누구에게나 귀중하고 소중하다.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1만 원이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상대의 자산규모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게 '이건희의 1만 원과 나의 1만 원'의 차이를 설명하라니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뻔한 대답을 원했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별 것도 아닌 고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단순한 '가치'를 두고 한 질문이었을 거다.

'화폐의 가치'가 아닌 그 1만 원이 가진 상황적, 상대적인 가치를 말한 것이었던 것 같다.


내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준 선배는 훗날 그보다 비싸고 맛있는 걸 사줬지만 아마 선배의 마음속엔 그날 짜장면 가격보다 더 싸다고 느껴졌을 것 같다.

1만 원의 가치는 화폐적인 가치보다 그에 따르는 만족도에 좌우되는 걸 거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가심비 같은?


만약 고 이건희 회장님이 내게 1만 원짜리 짜장면을 사게 되는 상황이 됐다면 난 그에게 1만 원짜리 짜장면의 가치를 할 수 있을까?

정말 오랜만에 나를 자학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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